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제임스 패커는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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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제임스 패커는 무엇이었나
  • 정지영
  • 승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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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우리를 찾아왔던 제임스 패커를 추모하며

SPECIAL  제임스 패커

‘신학 교통경찰’ ‘공습 감시자’ ‘논쟁자’ ‘마지막 청교도’ ‘쌈닭’ ‘순전한 정통주의자’…, 이러한 수식어로 불렸던 우리 시대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지난 7월 17일 주님 곁으로 갔다.

존 스토트, 마이클 그린 등과 함께 이른바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 출신으로 성공회 복음주의 운동을, 마틴 로이드 존스와 함께 청교도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제임스 패커, 자신이 그토록 사모했던 청교도들처럼 영국을 떠나 신대륙으로 건너와서야 존재감을 제대로 발휘한 기구한 삶을 살았던 그의 별세 소식에 많은 인사들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 안타까움은 최근 별세한 존 스토트(2011.7.27), 빌리 그레이엄(2018.2.21)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패커가 뿌린 씨앗의 하나인 새로운 칼빈주의자들(Neo Calvinist가 아닌 New Calvinist) 사이에선 그보다 더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제임스 패커를 떠나보낸 한국 교회의 반응은 현지와 사뭇 달랐다. 물론 그를 존경했던 몇몇 신학자들은 그가 세계 복음주의에서 차지한 위상과 수고를 기리고 그의 부재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담은 글을 작성했고, 몇 언론은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글들에서 패커와 우리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었다.

영미 복음주의권 안에서의 패커가 아닌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패커의 신학적 판결과 안내가 한국 교회에 큰 권위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그는 우리에게 신학 교통결찰은 아니었다. 자유주의 신학과 세속 사상에 경종을 울리는 공습 감시자였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성경에 관한 전투에서 논쟁자나 쌈닭이라는 호칭을 주기도 어렵다. 우리 교회 역사에는 그보다 훨씬 전투적인 신학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우리 보수주의 신학이 오래전부터 청교도 개혁주의의 계승을 강조했다는 면에서 그를 마지막 청교도로 또는 현대판 청교도로 부르기도 모호하다.

제임스 패커를 이을 인물로 평가받았고 패커의 전기 작가이기도 한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그를 ‘신학 하는 사람’으로 규정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적용하기에는 딱히 맥락이 없다. 제임스 패커, 그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책을 연도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했다.

 

1970년대_자유주의에 맞선 보수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한국 교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3년이다. 그의 첫 책 「근본주의와 성경의 권위」(개혁주의신행협회, 1973)와 두 번째 책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주권」(생명의말씀사, 1973)이 같은 해에 대표적 개혁주의, 복음주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었다.

「근본주의와 성경의 권위」는 당시 교회와 신학계를 장악하고 있던 자유주의에 당당히 맞서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강력하게 변호하고 보수주의 신학에 대한 철저한 오해를 설득력 있게 논박함으로써 그를 차세대 복음주의 핵심 인사로 등극하게 한 책이다.

원서 ‘Fundamentalism’ and the Word of God이 영국 IVP를 통해 1958년 출간되었으니 우리말로 소개되는 데 조금 시간차는 있었지만,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신앙의 핵심으로 이해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신앙 동지로 확실히 이해되었을 것이다.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주권」은 그를 신뢰할 만한 개혁주의 신학자요 저자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더욱 심어 주었다. 1961년에 처음 출간된 Evangelism and the Sovereignty of God (IVP)이 1970년대 초반 뒤늦게 우리말로 번역된 데에는 맥락이 있어 보인다.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교회는 해외 주요 선교 단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캠퍼스와 교회에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전

도, 훈련, 파송을 강조한 선교 단체를 통해 한국 교회는 수적으로, 양적으로 성장했는데, 동시에 교단의 전통적 신학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특히 칼뱅주의를 신학 유산으로 갖고 있는 교단 및 교회에서 특히 그랬는데, 제임스 패커의 「복음 전도와 하나님의 주권」은 칼뱅주의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복음전도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교회와 선교 단체의 난제를 신학적으로 해결해 주었다.

이는 패커 스스로가 복음주의 선교 단체 IVF를 통해 회심하고 영적 훈련을 받았음에도 청교도와 개혁주의 신학에 토대를 굳건하게 둔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후 패커는 단독 저술이 아니지만 「신구약 성경주석」(성서교재간행사, 1975)과 「기독교교리개설」(생명의말씀사, 1976)에서 각각 ‘계시와 영감’ ‘교회의 본질’ 항목을 통해 한국 교회에 말을 건넸다. 영미 보수주의 신학의 최고의 결과물로 평가받는 New Bible Commentary(IVP, 1970) 개정판을 번역한 전자는 신뢰하고 볼 만한 보수적인 주석이 없던 때에 목회자들에게 적잖은 도움을 주었고, 이 자료에 포함된 그의 이름은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에게 다시 한 번 좋은 인상을 주었다.

후자—원서는 Basic Christian Doctrines(Holt, Rinehart, and Winston, 1962)—는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실었던 주요 기독교 교리 관련 글을 엮어 만든 책인데, 「기독교 기본 신학」(보이스, 1992)이란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기도 했고, 조만간 다른 출판사에 의해 다시 출간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문 보기: 우리에게 제임스 패커는 무엇이었나]

 


정지영 IVP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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