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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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영광
  • 제레미 트릿 | Jeremy Treat
  • 승인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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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능력은 어떻게 약함 가운데서 완전해지는가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영광의 이야기

성경을 볼 때 우리는 고통과 영광이 항상 두 단계를 거친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고통이 선행하고 그 이후에 영광이 따른다고 말이다. 분명 성경 곳곳에서 고통과 영광은 이처럼 순차적인 진행을 보인다(행2:33-36, 빌2:6-9, 벧전1:10-11, 히2:9-10).

하지만 그 두 가지가 서로 겹쳐지는 좀 더 유기적인 관계, 즉 고통 가운데 있는 영광을 묘사하는 장면도 찾아볼 수 있다(요12:23-33, 계5:5-6).

태초의 에덴동산에 이 테마가 등장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게 하셨다. 하지만 상황은 거꾸로 흘러갔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신들과 이 세상을 죄와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죄의 유입으로 인해 새로운 길을 마련하셔야 했지만 말이다. 뱀이 여자의 후손(예수)에 의해 상하게 되고 여자의 후손도 뱀에 의해 상하게 된다(창3:15)는 구절은 새로운 길의 단서를 제공한다.

승리의 약속은 고통의 대가를 요구한다. 여기서부터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승리는 고통 가운데 있고, 높아짐은 낮아짐 가운데 있고, 궁극적으로 나님 나라는 십자가 가운데 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과 무너진 상황 가운데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한 민족을 세우시고, 모함하는 사기꾼(야곱)의 이름을 따서 그 민족의 이름을 지으시고, 형제들이 버린 한 노예 소년(요셉)을 통해 그 민족을 일으키셨다.

하나님은 거인을 쓰러뜨리기 위해 초라하고 변변찮은 다윗을 사용하셨고, 그 후 그를 왕으로 삼아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시대를 다스리게 하셨다. 이사야 52장과 53장은 희생적인 속죄로 영광과 높임을 받으신 한 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은 고통, 희생,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세우러 온 예수를 가리킨다. 예수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요12:32)라고 했다.

언뜻 들으면 예수의 승천을 가리키는 듯하다. 하지만 그 다음 구절은 예수가 자신의 십자가 처형을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당하실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요12:33).

요한복음의 이야기는 예수가 십자가에 ‘들린’ 사건을 영광 가운데 높임을 받는 정점의 순간으로 묘사하며 최고조로 치닫는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는 왕좌가 된다.

십자가는 또한 세상의 논리가 전복되는 지점이다. 수치는 영광으로 변하고, 어리석음은 지혜로, 낮아짐은 높아짐으로 변한다. 십자가의 영광은 신약 전반에 걸쳐 분명히 나타난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계획을 회복하고 계시며, 그 아들은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 쓰신” 분이다(히2:9).

창세기3:15의 ‘상한 뒤꿈치’에서부터 요한계시록 22장의 ‘통치하시는 어린양’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고통 가운데서 영화롭게 되신 메시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광의 의미

우리는 예수를 보면서, 하나님이 가장 강력한 구원의 행위를 이루셨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십자가라는 가장 천한 수단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영광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처럼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에서 영광이 나타난단 말인가?

J. I. 패커의 정의에 따르면 영광이란 “탁월하고 칭찬받을 만한 무언가가 온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를테면 외부에 공개되기 전 최초의 아이폰은 디자인 면에서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그것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비로소 영광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그분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함께 직접 나타나시는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했던 것처럼, 영광은 단순히 하나님의 속성이나 특징(그분의 거룩하심, 사랑, 능력 등) 중 어느 한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영광은 “다양한 탁월함들의 훌륭한 결합”이다. 영광이란 하나님의 성품이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 눈부시고 경이롭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사랑, 자비, 정의, 지혜, 능력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빛이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어우러진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보는 것은, 죄의 심판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정의, 죄인들의 용서하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랑, 사탄의 패배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능력, 거룩함을 나타내시면서 죄인을 위한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지혜 같은 것들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는 말씀의 최종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다면적인 속성들이 영광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이 겹치는 교차로다.

하나님의 영광이 십자가에서 빛난다는 것은 철저히 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이다. 요한복음은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고(요7:18), 아버지가 아들을 영화롭게 하며(요8:54), 이처럼 삼위일체가 서로 영광을 주고받는 것이 창세 전부터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고 말한다(요17:5,24).

그런데 놀랍게도 십자가야말로 이런 삼위일체의 영광의 나눔이 온전히 표현되는 곳이다. 십자가의 희생적인 사랑 가운데서 드러난 영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창이다.

십자가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지혜, 아들의 은혜, 성령의 능력을 본다. 이러한 조화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희생적 사랑을 밝히 드러낸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행복 사이에는 그 어떤 충돌도 없다. 존 파이퍼의 유명한 말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가장 만족하는 순간 우리 안에서 가장 영화로워지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이 죄로 어두워진 세상에 기쁜 소식이 된다는 것을 반복하여 말해준다(고후4:4). 태양 빛이 온 지구에 생명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은 우리 구원의 근원이며 동시에 우리의 성장을 이끄는 힘이다. [전문 보기: 십자가의 영광]

 


제레미 트릿 할리우드에 있는 리얼리티엘에이Reality LA교회 목사이며, 바이올라대학교 겸임교수다. 저서로는 「십자가에 달린 왕」The Crucified King: Kingdom and Atonement in Biblical and Systematic Theology이 있다.

Jeremy Treat, "The Glory of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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