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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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
  • 성유원
  • 승인 202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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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원의 사유의 정원_열다섯 번째 산책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

새로운 인생은 그 방을 떠나야만 시작할 수 있다. 
아침마다 그 방을 나와서 밤마다 그 방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한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은 열리지 않는다. 

―오르한 파묵

글    성유원
그림 고여정

 

전환의 시기

3년 전, 정년을 십 년 넘게 남겨 놓고 조기 퇴직을 결심했을 때 동료 선생님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만류했다. 왜 그렇게 좋은 학교를 그만두느냐, 안정된 직장 없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느냐,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필요하다, 등등. 만류하는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가 나를 위해서 해주는 조언들이었다.

마음을 흔드는 여러 목소리가 있었지만 조기 퇴직에 대한 결심은 그 전부터 조금씩 다져왔기에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릴 수가 있었다. 머뭇거리게 했던 요소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런 아이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는 아쉬움!

학생들은 내게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 귀한 존재들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놀라운 자질들을 아이들은 내면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과 함께한 나날은 내게 축복이고 은혜였다.

그러면서도 언제부턴가 마음 한편에는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자라고 있었다. 뭔가에 깊이 몰두할 수 있는 자정 이후의 시간을 좋아하는 터라, 적당한 시기가 되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가 재직 기간 26년이 되던 해였다. 

이런 결심에 힘을 실어준 것은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성인이 된 제자들이었다. 오랜 세월 마음을 나누면서 20∼40대에 이른 제자들은 나의 퇴직을 환영하고 축하해 주었다.

그중 3일간 남도 여행을 함께한 대학원생 제자가 “선생님, 퇴직하신 후에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던 말이 마음속에 남아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2017년 하반기부터 내 인생은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로서는 마음의 소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한 것이었지만 주변에서는 아쉬워하거나 놀라워했다. 가진 것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참 용기 있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치관이 서로 다른 데서 오는 관점의 차이일 뿐 대단한 용기를 낸 거라고 할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충족감이고, 물질적인 안정이 아니라 자유로움 속에서 부단히 성장하며 나다움의 깊이를 더해가는 삶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크고 작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스스로 택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익숙해진 일상을 살던 어느 날 돌연 마음속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가 있다. 그때가 전환의 시기일 수도 있다.

같은 삶을 반복하다가 불현듯 ‘이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나, 이전과 다른 커다란 갈등에 빠지는 경우, 혹은 타의에 의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이 그렇다. 그런 갈림길 앞에 서면 사방에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는 그 순간을 ‘여행’에 빗대어 표현했다.

 

어느 날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았고
마침내 그것을 시작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던 목소리들은
불길한 충고를 하고
온 집안이 들썩이고
오랜 습관이 발목을 잡고
목소리들이 저마다
인생을 책임지라고 소리쳤지만
당신은 멈추지 않았다

 

영문학을 전공한 한 친구는 졸업 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에 입사했다. 그런데 부모님의 소망은 딸이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한동안 회사에 다니다가 부모님의 뜻대로 교사가 된 친구는 그 후로 나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했다.

사람들 눈에는 안정적이고 좋아 보이는 직업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불합리를 감당하기엔 버겁다고 했다. 구조를 바꿀 만한 힘이 없는 상황 속에서 용납이 안 되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만큼. [전문 보기: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

 


성유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예원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 예술가들과 풍요로운 나눔의 날들을 보냈다. 퇴직한 후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끌며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고여정 글쓴이 성유원의 예원학교 제자이자 함께 독서하며 생각을 나누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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