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부름 받은 제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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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부름 받은 제사장이다
  • 마이클 버드 | Michael Bird
  • 승인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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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일에 따로 사제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부름 받은 제사장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따로 사제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난 11월에 나는 멜버른의 세인트폴대성당에서 호주성공회 사제서품을 받았다. 대주교가 내게 손을 얹고 나를 위해 기도할 때, 나는 기쁨과 성스러운 즐거움의 감정에 압도되었다.

사제직에까지 이른 나의 여정은 두 가지 의미에서 매우 특별하다. 첫째, 내가 사제서품을 받은 것은 침례교에서 시작하여 장로교를 거쳐 성공회에 이르는 나의 기나긴 교파 여정이 종착지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내게는 그동안에 내가 속했던 모든 교단과 전통들에 대한 행복한 기억들이 있다. 침례교회는 나에게 예수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장로교회는 신학을 사랑하라고 가르쳤고, 그리고 성공회는 교회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고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성공회는 그 예전적인 예배와 복음적인 말씀선포, 그리고 카리스마적인 우애로 나에게 고향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둘째, 사제서품은 교회와 학문 사이에서 중재자로서의 나의 소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사제‐학자로서 나는 한쪽 발은 강의실에, 다른 한쪽 발은 교회에 두고 있다.

나는 강의단과 설교단 두 곳 모두에 선다. 더하여, 나는 세속 대학들에 있는 믿지 않는 교수들과 회중석에 있는 평범한 신자들 모두와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사제가 되기에 이르는 여정 내내 나에게는 특별히 중요한 말씀이 있었다. 로마서 15장, 곧 바울이 자신의 사역을 기술한 부분이 그것이다. 15절과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내가 몇 가지 점에 대해서 매우 담대하게 쓴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힘입어서,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내게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본문에서 복음을 전하는 나의 소명이 제사장 사역priestly ministry의 소명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사제는 목사요 교사다.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 몫이 맡겨진 사람이다.

그러나 제사장 사역은 단지 안수 받은 목사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을 돌봄으로써 “모든 신자들의 제사장직”에 참여한다.

 

우리를 제사장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

그렇다면 왜 나는 나를 사제라 부르는 것일까?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고해성사와 연옥 같은 문제 많은 중세의 어떤 개념들을 떠올린다.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목적이 아니었나? 왜 지금 그런 것들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침례교회와 장로교회에 있던 시절에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사장의 신분이 있다는 사상에 불편했다. 결국,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하신 대제사장이시다(히4:14‐15). 그리고 개혁자들이 가르쳤듯이, 선출된 소수의 사제가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제사장이라는 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구나, 사제라는 말에는 중재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딤전2:5) 따라서 사제는 필요하지도 않고, 사제가 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할 것이 있다. 자신의 사역을 제사장의 직무로 설명하는 바울은 어떤 단서도 붙이지 않았다. 바울은 레위기의 제사장으로 오해되거나, 로마의 신들에게 제사하는 신관들Flamens과 잘못 엮일까봐 걱정하지 않는다.

바울은 제사장을 적극적인 호칭으로 사용한다. 자신의 사도 사역을 설명하는 성경적 이미지로, 그리고 교회의 유익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복음주의 서클에서 사제직을 형식적인 예식과 연결 짓고 ‘의식으로 구원’salvation by ceremony으로 풍자하는 것을 나는 자주 목격한다.

그런데 바울은 제사장의 직무라는 표현으로[“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 자신의 사역과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풍부하고 활력이 넘치게 기술한다. 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가!

내가 복음주의 사제직evangelical priesthood이라는 개념을 꺼내면 학생들이 거부감을 느낀다. 그럴 때면 나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회계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회계사.”

“엔지니어링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엔지니어.”

“상담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은요?”

“상담사요.”

이렇게 합창하듯 대답하던 학생들이 내가 빤한 질문들을 늘어놓는다고 슬슬 생각할 때쯤 나는 정곡을 찌르는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바울이 여기서 설명하고 있듯이, 복음 선포라는 제사장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여러분은 무엇이라 부릅니까?”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뭔가 정답을 생각해 내려고 애쓰는 학생들도 있고, 그냥 “아”하고 마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렇게―그렇지만 머뭇거리면서―대답한다. “사제입니다.”

이것은 사제가 되려고 가톨릭이나 정교회, 성공회 교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파한다면, 그가 어느 교파에 속해 있든 이미 그는 제사장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제사장 사역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복음 선포가 제사장 직무의 핵심이다. 평신도 사제든 기도와 말씀과 성사의 사제직에 서품 받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복음주의 사제직에는 문자 그대로의 성전도, 문자 그대로의 희생제물도, 그리고 문자 그대로의 제사예식도 없다.

우리의 성전은 교회이며, 우리의 유일한 희생의 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이며, 우리가 행하는 유일한 제사는 우리의 몸을 찬양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사장 사역을 은유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은유는 중요한 사실을 가리킨다. 안수 받은 성직자로부터 평범한 신자까지 모든 차원에서,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고, 어둠을 물리치고, 그리고 만국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도록 부름 받았다.

선교사 사제단a college of missionary priests으로서의 교회는 오명과 어둠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과 빛과 평화와 해방과 거룩함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도구는 성령의 능력, 생명의 말씀, 그리고 복음의 가시적 징표들 곧 세례와 성찬이다.

거룩함과 소망과 온전함의 일을 하는 우리이기에, 제사장 이미지는 특히 잘 어울린다. 평신도 제사장 직무는 색다른 모자, 종교적 소지품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줄 때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와 관한 일이다.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런 멋진 말을 했다. “나에게 제사장 직무는 설교하고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내가 드리는 제물이다.”

바울도 진심으로 동의할 것이다. [전문 보기: 우리는 모두 부름 받은 제사장이다]

 


마이클 버드 성공회 사제, 호주 멜버른 리들리 칼리지 신학 강사, 휴스턴침례대학교 방문연구교수. 가장 최근 저서는 존더반 출판사의 Story of God Bible Commentary 시리즈 「로마서」이다. 블로그는 Euangelion.

Michael Bird, “We are all called to be pri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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