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보다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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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보다 희망
  • 대니얼 해럴 | Daniel Harrell
  • 승인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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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은 희망한다.

VIEWS  WHERE WE STAND│지금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초래한 재앙과도 같은 상황을 점검하면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 소장인 톰 프리든은 암울한 현실을 인정했다. “백신을 만들 때까지 현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백신을 만들려면 1〜2년은 걸릴 것이다.”

이건 낙관적인 편에 속한다. 마이크 라이언 세계보건기구(WHO) 보건비상프로그램Health Emergencies Programme 대표는 신뢰할 만한 백신의 개발 가능성은 “문샷”a moon shot[달성하기 극히 어려운 혁신]이라고 했다. 

머리 깎을 때가 이미 한참 지난 나로서도 좋은 징조가 아니다. 

지금 일을 못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인 내 이발사에게도 이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요원한 백신 개발 외에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선택지는 우리 모두 집단 면역을 갖는 것밖에 없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바이러스 노출, 전염 확산, 감염, 발병, 죽음. 우리가 집단 면역에 도달할 때쯤이면 사업체들은 사라졌을 것이고 교회들은 문을 닫았을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일자리들마저 증발해 버렸을 것이고, 빈곤과 부채가 치솟아 있을 것이다. 정서적 좌절―우울증, 비관, 공포, 슬픔―또한 클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세상에 종말이 온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의 종말은 모든 희망의 종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은 그것의 성취와 함께 끝나기 때문이다. [종말에]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 오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요한계시록 21:5).

그래서 요한계시록에는 희망이라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는다. 성경적 희망이라고 특별히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환난과 인내와 연단(단련된 인격)의 열매다(로마서 5:3-4). 작가 메릴린 로빈슨은 성경적 희망을 “끊임없이, 지독히 상처 받기 쉬운” 희망이라고 부른다.

G. K. 체스터턴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일 때 비로소 [기독교적] 희망이 힘이 되기 시작한다. … 그것은 없어서는 안 될 희망인 만큼 또한 불합리한 희망이다.” [전문 보기: 백신보다 희망]

 


대니얼 해럴 Christianity Today 편집인

Daniel Harrell, “Hope beyond a vac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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