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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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 강영안
  • 승인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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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상식의 오류를 드러내어 삶을 이야기하다 : 강영안 교수의 철학과 신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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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서로 연결하여 강의도 하고, 회의에도 참여할 수 있지만, 얼굴과 얼굴을 대하던 관계는 단절되고 몸을 매개로 한 교류는 차단되어 분리된 삶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태도 무거운데 미국은 인종차별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곳곳에서 ‘인종 정의’를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대하는 정신 자세는 무엇일까요? 어떤 삶의 태도, 어떤 삶의 가치관이 요구될까요?

〈페스트〉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의 ‘연대기’ 서술자인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이렇게 말합니다.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럴까요?

우리가 성실하면 일상의 교란이 일어난 현재, 팬데믹이 휩쓸고 있는 현재 지구의 상태, 인종 차별이라는 불의한 일이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리유의 입을 빌려 발설한 카뮈의 이 문장을 염두에 두고서 〈페스트〉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카뮈의 〈페스트〉는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항구 도시 오랑에서 1940년대 어느 해 봄부터 겨울까지 10개월간 도시 전체의 봉쇄를 가져온 페스트로 인한 전염병 사건과 그로 인해 발생한 도시민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 소설입니다. 이 도시는 세계 여느 상업 도시와 겉으로는 다르지 않습니다. 평온하고 평범합니다.

하지만 “비둘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공원도 없어서 새들이 날개 치는 소리도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는 도시, 요컨대 중성적인 장소”라고 묘사될 정도로 특이합니다. 한 도시를 아는 방법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며,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라고 소설 속의 서술자는 말합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 이 도시를 묘사해 보면 사람들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남여는 성행위에 열중할 뿐,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서로를 짧은 시간에 탕진해 버리며, 죽어가는 사람은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한 채 홀로 외롭게 죽어가는 그런 도시입니다.

위치상 특징이 있다면 만灣에 잇닿아 바다를 등지고 ‘초목도 없고, 넋도 없는’ 고원 지대에 자리 잡은 도시라는 점입니다.

(오랑은 카뮈의 두 번째 아내 프랑신 포르Francine Faure의 부모들이 살던 곳입니다. 그가 폐결핵으로 1942년 여름부터 1943년 가을까지 프랑스 중남부 고원 도시 르 샹봉 쉬르 리뇽Le Chambon sur Lignon 근처의 르 파늘리에Le Panelier에서 요양하면서 〈페스트〉를 쓰고 있을 때 프랑신은 오랑에서 교사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오랑에 갑자기 페스트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도시는 봉쇄되고 내부인들의 바깥출입은 금지됩니다.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은 다시 나갈 수 없게 됩니다. 헤어져 있던 가족들은 편지조차 주고받을 수 없게 되고 외부와 소통하는 수단은 열 마디 정도의 단어를 대문자에 담아 주고받는 전보가 유일하였습니다.

페스트가 시 전체를 점령하게 되자 유류 공급도 제한되고 식량도 배급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도청을 제외한 시의 공공기관은 환자들의 수용소로 전환되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장례 절차도 없이 시체를 매몰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카뮈의 〈페스트〉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표면으로는 오랑이라는 도시에 발생한 전염병을 말하지만, 이면으로는 프랑스와 유럽이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겪은 전쟁 속의 인간의 삶과 죽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전쟁이든 페스트든 어디든지 예고 없이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그 때는 누구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습니다.

페스트를 유럽이 경험했던 2차 세계대전의 은유로 사용할 수 있었던 근거는, 전쟁과 페스트 사이에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둘 다 사람들을 유폐시키고 죽음을 가져옵니다. 카뮈는 〈페스트〉의 첫 페이지에 제사題詞로 대니얼 디포Daniel Defoe(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한 종류의 감옥살이를 다른 감옥살이로 그려내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통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그려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당한 일이다.”

소설은 상상을 통하여 현실을 그려내는 허구이지만 이 허구의 현실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을 더욱더 잘 보여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문장입니다.

만일 소설이 그려내는 허구가 현실보다 더 진실하지 않다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겠지요. 소설을 통하여 카뮈가 보여주고자 한 진실은 전쟁으로 빚어진 유럽 인간의 상황이고, 좀 더 확대하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처한 삶의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상황은 감옥살이로 표상됩니다. 실제로 전염병 때문에 도시 봉쇄가 시행된 경우나 전쟁으로 에워싸인 경우는 감옥에 갇힌 삶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둘 다 살아 숨 쉬고 있기는 하지만 유폐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페스트는 전쟁과 전쟁 속에서 겪는 심리적 상태, 나아가서 인간이 처한 삶의 상황을 표상합니다. 오랑의 페스트가 거의 사라지기 시작할 즈음, 그때까지 페스트를 대항하여 혼신을 다해 싸우던 타루가 리유에게 자기 자신은 “이 도시와 전염병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페스트로 고생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타루는 열일곱 살 무렵 부장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법정에 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붉은 머리털을 한 올빼미’와 같은 남자에게 ‘사회의 이름’으로 사형선고를 내리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타루는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집을 떠납니다. 그가 집을 떠난 이유는, 자신은 “결코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는 사형선고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고 보고 살인 행위와 같은 사형 제도에 대항해서 싸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타루는 어떤 이유나 방법으로든 사람을 죽이는 행위, 곧 어떤 종류의 폭력이라도 모두 페스트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헝가리에서 총살형을 집행하는 장면을 보고 타루는 좀 더 근본적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타루가 깨달은 것은 자기 자신은 온 힘과 정신을 다하여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페스트를 대항하여 싸우는 동안 자기 자신이 “끊임없이 페스트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폭력을 반대하면서 그 폭력에 대항해서 자신도 모종의 폭력을 쓰게 되고 비록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자신도 “인간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그러한 죽음에 이르도록 만든 행위나 원칙들을 선(善)이라고 인정함으로써 그러한 죽음을 야기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자기 자신도 아무리 간접적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선의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순환 속에 끼여 있었다는 자각이 그를 그렇게 부끄럽게 했다고 타루는 토로합니다.   

페스트는 타루가 보기에는 악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선한 사람, 선한 의도를 지닌 사람도 페스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지닌 페스트로 인해 사람들은 남에게 가해자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 병독을 옮겨 줄 가능성이 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타루는 깨달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타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의지를 통하여 스스로 긴장하지 않고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통상하는 방식을 따라 ‘자연스럽게’ 살게 되면 누구나 타인에게 질병을 옮기는 병균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소설 끝부분에는 페스트가 발발하기 전부터 돌보아 준 해수병 환자와 리유가 나눈 대화가 나옵니다. 노인이 리유의 친구 타루의 안부를 묻자 리유는 “죽었습니다”라고 답합니다. 페스트로 죽었다고 하자 노인은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랬군요. 언제나 제일 좋은 사람들이 가 버리는군요. 그게 인생이지요. 하지만 그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알고 있는 분이었지요.”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리유가 묻자 노인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냥요. 그분은 그저 무의한 말은 하지 않으셨어요. 어쨌든 나는 그분이 좋았어요. 그냥 그랬다 이겁니다. 딴 사람들은 ‘페스트예요. 페스트를 이겨냈다고요’ 하면서 난리를 치지요. 그러나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지요.” [전문 보기: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강영안 미국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 철학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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