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의 ‘이야기 책’의 위험성과  이에 대한 효율적 방어 전략”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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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의 ‘이야기 책’의 위험성과  이에 대한 효율적 방어 전략” [구독자 전용]
  • 김진혁
  • 승인 2020.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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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이야기와 형식을 차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서  평

친애하는 팀장님께

요즘 인간들이 삶의 의미를 못 찾고 근근이 사는 모습에 팀장님께서 오랜만에 썩은 미소를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희도 정시퇴근과 주말을 포기하고 기가 쪽쪽 빨리며 일한 보람을 느낍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갈등이 터지고, 남녀노소 입에 살기 힘들다는 한탄이 가득합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란 아름다운 찬양을 입에 달고 산다지요? 팀장님께서 펼치신 지략이 정치, 종교, 교육, 경제할 것 없이 성공하지 않는 곳이 없어 보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드리는 말씀이지만 팀장님께서 ‘지옥 직속 한국 유혹자 지부’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느꼈던 뼈가 녹아내리는 기쁨이 과연 헛되지 않았습니다.[1] 스크루테이프님 이후 가장 주목받는 차세대 악마다우십니다. 

[1]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등장하는 선임 악마와 비슷한 어투를 사용하는 ‘지옥 직속 한국 유혹자 관리팀장OOO ’의 불가사의한 존재는 다음의 편지가 블로그 ‘번역가 홍종락의 서재를 소개합니다’에 공개되며 일반에 알려졌다. 홍종락, “고작 한 권의 책이 갖는 위험에 관하여.”

 

물론, 인간을 유혹하던 스크루테이프님의 전략이 잘 먹혔던 때도 있었습니다. 요즘 그분은 근사한 카펫이 깔린 깔끔한 사무실에서 빳빳한 흰 와이셔츠를 입고 서류만 보고 있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 팀장님 급의 노련함이나 악랄함을 더는 보여줄 수 없더군요.[2]

[2] C. 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2005), 222쪽 참고. 

 

현장감을 다 잃어버린 꼰대가 자기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면 부하들에게 시말서를 쓰라는 둥 잡아먹겠다는 둥 시도 때도 없이 위협한답니다. 덕분에 그 밑에서 일하는 제 연수원 동기 악마가 지옥을 제대로 경험하고 있다지 뭡니까.

게다가 팀장님처럼 교활하고 유능한 악마는 쳐내고, 매번 실수만 하는 무능한 자기 조카를 밀고 있으니 누가 그를 제대로 된 상급 악마로 인정하겠습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스크루테이프님이 조카 웜우드에게 보냈던 편지 서른한 통이 유출되면서 우리의 일급 유혹술이 인간에게 공개되었던 사고 기억하시지요? 사무실에서 펜대나 굴리다 후배 악마 밥줄을 끊어놓을 참사를 벌리고도, 정작 자신은 그 실수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악마가 되어 으쓱거리며 돌아다니는 뻔뻔한 꼴을 못 봐주겠습니다.

스크루테이프님이 자신의 유명세를 높이려고 일부러 편지를 흘렸다는 의혹도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랜만에 편지로 보고를 하려다 화제가 다른 곳으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뒷말과 험담만큼 악마의 호기심을 살찌우는 것이 없으니 팀장님도 내심 즐거우셨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제 쥐새끼가 더러운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듯 본론으로 재빨리 들어가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형 사건이 한국에서 터졌습니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 원수를 사랑하는 이들이 작당해서 벌리는 일은 정말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3]

[3] 악마 스크루테이프는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을 “원수”로, 악마들의 우두머리는 “지하 깊은 곳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른다. 수신인과 발신인이 모두 악마인 이 편지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그대로 사용된다.

 

1941년에 스크루테이프님의 편지를 하나하나 공개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C. S. 루이스라는 영국인 아시잖습니까. 그 작자가 그 편지를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를 말하지 않겠다고 잡아떼어서, 스크루테이프님에 대한 감찰부의 조사도 증거 부족으로 흐지부지 끝나버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편지 사건의 혜택을 받은 둘의 관계는 아무리 봐도 구린 구석이 있단 말입니다.)[4]

[4] C. 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10쪽 참조.

