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으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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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느낌으로는 …
  • 고든 맥도날드 Gordorn MacDonald
  • 승인 2020.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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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반드시 길러야 할 직관의 힘

리 부부가 무척 좋아하는데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 집을 방문했다. 남편은 남편끼리 부인은 부인끼리 다른 방에서 담소를 즐겼다. 내 친구는 자신이 목회를 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했는데, 그 영적인 깊이와 지혜에 탄복했다. 내가 불쑥 말했다.

“하나님이 앞으로 자네를 주교가 되게 하지 않으실까? 자네는 목사들을 훌륭하게 섬길 사람이야.”

그는 숨이 멎을 듯이 놀라더니 다른 방에 있던 부인을 불렀다. “어서 와서 고든이 하는 말 좀 들어봐요.” 부인들이 앉자 그는 내가 했던 말을 다시 해보라고 했다.

내가 다시 말하자 친구 부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그가 물었다. “지난 두 주 동안 주교직 후보가 돼달라고 요청받은 것을 어떻게 알았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는데.”

우리 부부는 인생의 길이 달라질 기회를 눈앞에 두고 있는 두 친구와 함께 이 문제를 놓고 오래도록 상의했다.

언젠가 내가 이사장으로 일하는 기관의 이사회를 주재하고 있었다. 이사들이 어떤 안건에 대해 저마다 찬성하는 이유를 말하는데 유독 입을 다물고 있는 이사가 눈에 띄었다. 회의장의 요란하던 분위기가 잦아들자 침묵하던 이사에게 물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죠?”

그녀는 당황하더니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 “반대하는 사람이 나뿐인 것 같아서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사장님이 물으시니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저는 이 안건에 대해 영적인 거부감이 강하게 듭니다.”

그녀는 몇 분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녀가 말을 마치자 이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어떤 이사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옳다고만 주장했는데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잘못된 결정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사회는 잘못된 방침을 세우는 실수를 하나 덜었다.

어느 토요일 밤 나는 설교 준비로 고심하고 있었다. 필요한 자료가 다 있는데도 다음날 아침 교인들에게 전할 만한 설교를 완성하지 못했다. 더 이상 생각을 못할 정도로 피곤해지자 다음날 꼭두새벽에 일어나 설교 준비를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걱정스럽게 기도하고 잠을 청했다. 나는 잠이 들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다섯 시에 잠이 깨자 설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설교는 새로운 틀을 갖췄고 전날 밤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설교의 요점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결론’ 예화까지 생각났다.

교인들은 설교를 들으면서 졸음을 참아야 할 고민을 하나 덜었다.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말하는 바는, 우리 모두 알지만 아마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직관의 힘이다. 우리 내면 깊숙이, 의식의 경계 아래에 있는 뭔가가 주기적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아이디어를 배합해낸다. 어떤 행동을 해나갈 때 경고하고 변경하게 만들고 박차를 가하게 하는 분별력이라는 말 외에는 이 신비로운 능력을 설명할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말콤 글래드웰은 「블링크」(21세기북스 역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상황이 복잡해지거나 바쁘게 결정할 것이 있을 때마다 자연히 발동하는 순간적인 인상과 결론의 내막과 기원”을 풀면서 알쏭달쏭한 직관력에 관해 설명한다.

글래드웰은 말한다. “우리가 본능에 귀를 기울이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나는 명제적 진리가 전부였던 환경에서 성장했다. ‘진리’에 잘 부합하지 않는 느낌과 육감, 본능은 의심스럽고 믿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유능한 남녀 리더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각기 성격, 기질, 비전, 스타일이 다른 것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필요할 경우 직관에 따라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하는 능력이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면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사람을 읽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때로 그들은 보통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힘이 있는 마법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토론을 중단시키고, 분쟁을 조정하고, 생생한 설명으로 모두의 눈을 뜨게 한다.

우리는 의문이 생긴다. 어떻게 그걸 생각했지? 어떻게 그걸 알았지?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들에게는 아무에게도 없는 통찰력이 있다는 것이 답이다.

