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가장 오용되고 있는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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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장 오용되고 있는 단어
  • 유진 피터슨, 마크 갤리 | Eugene Peterson, Mark
  • 승인 2020.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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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 교회를 파괴하는 거짓과 착각에 대해 말하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영성은 매우 일상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아무 재미도 없다고, 아무런 기쁨도, 윤택함도, 환희도 없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세상의 가치라는 관점에서 복음을 선전한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속이는 셈이 됩니다.

복음은 새로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포함됩니다. 복음에는 십자가가 포함됩니다. 죽음과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포기합니다.

마가복음은 매우 시각적입니다. 마가복음의 처음 절반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보여 주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런 다음 바로 중간 부분에서, 예수님은 방향을 전환하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보여 주시기 시작합니다.

“이제 네가 생명을 얻었으니, 너에게 어떻게 생명을 버리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삶의 모든 것입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을지를 배울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착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친밀함과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삶에는 학습된 수동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차적인 관계 양식은 주고 받고 행동하는 것이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그리 잘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기를 주장하고, 얻고, 적용하도록, 또는 소비하고 성취하도록 길들여져 있습니다.


회개, 자기에 대해 죽음, 복종. 이런 것들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끌어들이기에 아주 매력적인 낚싯바늘은 아닌데요.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난관에 봉착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소비 세계에 가입하는 셈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 고안된 제품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고, 더 좋은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가 생명을 얻은 다음이니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지를 배워 가는 중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소비주의적 접근법들에 염증 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들이 그런 접근법들에 중독되어 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유익이란 관점에서 복음을 내던져 버린다면,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는 셈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성경이 쓰인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로 오신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울이 설교한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내용을 어디에서 가져왔단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하나의 교과서, 즉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은 거의 언제나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잘못된 길로 갔다. 돌이키라. 문화가 독을 뿜고 있다.”

우리는 과연 미국의 교회 문화가 가나안의 바알 문화를 거의 얼마나 정확하게 복제하고 있는지 인식하고 있습니까? 바알 종교는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입니다. 바알 숭배는 우리가 그것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것들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놀랄 만큼 성공적이었습니다.

바알 제사장들은 야훼를 따르는 무리들보다 20:1로 더 많은 수의 대중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성(性)이 있었고, 흥분이 있었고, 음악이 있었고, 황홀경이 있었고, 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여, 이리로 오면 아가씨들이 있다오.

우리에게는 신상들과 아가씨들과 축제가 있다오.” 이는 매력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의 종교는 뭘 줘야 했을까요? 말씀입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긴, 그러고 보니 히브리인들에게도 최소한 축제는 있었군요!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 신앙에 하나의 큰 낚싯바늘이나 유익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러면 네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청중을 정당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어떤 것이 아닐까요?

구원(salvation)과 구원 받음(being saved). 이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크고 중요한 단어입니다. 우리는 부활 없는 삶의 방식으로부터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구원 받았습니다. 영적 삶을 정의하는 하나의 방법은, 우리 자신에 대해 너무 염증이 나고 물려 버려서, 더 나은 어떤 것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익이란 관점에서 신앙을 선전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아의 문제를 악화시킬 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면, 당신은 더 나아지고, 더 강해지고, 더 사랑받을 만하게 되고, 어떤 황홀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양적으로 더 많은 자아일 뿐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에 대해 물려서,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유형이건 영적인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 영적인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여성은 훌륭한 사람이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항상 기도하고, 성경을 읽습니다. 하지만 그 여성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 자신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 증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것을 더 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의 문제를 더 잘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오로지 나, 나뿐입니다.

보기 어려운 방식으로 가장하고 있는 나뿐입니다. 그 여성의 영적인 말투가 우리를 무장해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참모습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시화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일요일에 교회에서, 개구쟁이 아이 둘을 둔 한 부부가 우리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두 칸 뒤에는 또 다른 부부의 개구쟁이 둘이 꽤나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로서는 이미 교회 안에 오래 있었던 셈입니다.

회중은 대개 나이 든 분들로, 완고한 분들이었습니다. 예배는 썩 훌륭한 예배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난 후에 저는, 대여섯 분의 노인들이 다가와서는 아이 엄마를 팔로 껴안아 주고, 아이들을 토닥거려 주고, 그녀에게 연민을 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역정이라도 낼 판이었는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필이면 왜 그런 교회에 갑니까? 유아실이 있고, 냉방이 되어 있고, 다른 것들도 잘 갖추어져 있는 교회로 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루터교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누추한 것에 별 신경을 쓰지 않으니 말입니다! 노르웨이 루터교인들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그리고 최근에 같은 교회에서, 아기 하나와 세 살 된 남자 아이를 둔 젊은 여자 한 분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몇 주 전에 세례를 받았지요. 그러나 그녀에게는 남편이 없었습니다. 결혼한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아빠가 달랐습니다.

그녀는 교회에 와서 아이들이 세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었고, 그리스도인의 길을 따르길 원했죠. 그래서 교회의 한 부부가 대부모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현재, 교회에서는 서너 부부들이 일요일마다 그녀와 함께 어울려 지내려고 합니다.

그 교회 어디에 ‘기쁨’이 있습니까? 이 사람들, 뚱한 노르웨이인들 아닙니까!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기쁨이 있습니다. 풍성한 삶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이 생각하는 방식대로의 풍성함은 아닙니다. 저는 이런 교회들에서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반문화적입니다. 그들은 기쁨과 복종과 돌봄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가 교회 성장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런 것을 알 수는 없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렇죠? [전문 보기: 영성, 가장 오용되고 있는 단어]

 


Interview by Mark Galli "Spirituality for All the Wrong Rea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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