 

그 인간이 평소 이런저런 글을 쓸데없이 꽤 많이 긁적거렸는데, 그가 썼던 문학 비평 에세이를 모은 「이야기에 관하여」가 한국어로 출판되었다지 뭡니까.[5] 이 소식을 듣고 제 눈과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문학 비평이라뇨. 저희가 위기의식을 잔뜩 불어넣은 마당에 팔자 좋게 이런 책이 나올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5] C. S. 루이스, 「이야기에 관하여」(홍성사, 2020), 이하 이 책에서 직간접 인용은 본문 내 괄호 안에 쪽수로 표시하였다.

 

무신론자 루이스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 우리가 지금껏 겪어온 엄청난 곤경을 생각하면 온몸이 부르르 떨리고 분노가 차오릅니다. 영국과 미국의 엘리트 유혹자 악마들도 루이스의 혐오스럽고 뻔뻔한 말장난을 막아내려다 실패했지요.

그런데 한국은 상황이 조금 달랐습니다. 루이스와 한국인 독자 사이의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발휘했습죠. 루이스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 사람들이 원수를 찾아가는 길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줬기 때문이 아닙니까.

변증가일 뿐만 아니라 영문학자이자 작가이다 보니 그의 영향력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튀어나올지 예측이 진짜 어렵단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루이스의 변증서부터 번역되면서, 일반 독자들은 그의 다채로운 모습을 파악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지하 깊은 곳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주신 기회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루이스의 영향력을 다 제어하지 못할 바에야, 사람들이 루이스의 변증서만 읽게 내버려 두자는 발상의 전환을 했습니다.

비록 루이스가 변증가로서 자신의 역할을 부담스러워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이라는 미덕을 강조했지만, 저는 사람들이 “20세기 최고의 변증가, C. S. 루이스”라는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탐닉하도록 노골적으로 유혹했습니다. 

이것은 위험도가 높았지만, 효과를 크게 봤던 전략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변증가 루이스 때문에 신앙 바이러스가 퍼진 것은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예상대로 꽤 많은 사람이 루이스의 변증서 몇 장을 읽고는 기독교를 다 알았다며 책을 덮었지 않습니까.

지적 허영에 차 있던 사람은 ‘기독교 변증’이라는 고루한 이미지와 변증에 사용된 단순한 논리 때문에 루이스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경멸했습니다. 루이스 책을 통해 기독교에 호감을 느꼈던 독자 중 일부는 시간이 흐르자 그의 변증에 신물을 느꼈고, 더는 루이스를 읽지 않는다고 선언하기도 했습죠. 이쯤 되면 인간들이 잘 쓰는 표현에 따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였다고나 할까요? 

 

이야기에 관하여_C. S. 루이스_홍종락 옮김_홍성사 펴냄

다른 악마들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저 때문에 한국에서 루이스 추종자가 늘었다고 모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유혹의 기술은 다른 관점에서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회식 때마다 팀장님도 말씀하시듯, 우리 악마들이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인간들이 좋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미처 자각하지 못하던 상상의 힘을 되찾는 일입니다. 원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유의지로 믿을지 아닐지를 결정하도록 허락했지만, 미지의 세계를 향한 갈망은 그들 마음에 일방적으로 심어놓았지 않습니까.

원수가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들면서 창조자인 자신을 따라 ‘하위 창조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에,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상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서 실재를 진실하게 보는 법을 배운다는 비밀마저 루이스의 친구였던 톨킨 때문에 세상에 다 공개되지 않았습니까(63쪽).

아!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팍팍한 현실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동경하고, 거기로부터 칙칙한 세계를 “밝혀 주는 빛에 주목하고 그 빛을 즐기는”(47쪽)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오.

몸서리가 쳐집니다. 사람들이 상상의 힘으로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을 습득하고, 세계에 가득한 원수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 힘으로 그들을 무너뜨리기가 더욱 힘들어질 겁니다.

원수의 부름에 귀 막고 살던 무신론자 루이스가 「판타스테스」라는 이야기에 푹 빠졌다가 원수에게로 돌아갔을 때,[6] 지옥 직속 유혹자 영국 지부는 그 위험을 진작 알아차렸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콧대 높은 영국 지부 악마들보다 제가 한국에서 쓴 전략이 ‘이야기 자체’를 애지중지했던 루이스의 참 모습을 가려버리는 데는 훨씬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합니다. 

