불편한 교회가 나를 살린다
상태바
불편한 교회가 나를 살린다
  • 최규창
  • 승인 2020.06.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회가 잘 돌아갈수록 우리는 '잃는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퇴화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더 발달하고 그러지 않는 기관은 쇠퇴하여 퇴화기관이나 흔적기관으로 남을 수 있다는 이론은, 유전된다는 가정을 버리고 당대만 따지면 그럴듯한 주장이다. 우리 육체나 정신은 계속 사용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분명 기능이 약해진다.

메모를 자주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지만 이에 의존하면 기억력은 섬세함을 잃기 쉽다. 영화나 드라마는 시각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눈앞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뇌는 책을 읽을 때만큼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휴대폰으로도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는 시대지만 라디오가 아직도 건재한 이유는 음성 정보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자극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텔레비전을 볼 때보다 라디오를 들을 때, 라디오를 들을 때보다 책을 읽을 때 더 많은 기능이 작동한다. 부족한 부분을 상상력이 메우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와 의미」라는 책에서 고대인들의 독특한 능력을 소개한 바 있다. 나침반이 없던 고대시대에는 뱃사람들이 길을 찾기 위해 낮에도 북극성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을 사고로 추론했고, 프톨레마이오스는 과학 시대에 입증된 행성들의 ‘1일 자전’과 ‘1년 주기 운동’을 이미 눈치 챘을 뿐 아니라, 지구와 달의 거리를 계산하기도 했다.

이(理)와 기(氣)를 근간으로 우주의 원리와 인간 심성을 연구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이론이 현대 물리학과 맞닿는 점도 흥미롭다. 정밀한 과학 도구가 없던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사고와 육체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는데, 그 결과가 이후 과학적 발견으로 입증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많다.

도구가 부족하면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능력을 극대로 끌어올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한다. 과학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는 만들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을 매우 나약하고 도구에 의존하는 존재로 전락시킨 점 역시 사실이다.

 

편리한 교회의 내면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매체를 얼마나 활용해야 하는 것일까. 그분의 음성을 듣는 민감함은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도시 생활에서 가능하기는 할까.

하나님과 만나는 데 갖추어야 할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단순함’이라는 사실을 점점 망각한 채,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어떤 보조 매체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착각에 종종 빠진다.

그것들은 오히려 인간의 영적 능력을 퇴화시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 십상이다. 사탄이 우리의 신앙을 가두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주의 일’로 더욱 분주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개척하는 데 함께하거나 작은 교회에 속하기를 꺼려하는 주된 이유는, 교회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한다고 믿는 많은 요소들을 맨손으로 일궈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요소들은 결국 교인들 스스로가 교회생활을 편리하게 하자고 만든 ‘시스템화’ 과정임을 알게 된다.

주차 관리, 예배 섬김, 성가대, 주일학교, 봉헌, 주방 봉사, 식사 배식, 설거지, 남녀 전도회 모임, 단체 노방전도, 새신자 관리 등 교회생활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교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각자가 역할을 분담한 셈이다.

교회 규모가 클수록 재정이 늘어나고 ‘규모의 경제 효과’가 생겨 시스템화는 더욱 수월해진다. 그 시스템화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심지어 성도들이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 않고 예배 서비스만 제공받고도 주일을 잘 보냈다고 만족해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방치하는 곳이 바로 오늘날 대형 교회다.

문제는 이 시스템화가 우리의 영적 근육을 심각하게 퇴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시스템화된 교회에서 우리는 긴장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더 쉽게 설교시간에 잠을 청할 수 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시스템을 문제없이 작동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되고, 우리의 영적 상상력 역시 잠재워버린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육체 능력, 상상력, 인지 능력, 영적 감각을 도구와 매체에 넘겨주었듯, 시스템화된 교회는 성도들의 합리적 사고와 영적 욕구를 순식간에 집어삼켜버린다.

오늘날 교회는 좀 더 불편해져야 한다. 교회의 본질을 더 깊이 고민하고, 교회생활을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뿐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아껴 세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시스템이 최소화된 교회는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얼마나 역동적인 코이노니아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텔레비전을 끄고 라디오를 듣는 것 같은 답답함일 수도 있지만, 낮에도 북극성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경지이기도 하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매일의 만나와 불기둥을 바라보는 갈급함이다. 이것이 교회의 영적 감각을 유지하고 이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이 아닐까. [전문 보기: 불편한 교회가 나를 살린다]

 


최규창 대학 시절부터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활동했고,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두 자녀를 낳아 키우고 있다. 현재 바이오 벤처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강같은평화)의 저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