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하심을 따르는 데칼코마니
상태바
인도하심을 따르는 데칼코마니
  • 홍승영
  • 승인 2020.0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ISTOCK
ISTOCK

태어나는 아이에게 90년을 살 것이라고 말해 주면 그 의미를 이해할까? 아이들의 웃음은 어른들의 근심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웃는 것 이상으로 인상을 쓰거나 울어야 한다.

그 과정을 다 알게 된다면 유치원에서 친구 만날 일마저도 두려울지 모른다. 태어나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 다행히 우리는 그 다음 순서를 모른 채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달로 극동방송 라디오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만 20년이 지났다. 코로나19로 두 달간 쉬어야 했던 것을 제외하니 스무 해가 가득 찼다.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1천 40주간이다. 간간히 있었던 특별 출연을 제외하고도 4천 114회의 정규 방송을 내보냈다.

14년 6개월은 매일 방송을 진행했고, 5년 6개월은 주 1회 출연했다. 그 가운데 17년 6개월을 (“최정문 전도사”로 알려진) 아내와 함께 출연했다.

매일 방송을 위해서는 원고도 직접 작성했는데, 원고지 다섯 장 정도의 분량을 3천 770번 썼으니 1만 8천장이 넘는다. 바쁜 것이나 선교지 일정 같은 것은 고사하고, 아파서라도 쉬었을 법도 한데 어찌어찌 중단하는 일 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진정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이번 주부터 시작하면 한 번도 쉬지 않을 거야. 아파도 방송하고 선교지 갈 때는 미리 녹음해서라도 20년은 넘겨야해”라고 말해 주신 고마운 분이 있었다면, 절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대학생인 둘째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방송국 피디라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출연하기로 하셨던 분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급하게 되었으니 제발 한번만 살려 달라”는, 119에 걸려다 잘못 연결된 듯한 전화를 받고 생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내와 함께 하는 순서여서 여차하면 아내 뒤로 숨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는 사명으로 시작한 방송이 6개월이 되었고. 3년 뒤에는 매일 진행을 맡았다. 

방송이 천직인 사람들에게야 60년도 짧아 은퇴하기 싫겠지만, 나는 지역교회의 목사다. 방송은 선교적인 섬김이었다. 내 분야가 아니니 그만두어야 한다고 자주 생각했다. 처음 5년 정도가 그랬던 것 같다.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아내와 의논하여 “오늘은 그만두겠다 말해야지…”하고 방송국을 찾으면 기가 막힌 사연들이 그날 찾아왔다. “치매를 앓던 어머님이 이 방송을 일 년 반 정도 들었는데 웃음을 되찾으시더니 많이 좋아졌다”는 사연은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우리를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다며,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심각한 질병이었고 의사가 포기했었는데 우리 방송을 듣다 나았다”는 말에는 “오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우리가 진행한 방송은 ‘기적의 신유 시간’이 아니라, 없으면 허전하기에 있어야 하는 ‘어린이 시간’이었다. 

그런 일을 서너 번 겪으면서 그만두는 것을 그만두었다. 건강한 의미의 자포자기는 주님을 제대로 의지한다. 시간과 기회를 주님께 드리니 ‘원하시는 대로 잘 사용해주신다’는 간증이 계속 생겼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했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그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한다. 두려움 많은 내 성품을 아시고 다음 일을 보여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친절하신 돌봄 덕분인 거다. 

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비전이라고 하면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이다. 현실이 어떻든지 비전은 먼 미래다. 희미하고, 굳이 현재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비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은 살갗처럼 붙어 있다. 바로 지금과 임박한 다음이다.

현실이라는 것은 야속한 존재여서 하나씩 성취하여 쌓지 않으면 바람처럼 지나간다. 인생이라는 90년은 현재가 퇴적된 나이테다. 같은 속도로 지나지만 각기 다른 색을 입힌다.

다 차면 하늘로의 부르심을 받는다. 되돌아오지 않는 직선을 걸어 아버지 품에 안긴다. 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지라도 분명히 하늘 아버지께서 계신 것이 장래의 보장이다. 그래서 먼 미래의 비전을 보지 못해도 소망의 현재를 살 수 있다. 

선지자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엘리사는 그것이 돌아오지 못할 길임을 알았다. 거대한 농장의 주인이었을 법한 그는 농기구를 불살랐다.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두 마리의 소를 잡아 사람들을 먹였다(열왕기하 19:21). 성서 시대 공동체의 식사에는 언약이 포함된다. 선지자의 새 길을 가겠다는 순종을 공동체에 공표한 것이다. [전문 보기: 인도하심을 따르는 데칼코마니]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세기 49:22)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