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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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는 이단
  • 필립 젠킨스 | Philip Jenkins
  • 승인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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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종파들은 오래 전에 쇠락했지만 그 관념들은 지금도 살아 있다

세상은 내 집이 아니다. 이 말은 대다수 정통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반영하지만, 영지주의자는 이 말을 더 멀리 끌고 가려 한다.

영지주의 관점에서는, 물질 세계는 타락한 창조물 정도가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전적으로 잘못된 창조물이다.

신-적어도, 선하고 참된 신-은 물론 역사 속에서 일하지 않는다. 탈출Escape은 오직, 내면에서 해방의 필요성을 깨닫는 소수의 무리에게만 가능하다. 지혜 곧 소피아Sophia는 영적인 사람들 곧 엘리트를 위한 것이다.

지혜는 이들을 물질적인 것의 수렁에 빠져 있는 우매한 인간들, 곧 우주 사기극의 피해자들과 구별지어 주는 것이다. 대중은 잠자고 있을 테지만, 진정한 영지주의자는 깨어 있다.

영지주의가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오늘날 일부 학자들은 로마 제국 후기에 영지주의의 비밀 복음서들이 금지당했다며 개탄해 마지않고 있지만 말이다.

영지주의의 중요한 주제들은, 예컨대, 유대교 카발라 전통 속에도 살아남아 있다. 카발라 전통은, 신적 선divine goodness이 담긴 그릇들이 부서지면서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

카발라교도들은 신을 향한 신비적 상승을 추구하는 동시에 ‘티쿤 올람’tikkun olam의 달성, 곧 부서진 세계의 회복을 서약한다.

기독교 세계를 보아도 알 수 있듯, 기독교 국가들이 공식적으로 이단을 억압한 결과, 영지주의 관념들은 변경 너머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 같은 지역들로 퍼져 갔다.

영지주의적 이원론 관념들은 바울파Paulicians와 마니교Manichaeans 같은 운동을 통해 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 번창했다. 바울파나 마니교는 빛의 자녀들에게 이 세상의 악한 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가르쳤다.

이따금, 영지주의 관념들은 유럽으로 역수입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카타르Cathar 또는 알비파Albigensian 운동인데, 이들은 13세기 프랑스에서 정벌군에 의해 대학살에 가까운 억압을 받았다.

카타르교도는 이 세상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완전한 사람들”만이 온전한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오랜 영지주의 관념을 충실하게 따랐다.

이렇듯 새롭게 부흥한 옛 운동들은 기독교의 복음서들에 주로 의존했는데, 이 복음서들에 나오는 비유들을 나름대로 독특하게 해석했다.

그렇지만 초기 영지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운동들은 「전도자 요한의 책」Book of John the Evangelist 같은 자기네 성경을 쓰기도 했다.

기독교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살아간 후기 영지주의자들은 교회와 교리에 대항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취했으며, 이는 참으로 영적인 사람들을 돋보이게 해주었다.

카타르교도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문자 그대로 사탄의 회당이라며 거부했다. 가톨릭교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을 창조하고, 구약 성서에 그 잔인한 악행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미혹의 신을 좇는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가톨릭교도들이 양떼인 것은, 고분고분하고 무지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라는 의미에서였다.
 


늙은 노보대디와 여자의 갈빗대

도시화와 산업화로 유럽이 위협적인 사회가 되어 가자, 빛의 자녀(영지주의자)들은 교회 그리고 기성 교회의 하나님과 악한 사회를 노골적으로 동일시했다.

낭만주의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사회 자체의 탐욕과 무지의 환영인 거짓 신, 늙은 노보대디Nobodaddy, 질투의 아버지에게 사로잡혀 있는 세상을 보았다.

블레이크는, 거인 앨비언Albion의 영이 멸망하고 분열되는 완전한 영지주의 신화를 보여 주었다. 세상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유리즌Urizen 세력이 지배하고, 이 세력은 로스Los라는 혁명적 상상력의 도전을 받는다.

오로지 로스만이 앨비언이 상실한 신성을 기억하고 있고, 그만이 앨비언을 깨울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는 반역의 논리를 자연스런 결론까지 이끌고 갔다.

무섭고 불의한 사회와 동맹을 맺은 교회가 하나님에 관하여 설교한다면, 그 교회로부터 반역자로 중상을 당한 해방자, 사탄을 찬미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19세기 말부터, 영지주의 문서 원본들이 다시 한 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896년부터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3세기「 피스티스 소피아」Pistis Sophia의 번역판을 읽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은 영지주의 신화를 완벽하게 개관하고 있다.

여권 신장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욱 충격을 준 것은, 이 문서가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여성 제자들이 예수와 주고받은 긴밀한 교제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이 당시에 준 충격은 나그 함마디 문서들과 도마복음이 수십 년 뒤에 주게 될 충격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1970년대가 되기까지 세계는 이런 급진적인 견해를 몰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피스티스 소피아」를 비롯한 여러 문서들은 진보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이 위계적 교회의 족쇄에서 풀려난 새로운 기독교를 구축하고자 했던 시대에 굉장한 매력을 풍겼다.

이 목적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예수를 따른 최초의 제자들의 잊혀진 진리-못된 교회 관료주의가 억압했던 교리들-를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1909년에 쓴 글에서 프란시스 스위니는 이렇게 주장했다. “고대 영지주의자들은 교육받은 여성들, 여성해방 운동의 초기 개척자들, 기존 입장들의 진실성과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변증적인 딸들, 가장 지성적인 여성들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은 성령의 여성성을 믿었던 원래의 믿음을 충실히 지켰다.

이 진리는 4세기가 되면서 기독 교회의 남성 제사장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금지되었다.” [전문 보기: 죽지 않는 이단]

 


필립 젠킨스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교 역사·종교학 교수이며, God’s Continent:Christianity, Islam and Europe’s Religious Crisis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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