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와 은사주의가 짝을 이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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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와 은사주의가 짝을 이룰 때
  • 브렛 맥크래켄 | Brett McCracken
  • 승인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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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교리적 가르침과 성령의 은사가 결합하여 말씀에 불을 붙이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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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부흥

역사적으로, 개혁주의 진영에 속한 복음주의자들과 은사주의 진영에 속한 복음주의자들은 성령의 은사들(가령, 고린도전서 12:7-10에 열거되어 있는 아홉 가지)이 오늘날의 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서 스펙트럼의 양쪽 끝에서 서로의 관점을 의심해 왔다. 

개혁주의 전통은 일반적으로 은사중지론 입장에서 신유, 방언, 예언 같은 성령의 은사들이 계속되는 것을 부인하거나 회피한다.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던 시대를 위해서만 있었다고 은사중지론자들은 확신한다. 반면에 은사주의자들은 이러한 은사들은 현재도 여전이 얻을 수 있고 또한 가치 있다는 은사지속론의 입장을 견지한다. 

개혁주의로 중무장한 존 맥아더 같은 은사중지론자들은 은사주의에는 성경적 진리가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은사주의는 영적인 체험을 건전한 교리보다 우선시한다고 지적한다.

맥아더는 2013년에 출간한 「다른 불」 Strange Fire에서 “은사주의자들은 그들이 성경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로 교리를 경시한다. 그들은 시간을 초월한 객관적 진리에 대한 어떤 관심사도 성령의 역사를 질식시킨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챈 같은 은사지속론자들은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이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이 주장은 챈이 2009년에 낸 「우리가 잊은 하나님」Forgotten God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감정의 남용이나 제어하기 어려운 감성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은사중지론자들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5:19-20에서 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바로 그것―“성령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말씀에 대한 지식과 성령 체험을 서로 맞서게 만드는 이러한 뿌리 깊은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은 없을까? 프랜시스 쉐퍼는 있다고 생각했다. 1974년에 쓴 글, “주님의 길 안에 있는 주님의 일”에서 쉐퍼는 이렇게 말했다. 

종종 사람들은 개혁과 부흥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듯이 행동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 개혁을 요청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부흥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개혁과 부흥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사실, 이 두 단어 모두 회복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개혁은 순수한 교리로의 회복을 말고, 부흥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의 회복을 말한다. 개혁은 성경의 가르침으로의 복귀를 말하고, 부흥은 성령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삶을 말한다. 

교회 역사에서 위대한 순간은 이러한 두 가지 회복이 동시에 일어났을 때였다. 개혁이 없다면, 진정한 부흥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부흥 없는 개혁은 불가능하다. 

 

머리+가슴

교회 개척 사역자 디한 리는 쉐퍼가 40년 전에 요청했던 이러한 회복을 자신의 삶과 그의 교회, 리뉴 교회 LA Renew Church LA에서 처음으로 목격했다.

리뉴 교회 LA는 15명이 거실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성령과 말씀에 기대고 있는 이 교회에는 400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말 집회에 모이고 있다.

“우리는 복음 연맹Gospel Coalition의 정직 회원입니다.” 리가 말했다.

“우리는 존 파이퍼와 팀 켈러의 빅 펜입니다. 우리는 칼뱅주의 5대 요지를 꼭 붙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베델[초교파 은사주의 교회]과 IHOP[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은사주이적 복음주의 선교 단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샘 스톰스도 정말 좋아합니다. 신학을 사랑하는 언약적 개혁주의자로 사는 것과 성령이 교회에 원하시는 것을 추구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불일치도 느끼지 않습니다.”

리 목사는 자신의 설교에 “리폼드”라는 꼬리표를 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 꼬리표는 그의 소매에 붙어 있지 않다 뿐이지, 그의 뼛속에는 여실히 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과 선택을 설교한다. 또한 그는 예언과 은사와 영적 행복도 설교한다. 

“사람들을 새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균형입니다. 균형 잡힌 곳에서 사람들은 좋은 신학을 가질 수 있고 또 성령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리는 말했다. 목회 사역 중에 탈진을 경험한 그는 플로리다에서 열린 치유 사역Christian Healing Ministries 컨퍼런스에서 은사주의라는 돌파구를 발견했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리는 장로교인, 개혁주의자, 그리고 은사중지론자로 성장했다. 이런 용어들을 그 시절에는 사용한 적도 없지만 말이다.

그가 개혁주의적 은사주의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웨인 그루뎀의 영향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웨인 그루뎀의 강의 시간에는 치유의 시간이 있었다. 그루뎀이 “은사주의적 개혁주의 신학을 확신을 갖고서 가르쳤다”고 리는 회상한다. 

그 플로리다 컨퍼런스에서, 리는 결국 “내 신학에 불어넣는” 근본적인 치유, 깊은 회개, 비전, 그리고 예언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것이 내 머리에서 내 가슴까지 이전에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문을 열어 젖혔습니다.”

오늘의 문화에서는 정통 하나만으로는 감동을 줄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우리는 정통 신앙의 막다른 골목에 와 있습니다. 정통 신앙, 정말 멋진지요. 그런데 그것이 결혼생활을 어떻게 치유하지요? 삶의 우울증과 수치심을 그것이 어떻게 제거하지요?” 그는 말했다.

“망가진 도시 속으로 들어가려면 정통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전문 보기: 개혁주의와 은사주의가 짝을 이룰 때]

 


브렛 맥크래켄 Gospel Coalition의 편집인, Hipster Christianity, Gray Matters, Uncomfortable의 저자. 

Brett McCracken, “The Rise of Reformed Charisma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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