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마리아, 애곡하는 라헬”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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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마리아, 애곡하는 라헬” [구독자 전용]
  • 웬디 머레이 조바 │Wendy Murray Zoba
  • 승인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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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영광스런 탄생과 베들레헴 사내아기들의 잔혹한 죽음은 조화될 수 있는가?

내가 살았던 온두라스에서는 사람들이 매년 12월 28일을 “무고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로 지킨다. 예수 탄생 후 베들레헴에서 죽임을 당한 아이들을 “기념하는” 하는 날이다. 이 축일은 사람들이 서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 만우절과 매우 비슷하다. 사람들은 서로 장난을 치고, 장난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순교자”라고 부른다. 베들레헴의 그 비극을 이런 식으로 기념한다는 것이 나는 정말 낯설고 이상했다. 하지만, 의도했건 아니건, 이 모순에는 날카로운 논리성이 있다. 베들레헴의 그 참상은 헤롯이 두 살부터 그 아래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면서 일어났고, 이것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동안 우리는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트리, 쇼핑에 열광할 뿐, 그 잔혹한 이야기는 쉽게 지나쳐버린다. 정말이지, 크리스마스는 잔혹함, 곧 (C. S.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세주의 “침략”과 악의 세력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이다. 포푸리 향과 군밤 냄새 속에 이 어두운 이면을 감춰버리는 것은 크리스마스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며, 만우절 장난에 속아 넘어간 바보처럼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한 인물들을 고귀한 인물과 비참한 인물로 매우 대조적으로 병치했다. 그는 별과 검, 유대인의 왕의 나심과 병적인 왕의 동요, 기뻐하는 마리아와 애곡하는 라헬, 죽은 아이들과 살아남은 아이를 나란히 묘사했다. 우리는 구주의 영광스런 탄생을 사내아기들의 잔혹한 죽음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헤롯의 잔인무도한 악행을 전하는 문서는 성경 외에는 없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정말로 “작은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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