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잠든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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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잠든 땅에서
  • 김신숙
  • 승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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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퍼붓고 있었다. 자리에 누운 채 달력을 보았다. 1979년 7월 13일.

‘이집트 메마른 사막에서 지낸 시간이 벌써 2년에 가깝네. 웬 비가 이리 많이 올까….’

나는 수술을 받을 계획으로 잠시 귀국하였다가 대수술을 받고 치료와 휴양을 하면서 친정집에 한 달간 머무르고 있는 중이었다. 중동의 사막 지역에서 살다 보니 세찬 빗줄기가 왠지 불안하게 느껴질 만큼 새삼스러웠다.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여보세요! 김신숙 선생님 계세요?” 
“전데요. 누구신지요?”
“외무부 문서과입니다. 카이로에서 편지가 왔는데요.”

중앙청 외무부 문서과에 와서 편지를 수령하라고 한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고 억수같이 퍼붓는 폭우를 헤치며 중앙청으로 달려갔다. 사랑하는 남편의 편지를 받으러 가는 길은 마냥 기쁘기만 했다. 우산을 펴 들었지만 금세 옷과 신발이 흠뻑 젖었다. ‘이집트 사막에도 이런 비가 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비도 반가웠다. 

“카이로에서 오신 분입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동생분이 입구까지 오셨는데 들어오시면 편지를 드리겠습니다.” 

‘동생은 왜 왔지?’ 그때 저쪽에서 남동생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숨이 차 보였다. 여동생도 급하게 뒤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누나, 편지 내가 받을게.” 
“매형 편지를 왜 네가 받니?” 

직원이 가져온 편지의 겉봉에 적힌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의 글씨체였다. 나는 얼른 편지를 뜯었다. 그런데 남동생이 내 손을 붙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무슨 말을 꺼내려고 했다. 남동생은 머뭇거리다가 눈시울을 적시더니 용기를 낸 듯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누나, 매형이 하늘나라에 가셨대.” 
“너 무슨 소리야? 우리 지금 매형 편지 받았잖아?” 
나는 정신없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남편은 영락교회에서 열린 선교 대회에 중동 지역 대표로 참석한 후에 두 달간 한국 교회들을 방문하고 내 수술을 지켜보고 잠시 간호를 하다가 이집트로 돌아갔다. 너무 오래 선교지를 비우면 안 된다며 그렇게 한국을 떠난 지 열흘 만에 보낸 편지였다. 

편지에서, 남편은 우리가 처음 선교를 시작했을 때를 되짚고 있었다. 남편이 서울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로 갔다가 추방당한 일, 6개월 동안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파키스탄, 태국 등지를 헤매고 다닌 일, 그때 여기저기 맡겨놓았던 짐과 책과 편지들을 찾으러 홍콩을 경유하여 태국에 들렀다가 이집트에 도착한 일, 거기서 10여 일간 한국 교인들을 심방한 일, 이집트 복음주의 신학교와 이집트 교회들을 방문하고 이집트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홍콩과 태국을 들렀을 때 내 선물로 시계와 녹음기를 사왔던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은 후 속히 귀임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시 한 번 밑에 중요 표시를 하고 “속히 오시오”라고 써 놓았다. 나더러 한 달 더 쉬고 병원에서 문제가 없다고 하면 그때 오라던 그이였다. 

“누나, 하나님 뜻이라고 생각해.”

여동생도 내 팔짱을 낀 채 가득 염려를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교통사고야. 지난번 서울에 왔을 때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아무 문제도 없었어.”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쓰러질 듯 의자에 주저앉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당시 이집트의 교통 사정은 정말 엉망이었다. 이집트에 거주하는 교민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이집트에 살면서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병나지 않으면 행운이라고. 교통법규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있다 해도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 신호등도 거의 없었다. 있는 신호등에서도 신호를 지키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외무부 교신과로 갔다. 내 남편 이연호 목사가 어떻게, 왜 돌아가셨는지 물었다. 다들 모른다고 했다. 이집트 대사관에서 근무하였던 오 영사님을 찾았다. 이집트에서 영사로 근무하다가 외무부 여권과에 계시는 그분이 교신과에 텔렉스 전문이 와 있다는 것을 알아내 주었다.

