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몰랐던 패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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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몰랐던 패커
  • 송인규
  • 승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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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사건, 인물

SPECIAL 제임스 패커 

1926.7.22. – 2020. 7.17.

20세기 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영국 계통의 복음주의자를 대보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1899-1981), 존 스토트John R. W. Stott(1921-2011), 그리고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1926-2020)를 거론할 것이다. 이 세 사람 중 가장 연하였던 패커가 지난 7월 17일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패커” 하면 사람들은 제일 먼저 신학자, 칼빈주의자,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저자라는 점을 머리에 떠올린다. 패커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있는 이라면, 그가 성공회 소속의 교역자요, 청교도 지도자인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1615-1691)에 관한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고, 생애의 후반부는 영국을 떠나 캐나다 밴쿠버에 정착했다는 것을 말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패커의 신학적 입장에 관계된―명백한 사실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몇 가지 사항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동시에 그런 점을 밝히면서 연관된 사건, 다른 인물들과의 어울림이나 조우도 함께 다루고자 한다.

숨겨진 책_“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

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 때문에 패커가 전 세계적 복음주의 작가로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책은 패커의 첫 작품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패커를 복음주의 신학의 대변자로 알리게 된 첫 작품도 아니었다. 그 역할은 오히려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1]‘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2]이라는 패커의 첫 출간물이 감당했다.

[1]한국에서는 “팩커,” 「근본주의와 성경의 권위」(서울: 한국개혁주의신행협회, 1973)로 역간되었다.

[2]J. I. Packer,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London: Inter-Varsity Fellowship, 1958).

1940-50년대 영국 교회에는 신학적 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터라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신앙에 대한 비아냥거림과 캐리커처를 다반사로 겪어야 했다.

특히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중시하는 태도 때문에 무지몽매하고 시대에 뒤진 것으로 같잖게 여겨지기 일쑤였다. 영국 교회 내의 이런 분위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은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하며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중반 빌리 그레이엄의 런던 집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영향력을 발휘하자, 위기의식을 갖게 된 영국 교회 내의 자유주의자들은 공세에 나서 복음주의를 “근본주의”라 폄하하며 “사고하지 않는, 독단적인, 속 좁은, 학구적이지 못한”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그 당시 호주에서 사역하던 어떤 성공회 신부는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교회」Fundamentalism and the Church of God[3]라는 제하의 책자를 펴내어 복음주의자들의 신앙과 성경관을 비판했다.

[3] Gabriel Hebert, Fundamentalism and the Church of God(London: SCM Press Ltd, 1957).

바로 여기에 패커가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수한 것이다. “근본주의”라는 단어 앞뒤에 인용 부호를 넣은 것은 누군가가 복음주의를 “근본주의”로 곡해하고 있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어구는 전술한 책자의 표현 “하나님의 교회”와 대비시키려는 의도임이 역력히 엿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패커가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교회」 한 권만을 겨냥하여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을 썼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그 책도 염두에 두었으리라는 것은 결코 빗나간 추정이 아니다.

패커는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책자를 통하여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을 밝히고 있다.

(i)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말에 대한 오해 및 그릇된 해석을 시정함
(ii) 그리스도의 본을 좇아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최종 권위라고 명시함
(iii) 성경 영감의 본질이 무엇인지 밝힘
(iv) “무오한”infallible, “무류한”inerrant 등의 용어를 정리함.

이 책자의 효과는 최소한 두 가지였다. 첫째, 패커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복음주의 전체를 대표하는 대변인으로 인식되었다.[4] 둘째, 이제는 복음주의권 안에 상당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5] 개혁파 침례교 신학자였던 니콜Roger R. Nicole(1915-2010)은 패커의 책을 구입해서 읽던 기억을 다음과 같이 떠올린다.

[4] 앨리스터 맥그라스, 「제임스 패커의 생애」(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4), 147쪽.

[5]  맥그라스의 앞의 책, 150-51쪽.

내가 95센트를 주고 작은 책자를 샀던 일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식구들이 잠자리에 든 후 10시쯤에, 나는 한 시간 정도만 시간을 들이리라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새로운 장마다 발산하는 호소력이 너무나 강해 도저히 중도에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흡입하다시피 읽고 나서 새벽 4시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작품이었고, 나로서는 이처럼 내용에 완전히 동의하는 부류의 책자를 찾기도 힘들 것 같았다.[6]

[6]Roger Nicole, “James I. Packer’s Contribution to the Doctrine of the Inerrancy of Scripture,” Doing Theology for the People of God: Studies in Honor of J. I. Packer, Donald Lewis & Alister McGrath 엮음(Downers Grove, Illinois: InterVarsity Press, 1996), 176-7쪽.

무려 62년 전에 발간되었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거의 잊힌 작품이지만, 나는 아직도 이 책의 내용이 한국 교회를 포함한 전 세계의 복음주의자들(및 비판적 입장의 종교인들)에게 적실하다고 생각한다. [전문 보기: 우리가 잘 몰랐던 패커]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전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CTK 연재 ‘책집에서’의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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