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림의 상태―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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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의 상태―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졌다
  • 이진경
  • 승인 2020.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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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생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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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5일 금요일  비움의 기쁨

얼마 전 방의 구조를 바꾸었다. 침대와 책상을 한 방에, 옷장을 한 방에 몰았다. 구조를 바꾸면서 서랍과 수납함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분류되어 있지 않은 물품들을 분류하고, 사용하지 않으나 버리기 아까워했던 것들을 모두 버렸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줄 것은 따로 남겨 두었다.

그랬더니 내가 사용하지 않고 묵혀 두고만 있었던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쓰지 않은 필기도구, 오래되어 더 이상 쓸 수 없는 화장품이나 헤어용품, 액세서리와 지금은 쓸모없어진 서류…. 버릴 것이 너무 많았다.

사회생활하면서 모아 놓은 명함들은 또 어찌나 많던지. 신용카드는 왜 그리 많이 만들어 놨는지. 돌아다닌 카페는 또 얼마나 많은지 한두 개씩 도장이 찍힌 커피 쿠폰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서랍이나 수납함 어딘가에서 존재감을 감춘 채 자리를 가득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전혀 연락을 하지 않거나 잠시 만나 스쳐 지나갈 뿐이었던 이들의 명함, 쓰지 않은 지 몇 년이나 되는 신용카드들을 모두 처분했다. 커피 쿠폰들도 재활용수거함으로 직행했다. 이젠 물건을 넣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보일 정도로 서랍이 비었다.

이리저리로 분주히 날아오르는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에너지를 쏟았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새로운 기회를 접하고, 끌리는 것들을 배우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며 살고자 분투했던 젊음의 장이 일단락되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론, 겹겹이 쌓아 두고 채워 놓기만 했던 삶의 짐들을 비워냈다는 홀가분함이 있었다.  

사흘에 걸쳐 정리를 했다. 버린 후에는 내가 쓰기 편하게 물건들을 분류해 놓고, 수납함들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그곳에 차례차례 넣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충전기 코드들을 한데 모으고, 미술관에서 산 기념엽서나 사랑하는 이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한데 모았다.

좋아하는 팔찌, 만년필심, 연필, 전자기기 부품 등을 각각 분류해서 넣고는 겉에 네임태그를 붙였다. 이제 언제든 필요할 때 네임태그를 보기만 하면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실제로 물건을 찾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절약되면서 주변 공간이 선명하고 명징하게 부감되는 느낌이었다.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놓아라, 뒤를 봐라.” 나 어릴 적부터 엄마가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나는 뭔가 외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내 공간에 그리 집중하지 못한 세월이 오래였다. 물건을 어딘가에 놓고는 어디 놓았는지 몰라 다시 뒤지고 있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픈 탓에 집에 오래 있게 되면서 내가 주로 있는 공간인 나의 방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장소가 쾌적하고 편하며 아름다운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다가 건진 물건들이 있다. 어둑한 산 속에서 몇 시간이나 헤매다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할 무렵 산삼을 발견한 듯 ‘심봤다∼’ 하고 크게 외치고 싶었다. 충전기 상자를 어디 두었는지 몰라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 종이상자에 넣어져 곱게 잠을 자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몇 년 전 산 블루투스 스피커는 수명이 다한 줄 알고 버리려고 봉투에 살짝 던져 넣었는데, 갑자기 로봇 소리를 내며 회생했다. 사촌오빠에게서 선물 받은 고급 샤프는 서랍 속 다른 필기도구들과 함께 묻혀 있었는데 연필꽂이에 놓고 수시로 사용하게 되었다.

쓰지 않는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는 중학생 조카가 좋다며 가져갔고, 발에 꽉 끼지만 모양이 예뻐 미련을 두고 있던 신발과 탭 무선키보드는 사랑하는 선배에게 드렸다. 

무언가를 버릴 때 장애가 되는 것은 ‘언젠간 다시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미련인데, 오래 놔두다 보면 전혀 쓰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예전엔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이 더 이상 가치 있게 보이지 않을 때가 온다. 그때가 버리거나 줘버릴 때다.

버릴 것은 버리고, 회생시킬 것은 다시 살리고, 넘겨줄 것은 넘겨주고, 분류해서 편의성 있게 쓸 것은 분류하고 나니 내 삶이 정리된 것 같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이제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 전, 나는 옷을 한 차례 비워냈다. 옷을 좋아해서 단골 옷가게에서 내 취향에 맞는 옷들을 시마다 때마다 사 입곤 했는데 이제 그 옷들이 내겐 필요 없게 되었다. 어떤 건 너무 짧거나, 어떤 건 너무 꽉 끼거나, 어떤 건 이제 내 나이에 걸맞지 않아 보이게 되었다.

이제 조금은 다른 느낌의 옷으로 갈아야 하는 때가 온 것 같았다. 하지만 치료와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나갈 일이 많지 않아지자 나는 운동복 몇 개를 가지고 살아도 충분하게 되었다. 대부분 집 밖에서 나를 최대한 아름답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 입었던 옷들을 선배의 딸에게 모두 물려주었다.

나는 지금의 나에게 편하고 실용적인 옷들만 남겨 두었고, 이렇게 해서 그 옷들을 입으며 다녔던 공간과 만났던 사람들, 그 시절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추억들을 또 한 차례 곱게 접었다. 

이제 나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쏠렸다. 누군가에게 나 자신을 멋들어지게 보이고자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지고,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이나 물건들이 나 자신에게 잘 들어맞는가, 편한가,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커피를 마셔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는 찻잔이라든지, 일상 속에서 미적 감각을 충족시켜 주는 테이블보, 건강한 간식을 담을 수 있는 작고 모던한 디저트 접시…, 이렇게 내가 자주 사용하는 것들을 종류별로 꼭 필요한 것만 하나씩 구비했다. 그리고 매일 그것을 사용하면서 그 물건들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느낀다.  

인테리어는 ‘비우는’ 데서 시작된다고 한다. 비움의 인테리어는 어쩌면 청년기에서 중년기―나는 숙성기로 부르고 싶다―로 넘어가는 과정 가운데 꼭 밟아야 할 절차가 아닌가 싶다. [전문 보기: 누림의 상태―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졌다]

 


이진경 CTK 창간에 힘을 보탰고, 에디터로 일했다. ‘싱글 이야기’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암 투병 중에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좋은 죽음 나쁜 죽음」, 「감각의 제국-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감각의 모든 과학」 등이 있다.  

‘대선생 투병일기’의 연재를 마칩니다. 글을 써 주신 이진경 작가와 읽고 공감해 주신 독자님 모두 감사합니다_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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