[6] C. S. 루이스, 「예기치 못한 기쁨」(홍성사, 2003), 261쪽 참조.

 

그런데 말입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습니다. 저희가 다른 공작에 몰두하느라 신경을 못 쓰고,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누가 내용이 꽉 찬 글을 읽겠냐고 방심한 사이 「이야기에 관하여」가 출간되어 버렸지 뭡니까.

스크루테이프님을 필두로 지난 세대 악마들이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 않는 일은 무가치하다, 모든 행동의 동기 이면에는 성적 욕망이 있다, 내가 재밌으면 그게 바로 옳은 일이다’라는 깜찍한 생각을 인간 사회에 퍼뜨리시느라 꽤 오래 애를 쓰셨지요.

이러한 ‘계몽’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인간이란 종은 지독하게 실용적이고 저급하고 쾌락주의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선배님들이 인류에게 지옥으로 향하는 올바른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셨음에도, 이에 저항하는 것들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나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이 책, 「이야기에 관하여」는 그 뿌리부터 냄새가 아주 고약합니다. 루이스가 죽고 우리가 조금 편해질까 했더니, 우정이다 뭐다 하며 루이스의 친구들이 그가 남긴 글을 게걸스레 모으고 편집해서 이 문제작을 만들었더군요.

그리고 엄청난 수의 불온서적을 번역했던 홍종락이란 인간이 이번에도 역시 배후에 있었습니다.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부뚜막에도 절한다고, 이제 루이스의 취향이 듬뿍 담긴 이번 책을 번역하는 자리까지 이르렀다”(288쪽)는 해괴망측한 논리까지 내세우며 루이스 책이라면 가리지 않고 한국어로 옮겨대고 있습니다.

도대체 마누라가 예쁜 것과 루이스를 좋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문제일지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게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골라 대충 짜깁기하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돈이나 많이 벌면 될 것이지, 홍성사라는 출판사는 아주 작심한 듯 루이스를 비롯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의 책을 계속 만들어낸단 말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일할 맛 안 난다고 투덜대는 동료 악마가 수두룩합니다. 아! 원수가 인간에게 준 우정, 사랑, 헌신, 희생부터 없애버리지 않고는 인간 사회를 지옥으로 못 만든다는 말이 정말 사실일까요? 

하지만,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주가 창조된 이래 우리는 언제나 원수가 만든 선한 것을 비틀고 뒤틀며 인간을 넘어뜨리지 않았습니까? 이미 출판되고 유통된 글을 도로 주워 담을 수 없다면, 책의 장점을 꼬아버려서는 인간들이 문학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루이스를 오해하고 싫어하게 만들면 됩니다.

우선, 상상력이 풍성히 배어있는 이야기는 어린이에게나 적합한 것이라는 생각을 뿌려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자신의 성취를 과시하기 좋아하고, 약한 이를 무시하는 성향이 있는 인간의 상당수가 자기가 강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는 증표로 이야기 자체를 멀리할 것입니다(61쪽).

조금 학식 있고 잘 났다는 사람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심어주는 것도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돋보이려고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부터 하고 보는 까칠함으로 무장되어 있어서, 이야기를 즐길 줄 아는 독자에게 요구되는 낯섦에 대한 “불신의 자발적 유예”(123쪽)라는 주술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인간 중 종교나 도덕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부류에는 그들의 성향을 역이용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합니다. 이들은 종교와 도덕 교육에 좋다면 뭐든 가져다 쓰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자체는 장식이나 도구에 불과하고, 이야기의 핵심에는 ‘교훈’ 혹은 ‘세계관’이 있다는 생각을 넌지시 불어넣어 주는 겁니다.

이야기꾼 루이스는 판타지나 소설을 쓸 때 미리 만들어 둔 고상한 이념과 목표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림을 보는 것”(90쪽)에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냈지요. 문학 비평가였던 루이스는 “어떤 작품이든 알레고리로 여겨야 할 근거가 분명히 나타나기 전에는 그 작품을 알레고리로 해석하지 말아야”(241쪽)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제 계획을 미리 꿰뚫어 보는 듯한 섬뜩한 말입니다. 하지만 올바른 독서란 책에서 핵심적 교훈이나 현실에 적용점을 찾는 것이란 헛된 강박에 사로잡히면, 독자들은 이야기를 보면서도 이야기를 즐기지 못하게 될 겁니다.

