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둘러싼 차이, 하지만 공통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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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둘러싼 차이, 하지만 공통점이 더 크다
  • 로저 올슨 | Roger Olson
  • 승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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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든, 인간이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무수한 성경구절

대부분의 현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칼빈주의나 아르미니우스주의 중 하나를 따른다. 두 진영 모두 하나님이 섬김을 위해 인간을 선택하시고, (공동체적 선택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갖기로 결정하셨다고 믿는다.

논쟁의 시발점은 선택에서 구원으로 넘어갈 때다. 선택은 무조건적이고 불가항력적인 것인가, 아니면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는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입장은 개인의 구원 문제, 그리고 특히 지옥을 예정하셨는지에 관한 문제에서 극명히 갈린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요한복음 3:16, 베드로후서 3:9, 디모데전서 2:4과 같은 성경 본문을 근거로 지옥을 예정하셨다는 주장이 혐오스럽고 하나님의 이름에 누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거스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며, 고의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신성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죄인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구원에 공헌할 수 있다면 은혜는 유일한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진영은 자신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성경구절과 논증을 제시한다. 똑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경을 믿으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지만 이 문제에 관해 일치를 이루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두 진영 모두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구원에서 인간의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도 오직 하나님이 믿음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기에 죄인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현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세 번째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이 세 번째 교리가 칼빈주의에 가까운지 아르미니우스주의에 가까운지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스코틀랜드 신학자 토마스 토랜스와 제임스 토랜스의 추종자들이 ‘복음주의적 칼빈주의’Evangelical Calvinism라 알려진 이 견해를 지지한다.

토랜스 형제는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와 스코틀랜드 신학자 존 맥레오드 캠벨과 P. T. 포사이스의 영향을 받았다. 최근 12명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주의적 칼빈주의: 지속적인 교회 개혁을 위한 자원」Evangelical Calvinism: Essays Resourcing the Continuing Reformation of the Church이라는 저서에서 복음주의적 칼빈주의를 설명하고 이를 지지했다.

복음주의적 칼빈주의(모든 칼빈주의자들이 자신을 복음주의라고 여기는 걸 감안한다면 어떤 면에서 부적절한 이름이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선택의 주체와 대상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선택하셨고, ‘그분 안에서만’ 자신의 백성을 선택하신다.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신다. 신적 배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구원받도록 선택되었다면, 이는 하나님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신 후 은혜로 죄인들을 그 선택에 포함하셨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선택 안에 자신이 포함되는 것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은혜를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저버렸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적 칼빈주의」의 편집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와 은혜만으로 이루어진다.”

구원을 위한 선택이 기쁜 소식인 까닭은 그 선택이 죄인들의 나약한 자유의지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의도적으로 구원을 거절하지 않는 이상 어느 누구도 구원의 선택에서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는 복음주의적 칼빈주의에 많은 부분 동의하지만, 중요한 문제에서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그들의 주된 불만은 복음주의적 칼빈주의가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의 은혜를 모두에게 베푸시고 그 선택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설 자리가 없음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선택을 거절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인간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반면 복음주의적 칼빈주의자들은 다른 두 진영의 견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견해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선한 성품에 흠집을 낸다는 것이다.

선택 교리에 관한 복음주의 진영의 책들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책들이 논쟁에 초점을 맞춘다. 서로간의 공통점을 강조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차이점과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특히 지난 20-30년간 선택 교리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일치가 아닌 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었다. 이제 차이점보다는 중요하고 광범위한 합의점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할 때다.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선택 교리의 공통점을 함께 나누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차이가 비난으로 바뀌고 이단이나 불신앙과 같은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기회로 변질될 때 사탄이 끼어든다.

모든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이며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우리의 선행,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들, 은혜의 표지조차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은혜와 능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영국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설치한 거짓 기둥들과 같다. 렌이 설계한 윈저 시청의 2층 지지 구조를 시위원회 원로들이 못 미더워하자 그는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가짜 기둥들을 몇 개 더 세웠다.

사실 그 기둥들의 꼭대기와 1층 천장 사이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틈이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직원들이 발판을 설치하고 천장을 청소할 때 비로소 그 틈을 발견했다. 렌의 책략이 드러난 것이다. 설계에서 아주 중요하게 보였던 기둥들은 (겉으로 대단해 보이는 우리의 선행과 같이) 사실 별 의미 없는 것이었다. [전문 보기: 선택을 둘러싼 차이, 하지만 공통점이 더 크다]

 


로저 올슨 베일러대학 조지트루엣신학교의 신학교수. 최근 저서로는 「칼빈주의에 대항하여」Against Calvinism가 있다.

Roger Olson, "Election Is for Every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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