내면의 무언가가 일반적인 논리를 앞질러 이 길로 가는 것이 옳아, 이 사람이 적임자야, 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직관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은 예수님이다. 성경은 반복해서 말한다.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예수님은 모두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람과 상황을 판단하고 대응하셨다. 그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속내를 간파하고 경고하셨다. 그는 어른들이 천대하는 아이들과 가깝게 지내셨다. 그는 아파하고 회개하는 사람을 보시면 지나치지 않으셨다. 결국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그가 아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닫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바위’의 직관력 기르기

주님의 친구들 중에 시몬 베드로만큼 주님의 직관을 혼동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인자가 체포되어 살해된 뒤에 매장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반직관적인 계시에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변화산에서 하늘의 사자들을 만난 예수님의 의도를 잘못 짚었다. 그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어떤 일이 생겨도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과는? 베드로는 매사에 주님의 목적과 의도를 혼동했다. 예수님은 사물의 속과 주변을 아울러 보셨지만 그는 드러난 것만 보았다.

만일 예수님이 직관의 달인이라면 베드로는 태생적으로 통찰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의 전형이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이런 사람들이 있다. 늘 중심에서 벗어나 박자를 못 맞추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시몬 베드로를 보라. 그가 변한다.

베드로는 오순절을 맞아 대변인이 필요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을 알아챘다. 그는 사도의 힘을 사고자 했던 마술사 시몬의 동기를 간파했다. 또 욥바의 지붕에서 하나님이 교회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가 왔다고 계시하셨을 때 처음으로 ‘이해’했다.

복음서의 베드로와 사도행전의 베드로가 이렇게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현상을 꿰뚫어보고 최선의 방책을 찾아내고 앞날의 결과를 깨닫는 능력이 새롭게 생겼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이런 인물들이 또 있다.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직관적인 사람은 이사야이다. 그는 현재의 사건들을 꿰뚫어 앞날의 결과를 내다보았다. 그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중심에 있는 새로운 메시지를 이해했고, 그의 말은 수백 년 뒤에 세례자 요한, 예수님, 사도 바울의 설교의 토대가 되었다.

야고보는 복음을 유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람들과 바울과 바나바처럼 구습으로 이방인을 괴롭히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논쟁을 벌일 때 직관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의견이 옳다고 주장할 때 야고보는 중재에 나섰다. 그는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했고 이견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모았다.

성경에서 직관력이 가장 부족한 ‘리더’는 누구일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원로들과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차례로 물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되자 그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가 내린 나쁜 결정으로 나라는 두 동강 나고 그 지역의 정치적 불안은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직관을 대신할 두 단어를 꼽자면 꿰뚫어본다는 뜻의 통찰과 분별이다. 때때로 우리는 이 힘을 영적인 은사로 본다.

창세기 2장에서 최초의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는 이 말이 두 사람의 통찰력과 분별력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투명하게, 어쩌면 영혼의 중심까지 보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안목이 없다.

창세기 3장으로 건너가면 두 사람은 이 힘을 잃어버린다. 죄로 말미암아 내면으로 통찰하는 힘이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자신을 통찰하는 힘도 잃어버렸다. 이후에 시편 기자는 기도한다.

“하나님, 나를 샅샅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 그는 통찰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나 죄 때문에 더 이상 그 힘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신을 살펴달라고 청했다.

우리가 사람의 속내를 알려면 추측할 수밖에 없다. 몸짓, 표정, 목소리, 선택한 단어로 짐작해야 한다. 그러나 추측과 짐작은 의문에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목적이 뭐지? 정말로 믿을 만한 사람이야?

우리는 모두 사람을 ‘읽으려고’ 애쓰지만 기껏해야 확률은 반반이다. 리더를 가장 힘들게 하는 채용을 예로 들어 보자. 나는 여러 사람을 심사하고 채용했다.

내 결정으로 크게 만족한 적도 있지만 몹시 실망한 적도 있다. 나는 그들의 진심을 알아보고 그들이 나와 함께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판단은 과녁에서 멀리 빗나갔고 나쁜 선택의 결과를 해결하느라 막대한 시간을 버렸다.

함께 참석한 회의가 끝났을 때 내 아내가 “그가 정말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요?”나 “당신이 그 말을 할 때 사람들의 반감을 느끼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젊었을 적에는 아내의 판단을 잘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내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아내가 분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아내의 충고를 듣기로 했다. 지금도 자주 아내에게 묻는다.

“당신 생각은 어때요? 해줄 말은 없어요?” 그러면 대개 색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게 된다. 아내의 직관력으로 내가 득을 본 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전문 보기: 내 느낌으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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