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 빛의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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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빛의 데칼코마니
  • 홍승영
  • 승인 2020.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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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가지__홍승영 목사의 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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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칼코마니라는 주제를 듣던 아내가 미간을 좁히며 찡그린다. 나는 급 겸손해져서 “내가 주제를 잘못 정했는지” 물었다.

아내는 “좌우가 딱 떨어지게 대칭인 그 정형성이 숨 막힌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들을 주시는 이유를 깨달았다.

기쁜 일 다음에 또 기쁜 일이 와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은데 고난이 불쑥 찾아온다.

삶에 있는 기쁨과 고난은 한 쌍의 비대칭 데칼코마니 작품 같다. 서로 다른 대칭이고 심지어 상반되는 형태여서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열어 준다.

하나님의 데칼코마니는 한쪽 면에 묻은 물감 덩어리를 덤덤하게 찍어 내는 유치원생의 놀이 작품이 아니다.

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데칼코마니〉는 중산모를 쓴 신사의 뒷모습과 그 신사의 외곽선을 따라 오려내듯이 커튼을 그렸다.

마그리트의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은 작품 속 신사가 바라보는 구름과 바다를 커튼의 방해를 받지 않고 동일하게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피사체의 감정에 동화된다. 마그리트는 자신이 “피사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그리는 것”이라 했다.

그의 작품은 미술가만 아니라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같은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근대 이후의 데칼코마니는 대부분 동질의 피사체를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다.

마치 우리의 삶이 상반되듯 다른 시간을 만나고(여행을 갔다 와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것 같은), 다른 초청을 받는 것(뮤지컬 이벤트에 당첨된 소식을 듣고 환호하고 있다가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학교에 좀 오셔야겠어요!”)과 비슷하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여러 면모를 지닌 우리 인생의 데칼코마니를, 성경은 마치 드라마를 보듯 들려준다.

친구와 함께 있으면 강하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악한 길로 갈 때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잠언 18:24; 전도서 4:10). 자녀가 많으면 잦은 탄식을 쏟는다. 넷째가 열한째를 부모 몰래 노예로 팔기도 한다(창세기 37:26-27).

그런데 많은 자녀의 힘으로 원수를 굴복시키기도 한다(시편 127:3-5). 하나님의 꾸지람은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사랑을 확인한 것이다(잠언 3:11-12).

소가 없으면 지저분한 외양간 대신 청결한 창고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밭을 가는 쟁기를 직접 끌어야 할 거다. 이웃이 거대한 소 두 마리로 밭을 가는 목가적인 풍경을 옆에서 보게 될 텐데, 소의 육중한 근육이 물결치듯 움직이는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하려 할 것이다. 밤마다 찾아오는 근육통은 덤이다(잠언 14:4).

문제는 이런 지혜의 문학을 읽을 때는 동의하지만 자신의 삶에 실현되면 회피하려는 태도다. [전문 보기: 그늘과  빛의  데칼코마니]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세기 49:22)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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