남편은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사막 길의 중간 지점 와디나투룬 휴게소에서 군인 한 사람을 태워 주었고, 한 시간 정도 가다가 앞에서 오는 트럭과 정면충돌하여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잘 닦인 길에 차선도 있고 속도 제한도 생겼지만, 당시 이집트 사막 길(“따리으 싸하라위”)은 차선도 없고, 다들 속도를 있는 대로 내서 달렸다. 그렇지만 사고의 정확한 경위는 아무도 모른다. 사고 직전에 함께 타고 가던 군인이 행패를 부렸었는지, 아니면 다른 어떤 원인이 있었는지,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다. 조서는 트럭 운전수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꾸몄을 테니 주님만 아실 일이다.  

 

고 이연호 선교사

1979년 7월 11일, 이연호 목사는 이집트인과 수단인 목회자 수양회에서 설교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알렉산드리아로 가다가 사막 길에서 그의 소원대로 그 땅에서 생명을 바쳤다. 

‘내게 엄청나게 불행한 일을 당하게 하려고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 이렇게 캄캄했던가.’ 이제는 바람까지 심하게 불고 장마 폭우는 아까보다도 더욱 세차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중앙청 길을 걸어 나오면서 주님께 기도했다. 

남편과 나는 총신대학교에서 공부하며 교제할 때 주님이 앞으로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의 태중에 있을 때 주님께 바쳐진 “나실인”처럼, 나는 목사 사모의 길이 주님께 헌신된 나의 삶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교제하며 서로의 꿈을 나눌 때, 이연호 목사는 무슬림권 선교사가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무슬림 선교를 위해 2년을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목사님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며 사우디 선교사로 가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우리는 일주간의 시간을 두고 기도했고, 첫 번째 무슬림 사역지로 나온 것이었기에 순종하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목사 신분으로 들어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언제 가족이 합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선교의 첫 걸음이었다.

남편은 받기 어려운 무슬림권 비자를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받아 1976년 8월 6일 리야드로 출발하였다. 그 후 3개월 만에 추방당하고, 6개월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떠돌다가 이집트 땅에 정착한 지 3년 만에 그는 하나님 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빗길을 걸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때 내 마음속에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연호 목사는 이집트의 영혼들. 중동의 영혼들을 정말 사랑하였다! 그런데 너는 이집트 영혼들을 사랑하지 않느냐?’  

“주님, 저도 이집트 영혼들을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이집트로 가서 계속 남편의 뒤를 이어 선교를 해야 되지 않겠느냐!”

중앙청 앞길을 걸어 나오는 3,40분의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게 세 개의 성경 말씀을 주셨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나는 이 말씀을 생각하며 내 아픔을 피할 길을 달라고 기도했다. “아픔에서 나를 건져주소서.” 하나님께서 시험과 아픔을 이길 힘을 주시거나 아니면 피해서 갈 길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되면서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고 이연호 선교사가 처음으로 중동으로 출발한 날, 김포공항에서

두 번째로 주신 말씀은 마태복음의 이 말씀이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세상에서 부모나 형제, 남편이나 아내, 자식은 죽음이라는 것 때문에 항상 함께 있을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 때까지 나와 항상 함께 계시고 동행해 주신다는 이 말씀이 내 아픔과 고통을 조금은 덜어버릴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세 번째 말씀은 빌립보서의 말씀이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 주님이 힘을 주신다면, 나는 어떤 일이든 어떤 상황이든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주님! 남편이 가지고 있던 언어의 능력이나 지혜는 없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의지하여 이집트로 다시 가겠습니다.” 나는 파송 교회인 충현교회로 향했다. [전문 보기: 남편이 잠든 땅에서]

 


김신숙 이집트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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