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 가장 아름다운 숫자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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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이 가장 아름다운 숫자인 이유
  • 마이클 리브스 | Michael Reeves
  • 승인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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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이야기’는 철학적 골칫거리가 아닌 선과 아름다움에 관한 매혹적인 서술이다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 KEITH NEGLEY

진정 아름다운 복음

하나님의 삼위일체 속성이 왜 중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자.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이 그저 한 분이셨다면(한 위격만을 지니셨다면)? 만약 그랬다면, 그분은 창세전부터 영원토록 홀로 모든 것이었을지 모른다.

관계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할 사람이나 대상도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에 사랑이 존재할 리 없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 원하실까?

아마 그러지 않을 것이다.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 분이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실까? 그 정의상, 한 분이신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사랑과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복음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복음과 비교하면 빈약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할 때 우리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의 기쁨과 즐거움이자, 영원한 사랑을 입은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그 사랑을 동일하게 나누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신다.

“아버지의 품 속”(요1:18)에서 오신 그분은 성도들과 함께 거하길 원하신다(요17:24).

또한 우리가 용서받은 죄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아들과 같이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받는 자녀로서,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나아가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시기에, 우리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했던 엄청난 고백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시며”(요17:23).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은 이제 우리를 향한다. 이러한 하나님과 함께할 때 우리는 단순한 용서 이상의 기쁜 소식, 즉 자녀로서 누리는 안전함과 친밀함을 얻는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사랑받는 자녀들! 이토록 우리를 가깝게 두시고 사랑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얻는 하나님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과 함께라면 기쁜 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 위격만 소유한 신들은 신적 초월성 때문에 혼자인 상태를 유지해야 하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함께하시며 그분의 생명으로 이끄신다.

성령은 우리의 눈을 열어 자비로 가득한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게 한다. 성령은 우리가 처음으로 성자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언제나 즐거워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말해 성령을 통해 성부 하나님은, 그분이 아들에게서 언제나 발견하셨던 그 기쁨을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도우신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셔서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깊은 사랑을 알게 하신다.

즉 성령은 우리를 신성하게 한다. 아버지와 같이 아들을 즐거워하게 하며, 그리스도와 같이 아버지를 즐거워하게 한다.

만약 하나님이 한 분이셨다면, 그분의 신성함은 이처럼 타자를 향한 사랑과 즐거움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영원토록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자신뿐이라면, 자아도취야말로 가장 숭고한 형태의 신성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애나 자아도취는 기독교의 타자중심적인 하나님과는 정반대되는 개념들이다. 그분은 포로 된 우리를 해방시켜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시며, 그분을 본받아 우리도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하신다. 삼위일체인 하나님에게만 이러한 해방이 가능하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넘치는 사랑과 기쁨을 소유한 매력적인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에게서 온전한 만족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경배하는 것을 닮아가기에, 이러한 하나님을 계속해서 알아간다면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기뻐하고 우정을 나누는 매력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세상이 우리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 상상해보라!

하나님의 삼위일체 속성은 그리스도인의 인생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모든 생명을 적신다.

하나님은 관계의 하나님이시고, 아버지는 성령 안에서 아들을 영원토록 알고 사랑하시기에, 이러한 하나님 안에서 관계와 사랑은 온전한 이해를 얻게 된다.

사실, 관계와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이유다. 질투심이 아니고서야 고립된 신이 그러한 것들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영원토록 역동적인 조화를 누리며 존재하기에, 우리는 조화로운 세상을 생각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음표가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사랑 가득한 조화는,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사랑으로 어우러져 획일이 아닌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해하는 부분은 아주 작다. 그것은 마치 먼 곳에서 열린 잔치의 향기를 맡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 속성이 기독교의 장애물이 아니라, 기독교를 선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만드는 필수 진리임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은 비현실적이고 비실제적인 진리가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누릴 수 있는 진리다. 우리는 이제 “오, 먼 곳에 있는 창조자여”라고 근심 어린 목소리로 외치기보다, 성자 하나님의 관계와 특권을 동일하게 누리며 “아버지여”라고 기도할 수 있다.

성자 하나님의 담대함으로 그렇게 부를 수 있으며, 그분과 같이 성령 안에서 안전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전문 보기: ‘3’이 가장 아름다운 숫자인 이유]

 


마이클 리브스 영국 Universities and Colleges Christian Fellowship의 신학 디렉터를 맡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 기독교 신앙 입문」Delighting in the Trinity: An Introduction to the Christian Faith이 있다.

Michael Reeves, "Three Is the Loveliest Nu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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