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마리아, 애곡하는 라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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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는 마리아, 애곡하는 라헬”
  • 웬디 머레이 조바 │Wendy Murray Zoba
  • 승인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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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의 영광스런 탄생과 베들레헴 사내아기들의 잔혹한 죽음은 조화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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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았던 온두라스에서는 사람들이 매년 12월 28일을 “무고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로 지킨다. 예수 탄생 후 베들레헴에서 죽임을 당한 아이들을 “기념하는” 하는 날이다.

이 축일은 사람들이 서로 짓궂은 장난을 치는 만우절과 매우 비슷하다. 사람들은 서로 장난을 치고, 장난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순교자”라고 부른다.

베들레헴의 그 비극을 이런 식으로 기념한다는 것이 나는 정말 낯설고 이상했다. 하지만, 의도했건 아니건, 이 모순에는 날카로운 논리성이 있다. 

베들레헴의 그 참상은 헤롯이 두 살부터 그 아래로 사내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면서 일어났고, 이것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동안 우리는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트리, 쇼핑에 열광할 뿐, 그 잔혹한 이야기는 쉽게 지나쳐버린다.

정말이지, 크리스마스는 잔혹함, 곧 (C. S. 루이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세주의 “침략”과 악의 세력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이다. 포푸리 향과 군밤 냄새 속에 이 어두운 이면을 감춰버리는 것은 크리스마스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며, 만우절 장난에 속아 넘어간 바보처럼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한 인물들을 고귀한 인물과 비참한 인물로 매우 대조적으로 병치했다. 그는 별과 검, 유대인의 왕의 나심과 병적인 왕의 동요, 기뻐하는 마리아와 애곡하는 라헬, 죽은 아이들과 살아남은 아이를 나란히 묘사했다. 우리는 구주의 영광스런 탄생을 사내아기들의 잔혹한 죽음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헤롯의 잔인무도한 악행을 전하는 문서는 성경 외에는 없다. 하지만, 베들레헴은 정말로 “작은 마을”이었다. (일부 주석가에 따르면, 인구 300〜1,000명 정도였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아이들의 죽음―D. A. 카슨에 따르면, “10명 정도”―은 헤롯의 불안하고 어그러진 통치 기간 동안에 그가 저지른 수많은 만행에 가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동방박사들은 왕의 신분이 아니었고 셋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그들은 현자들이었을 것이다. 고도의 천문학자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사제였을지도 모르며, 지금의 이란이나 그 인근 출신으로 근면하고, 용감하며, 진리를 찾는 이교도였을 것이다. 

한 성경 역사가는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에, 그러니까 BC 3년 후반에 페르시아를 떠났으며, 예수님이 걸음마를 배우시던 때쯤인 BC 2년 후반에 [베들레헴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발견했을 때, 요셉의 가족은 “집”에 있었고(마태복음 2:11), 헤롯은 그 아기가 2년 전쯤 태어났을 것이라 추정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당시 헤롯은 “디스템퍼”[급성 전염성 열성 질환]로 고통을 겪고 있었고, “심하게 앓은 후 급격하게 악화”되었으며, “위궤양도 앓고 있었다.”

그리고 “호흡곤란 증세를 가지고 있었는데, 끔찍한 입 냄새가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증상은 그의 병적인 잔혹 행위에 불을 붙였고, 그로 하여금 (그가 매우 사랑했던) 아내와 잘난 아들 둘을 처형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주변의 모든 인간을 향해 엄청난 만행을 저지른 이 왕은 로마 원로원에서 BC 40년에 “유대인의 왕”으로 확정되었다. 별로 놀랍지 않겠지만, 그가 이렇게 심신이 쇠약한 시기에 자신 외의 다른 “유대인의 왕의 탄생”을 그냥 듣고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 잔혹한 기간 동안에 주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손”이 일시적으로 멈춰 있었던 것이라고 결론짓는 유혹에 넘어갈 것이다.

그 사내아기들의 어머니들에게는 도대체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들의 죽음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기들의 죽음이 이 땅의 제왕들이나 메시아 대망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전문 보기: “기뻐하는 마리아,  애곡하는 라헬”]

 


Wendy Murray Zoba, “Mary rejoicing, Rachel wee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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