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의 현장에서 ‘순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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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의 현장에서 ‘순직’한다
  • 조용성
  • 승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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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증인의 삶은 그것으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값지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선교 현장에서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2019년 11월 19일, 터키 동남부 디야르바크르 시에서 한국의 김진욱 선교사가 칼에 찔려 사망했다. 현장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는 도중에 숨을 거두었다. 경찰은 16세 소년을 살해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김진욱 선교사의 핸드폰을 빼앗으려는 강도에 의한 살인이라고 밝혔다. 김진욱 선교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동남부 디야르바크르의 위험 수위가 높은 마을을 선교지로 선택했고, 그곳에서 살해당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은 한국 선교에 또 한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순교’의 의미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선교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그들의 죽음의 경중을 저울질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의 죽음의 순전한 가치를 기리기 위해서 말이다.  

 

성경의 ‘순교’ 

예언자들의 삶에서, 고난 받는 종(이사야 42:1-9; 49:1-6; 52:13-53:12)과 고난 받는 의인(시편 18:22; 59:4; 욥기14:4)에 대한 묘사에서 순교와 연결되는 개념을 볼 수 있으나, 구약에 ‘순교’는 적시되어 있지 않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통상 ‘순교자/순교’라고 부르는 말martyr/martyrdom의 어원이기도 한 헬라어 ‘말투스’가 신약에서는 ‘증언’을 의미했다. 헬라 문화에서 공적, 법적, 역사적, 종교적인 증인witness을 ‘말투스’라 했고, 이 말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참여한 제자들의 ‘증언’에 적용되었다(요한계시록 1:5). 

그러나 ‘증언’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 곧 ‘순교’로 제한되지 않았을 뿐, 신약에서 ‘증언’과 ‘죽음’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증인이셨고, 증인으로서 죽으셨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디모데전서 6:12-13)이셨다.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고 증언하신 그는 십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으셨다. 

그리고 그처럼, 그의 제자들도 고난 받고 죽으신 (그리고 부활하신/부활하실) 그리스도를 증언하였고, 그래서 고난 받았고 또 죽임을 당했다. 결국, 사도 요한이 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증언과 죽음은 거의 언제나 함께했다.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요한계시록 17:6, 20:4).     

‘증언’이라는 어휘에 ‘죽음’의 의미가 결부된 과정을 연구한 현대의 많은 성경학자들도 신약에서 ‘증언’이라는 어원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음을 밝혀냈다.

곧 고난당하신 예수(베드로전서 2:21-25; 로마서 15:3; 히브리서 12:2, 마태복음 25:31; 사도행전 9:4; 고린도후서 1:5; 골로새서 1:24)의 대속의 죽음이 순교의 모델로 제시된다. 이처럼 현대 신학자들은 ‘증언’과 ‘순교’ 개념의 내적 연관을 찾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순교자’ 개념은 죽음을 선고 받을 수 있는 심문 상황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증언’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그 믿음을 증언하는 실천적인 의미를 담게 되었다. 결국 순교자의 증언은 결코 인간적인 증언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에 따른 증언으로 이해되고 해석되었다.

 

총회세계선교회(GMS)의 한쪽 벽에는 현재 52명의 순직 선교사 현판들이 있다.

‘순교’의 역사와 기준 

초대 교회사의 전설적인 인물, 교부 폴리카르푸스(80-165년), 우리가 “폴리캅”이라 부르는 그는 순교할 때까지 86년 동안 충성스럽게 주님을 섬겼다. 

그날은 축제일이었다. 흥분한 군중이 폴리캅을 잡으라고 소리쳤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했다. 유대인들은 군중을 충동질하여 소란을 피웠다. “이 자가 소위 소아시아 선생, 교부라는 무신론자인가?” 

폴리캅은 자신이 화형당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불후의 명답을 한다. “나는 86년간이나 그리스도를 섬겨 왔소. 그분은 이때까지 한 번도 나를 저버리지 않으셨는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을 저주하리요?”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스스로 안식일을 범하면서까지 유대인들은 앞장서서 장작개비를 모아 불을 지폈다. 폴리캅은 외친다. “여러분, 됐습니까? 나는 잠시 타다가 꺼지는 불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왜 머뭇거리십니까? 가까이 와서 하고자 하는 바를 행하시오!” 

불길이 폴리캅의 몸을 사를 때, 그는 저 유명한 기도를 올린다. “주님이시여! 오늘까지 나를 귀히 여기시니 웬 은혜입니까? 제가 지금 순교자 반열에 서오니 그리스도의 잔에 받아 주옵소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국가 권력과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러한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기까지 신앙을 증언해야 했다. 그들에게 ‘증언’은 그러한 행동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최소한 엄격한 세 가지 기준점에서 순교를 정의해야 한다. 육체적 죽음, 그리스도의 진리에 대한 박해에서 기인한 죽음, 자의로 받아들인 죽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에 부합한 순교는 한국 교회에도 적지 않았다. 

한국 교회에는 일제강점기와 공산 치하에서 많은 순교자들이 나왔다.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가, 그리고 이름을 남기지 않는 많은 성도들이 순교했다. [전문 보기: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의 현장에서 '순직'한다]

 


조용성 1987년 터키 선교사로 파송 받아 그곳에서 26년을 사역했다. 그 뒤로 6년을 GMS 선교총무로 봉직했다. 30년이 넘게 선교사로서 체득한 선교에 대한 생각을 CTK 2018년 7/8월호 인터뷰 “기독교를 넘어서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에서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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