실제 얼마나 많은 이가 ‘세계적인 변증가, C. S. 루이스님’의 문학작품을 보면서 신앙적 혹은 도덕적 메시지부터 찾으려 했습니까? 이야기에 담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대신, 그곳에서 교훈을 발견하겠다고 생각되면 그것을 냅다 들고 자기네 세계로 되돌아오는 사람이 많아 우리에게 언제나 큰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을 꼼꼼히 읽어봤더니 오늘날 독자들의 한쪽 눈꼬리를 끌어 올리고 마음에 불편함을 주입할 만한 요소도 발견됩니다. 루이스는 가끔 남성적/여성적 성향을 나누고,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대조하며, 유럽인으로서 자부심을 보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20세기 초중반 영국에서 활동했던 한 인간의 시대적·문화적 한계를 그의 인격적 결함이자 중대한 사상적 문제인 것처럼 부풀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이런 구닥다리 글보다는 최신 담론을 민감히 다뤄주는 책이 더 ‘좋다’고 느끼는 독자가 자연스레 많아질 겁니다.

과거보다는 현대의 것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연대기적 속물주의’의 덫은 유신론자가 되기 이전 젊은 루이스도 헤어 나오지 못했던 우리의 강력한 무기 아니겠습니까.[7]

[7] 「예기치 못한 기쁨」, 298쪽 참조.

 

끝으로, 이 책은 루이스라는 인물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개인적 취향이 가득하기에 정말 위험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살짝 뒤틀기만 하면 우리에게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취향은 보편성이 떨어지고 실용성이 없다는 것만큼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도 잘 없지 않습니까?

실제 역사에서 “세계의 운명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큰 움직임보다는 작은 움직임”(150쪽)이었지만, ‘인생은 한 방’을 외치는 인간 속성상 일상의 미묘한 떨림이나 개인의 사심 없는 취향에 엄청난 변혁의 힘이 있음을 알아차리기는 힘드나 봅니다. 이렇게 개인적 관심을 한편에 놓고, 보편성과 생산성을 다른 한편에 놓는 마음의 습성만 만들어 놓으면, 개인의 취향이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예상치 못했던 위험한 작품이 이번에 나왔고, 또 뭐가 더 나올지 모르니, 조만간 회의를 소집해 루이스가 한국 독자에 끼칠 영향력을 봉쇄할 조직적인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긴 책이 하는 일을 짧은 책도 다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일까지”(174쪽)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각주가 많고 분량이 엄청난 ‘벽돌 책’이 교양인의 필독서라는 유행을 이용해 당분간 인간들을 미혹하겠습니다. (아니, 요즘 인간들이 각주를 얼마나 숭상하는지 편지에도 각주를 다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답니다.)

대중이 듣고 싶은 말만 가득하고, 내용 없이 미사어구만 덕지덕지 붙은 서평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이용해 퍼뜨리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한 단기 전략입니다.

원래 제대로 된 비평가라면 “미움은 모든 차이를 흐려놓습니다”(93쪽)라는 격언의 의미를 잘 알기에, 자기가 싫어하거나 사랑하지 않았던 주제에 대한 서평은 쓰려고 하지 않는 완강함을 보입니다. 하지만, 댓글이나 ‘좋아요’(Like), 공유와 조회 횟수에 집착하는 글쟁이를 찾아내면, 우리 취향에 딱 맞는 서평을 쉽게 얻어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걸 알면서도 지금껏 실행하지 않았느냐고요? 이런 잡무에 제가 직접 손대기 그렇고, 신입 인턴 악마들이 알아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악마 세계에도 아래위는 남아 있습죠. 팀장님과 제가 신입일 때 무슨 일까지 했는지 말하면, 이 어린 악마들은 아마 까무러칠지도 모릅니다.

요즘 젊은 악마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얘네가 하는 일을 보고 있자면 지옥의 앞날이 참 밝지 않습니까? CTK 2020:11/12

 


김진혁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조직신학, 철학,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순전한 그리스도인: C. S. 루이스를 통해 본 상상력, 이성, 신앙」(IVP), 「질문하는 신학」(복있는사람), 「신학공부」(예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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