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돼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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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돼도, 괜찮아!
  • 임지원
  • 승인 2020.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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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공감일기

지금 이 순간,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TV를 통해 보는 세상이 크게 다가온다. 특히 드라마. 예전에는 몰랐는데, 매일매일 이렇게 많은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니!

300개가 넘는 채널 곳곳에서 십년 전, 이십년 전 방영된 드라마까지 재방송을 해주고 있다.

리모컨을 쥐고 채널 탐험을 하다 보면 ‘전원일기’부터 한창 어린 현빈이 나오는 ‘내 이름은 김삼순’에, 풋풋한 공유의 ‘커피 프린스’ 등등 그야말로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연속 방송에 제대로 걸리면 하루 종일 밥을 하면서도 설거지를 하면서도 심지어 빨래를 정리하면서도 계속 그 드라마와 함께하게 된다.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드라마만 보겠다고 결심하면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이미 다 본 드라마인데도 어떤 드라마는 집중을 하게 되고, 마음이 촉촉해진다. 나는 드라마 천국에 산다!

작년에 큰 아이가 힙합 동아리에서 개최한 행사에 참여했다가 싱가포르 친구 한 명을 알게 됐단다.

그 친구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카카오 톡으로 종종 대화를 나누는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엄청 재미있다며, 둘이 그 드라마의 줄거리를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눴다는 거다.

그 사이 그 드라마가 수출까지 됐나 했더니 넷플릭스 덕분에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드라마를 전 세계가 함께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만 신기한가?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청계천 불법 복사 비디오로 접한 나로서는 이 또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강동원의 좀비 영화 ‘반도’가 싱가포르 박스오피스 1위라며 우리가족도 안 본 한국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전했다니 놀라울 수밖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나도 흥미롭게 봤다.

그런데, 싱가포르 젊은 친구가 우리나라의 병원 정서에 공감하는 게 가능한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나 역시 오래 전 조지 클루니가 나오는 미드 ‘ER’에 열광했고, 괴팍한 천재 진단의학 의사가 주인공인 ‘하우스’에 빠져 시즌 전체를 몽땅 다 봤다!

심지어 나는 영어도 못하고 미국도 모르지만, 찰떡같이 이해했고, 공감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까지 한 그 싱가포르 청년에게 우리 드라마는 어쩌면 친근한 이야기였겠다.  
  
얼마나 좋을까? 그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 그들은 지금 기분이 어떨까? 9년 전 늦둥이를 임신하며 멈춘 나의 마지막 경력은 드라마 보조 작가다.

예능 작가로 일하게 되면서 자의반 타의반 접었던 꿈이 드라마 작가였다. 더 늦기 전에 끝장을 보고 싶어 다시 도전했는데, 마음만큼 실력은 따라주지 않았다.

인터뷰하면서 자료 조사를 다니고, 팀원들과 회의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즐거운데, 내 작품을 쓰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뒤늦게 작가 교육원을 다니며, 드라마라 불리기도 민망한 것들을 썼다.

잘 쓰진 못했지만 그래도 쓴다는 게 즐겁고, 현업에서 일하는 작가와 연출자의 강의를 듣는 게 흥미로웠다. 다 좋았는데, 함께 공부하는 몇몇 동지들의 독한 비판을 듣는 일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내 습작에 ‘드라마’가 아닌 거 같다고 한 어떤 동지의 습작에 나 역시 독한 비난의 댓글을 퍼부어 주었다. 그 작가 교육원은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에 위치한 건물에 있는데, 어쩌다 그곳을 지나가면 그때 그 진흙탕 싸움이 떠올라 민망하다.

괜한 경쟁심에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날뛰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강의하던 작가님의 보조로 나름 발탁도 되고 작품에 참여하면서 뭔가 될 거 같은 느낌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산부인과 조산집중 관리실에 감금됐고, 꿈을 향한 항해는 저절로 중단됐다.

사실 드라마 공모 합격과 같은 고지를 코앞에 두고 중단된 것도 아니니 ‘경단녀’ 엄살 부리는 것도 웃기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것이 아쉬웠다. [전문 보기: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돼도, 괜찮아!]

 


임지원 주부. 딸 둘과 남편, 넷이서 경기도 일산에서 씩씩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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