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인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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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인사는 없었다!
  • 권해생
  • 승인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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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난제 해설 No.15 베드로전서 1:1-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전서 1:1-2 

 

우리 집 앞에 마카롱 가게가 있다. 자주 지나치는 곳인데, 특이하게도 이 가게는 일주일에 3일만 영업한다. 가게를 열어 두는 시간도 아주 짧다.

처음에는 가게 주인이 부자여서 그냥 취미 삼아 운영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어느 날 큰 아이가 마카롱이 먹고 싶다고 해서, 주변에 좋은 마카롱 가게가 없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우리 집 앞에 있는 그 가게가 온라인에서 꽤 알려진 마카롱 전문집이었다. 여러 블로그에서 정평이 나 있었다. 짧은 시간 영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마카롱 제조 레슨을 하는 곳이었다. 무심코 지나친 그곳이 사실은 아주 유명한 맛집이었던 것이다.

성경에도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지만, 알고 보면 진귀한 신앙의 진리가 담긴 명 구절이 적지 않다.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하나님 말씀이 있을까마는, 간단한 표현 같았는데 알고 보니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담은 말씀이 있다.

베드로전서 1:1-2도 바로 그런 말씀이다. 다른 서신서 인사말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본문도 저자의 간단한 인사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짧은 구절에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서신의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종의 준비 단계처럼 취급한다. 메인 음식을 먹기 전에 애피타이저를 대하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이 짧은 두 구절에 사도 베드로의 깊은 신앙이 담겨 있고, 베드로전서의 핵심 신학이 녹아 있다.

 

바른 해석: 나그네 인생

베드로는 인사를 하면서, 먼저 이 서신을 받는 성도의 정체성을 언급한다. 성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 준다. 성도를 “나그네”라 한다. 나그네란 일반적으로 자기 집을 떠나 여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나 대중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노래에 보면 정해진 곳이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특징이 잘 나와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는 그 뉘앙스가 다르다.

집이 따로 있는 사람, 돌아갈 집이 있는 사람, 그래서 이 땅에서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도는 바로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다가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비단 인사말에서만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성도를 나그네라 부른다(1:1, 17; 2:11).

베드로전서 본문에 나오는 헬라어가 조금씩 다르고(파레피데모스/파로이키아/파로이코스), 한글 번역도 차이가 있지만(나그네/거류민), 기본적으로 이런 단어들은 영원한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성도의 정체성을 말한다.

초대 교회 기록에 의하면, 교회의 별칭은 “나그네”였다. 1-2세기 초대 교회 편지들의 인사말을 보면, 당시에 교회를 나그네로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클레멘스의 첫 번째 편지―“로마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고린도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폴리캅(폴리카르푸스)의 편지―“폴리캅과 장로들은 빌립보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의 편지들―“고티나에서 나그네로 살고 있는 교회에게, 그리고 그레데의 나그네 교구들에게”

초대 교회는 서로를 “나그네”라 불렀다. 나그네 성도, 나그네 교회라 불렀다. 나도 나그네, 당신도 나그네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며 격려한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을 서로 알려주며 기억했다. 

이런 나그네에게 세상은 낯설고 불편하다. 세상의 문화와 방식이 나그네에게는 낯설고 불편하다. 그래서 나그네는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지 않는다고 나그네를 핍박한다(4:4, 12).

세상 임금인 마귀가 세상의 문화를 따라 살라며 성도를 유혹하고 공격한다(5:8). 사람들은 뚜렷한 이유 없이 나그네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못살게 군다(2:19).

나그네로서 성도는 타지에서 이런 어려움을 당한다. 바로 이럴 때, 성도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고, 우리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문 보기: 지금까지 이런 인사는 없었다!]

 


권해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작은목자들교회 협동목사. 「요한복음 주석」(고신대학교출판국, 2017)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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