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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복음의 여덟 가지 특징작은 복음으로는 세상의 견고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스캇 맥나이트  |  Scot Mc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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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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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지닌 문제들은 작은 게 아니다. 신문을 대충 보기만 해도 에이즈나 가족의 해체, 무분별한 폭력으로 인한 지역의 재난들, 생태학적 위협, 교회 분쟁 등 전 지구적 위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문제들은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문제들은 견고하다. 강력하고, 쉬 퍼지며, 체계적이다.

우리의 복음은 이런 문제들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큰 복음인가? 우리는 모두, 이 견고한 문제들─하나님을 거스르는 죄에서 시작되어 암처럼 이 세상에 스며드는─이 견고한 복음에 의해 정복되었다고 선언할 자신이 있는가? 복음서를 보면, 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고 호령하는 유다의 사자(lion)를 마주하게 된다. 복음서에 나오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이스라엘과 로마의 힘 있는 자들에게 도전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모아 온전하게 만들며, 결벽증적인 “정결한” 자들과 수치를 짊어진 “부정한” 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 또 사도 바울의 글을 읽을 때면, 이방인들과 야만인들을 구원할 뿐 아니라 이들을 아브라함의 성스러운 후손들과 연합케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복음 전도자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결코 그들의 복음이 너무 작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우리가 작은 복음, 즉 우리의 세계가 안고 있는 견고한 문제들을 전혀 다룰 수 없는 복음의 축소판에 안주하고 있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성경을 펼쳐 한 장 한 장 넘겨 읽을 때마다, 우리는 성경의 견고한 복음, 즉 많은 이들이 믿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복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복음은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이 깨어진 형상을 지닌 자들을 믿음의 공동체(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그리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의 선물을 통해 완전히 회복시켜, 하나님과 연합케 하고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도록 역사하시는 이야기다(창 1:26-27).

복음은 이 설명보다 더 크면 컸지, 분명 더 작지는 않다. 우리가 우리의 현실적이고 견고한 문제들에 직면하여 이 견고한 복음을 선언할 때, 이 복음이 우리가 믿고 선포했던 작은 복음과는 얼마나 다른지를 새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견고한 복음은 이야기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어느 눈 오는 밤 그리스도의 강림을 고요히 기다리던 세상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님의 탄생은 시작이 있고, 문제가 있고, 긴 역사가 있는 이야기의 한가운데 일어났다. 예수님이 “천국 복음”(마 4:23)을 선언하기 위해 일어나셨을 때, 예수님의 청중은 ‘복음’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천국’─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이자 영원한 메시아의 통치에 대한 이스라엘의 갈망─이라는 단어에 우선적으로 집중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설교하신 복음은 마리아의 찬가(눅 1:46-55), 스가랴의 축가(1:68-79), 시므온의 찬가(2:29-32)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길로 돌이키도록 부르는 세례 요한의 외침(3:10-14)에서 발견되는 바로 그 소망과 비전─즉, 전체 이야기의 소망이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을 품고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1장 1절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언급한 후 다음과 같이 복음을 정의 내린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복음을 설교하고 복음을 믿는 것은 이야기를 제공하고 그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견고한 복음은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개인들의 정황을 염두에 둔 계약이다

복음이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우리에게로 이전하는 합법적인 거래로 축소될 때, 복음은 아주 폭이 좁은 거래에 초점을 두게 되거나 지나치게 비인격적인 것이 된다. 우리가 감히 거래(transaction)라든가 이른바 이중 전가[double imputation─앞 문장의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로우심을 우리에게로 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신학적 개념─편집자 주]를 부인하지는 않지만, 복음은 전가의 거래 그 이상이다. 성경의 견고한 복음은 인격적이다. 복음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복음은 인격적이신 삼위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인 당신과 나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신약에서는 복음이 한 개인과 명백하게 연관된 경우가 많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또는 “하나님의 복음”인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나를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버리라고 하신다. 이 말씀을 달리 표현하여 “복음을 위해서”라고도 말씀하셨다(막 8:35; 10:29).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살전 2:9)과 “그리스도의 복음”(3:2)을, 그리고 “복 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 1:11)을 설교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지닌 영광스런 능력이 복음이라고 말하며, 그 능력은 깨어진 형상을 지닌 자들을, 완벽한 형상을 지닌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고후 3:18-4:6)에게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화시킨다고 전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선포에서도, 복음의 초점은 인격자이신 하나님께,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 맞춰져야 한다. 

 

   
 


견고한 복음은 견고한 문제를 다룬다

창세기 1-3장은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비슷하게 지어졌다고 전한다. 이러한 형상을 지닌 자들은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있었고, 그들 자신에 대해 편안함을 느꼈으며, 서로 교감했고, 주변 세상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하와가, 그리고 그녀의 남편도 뒤이어 선악과를 따 먹기로 했을 때, 그 형상은 각각 네 가지 방향으로 깨어졌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 자기 수치, 타인에게 전가, 에덴에서의 추방. 죄는 가장 크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원해지는 결과를 낳았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수치, 다른 이들을 향한 비난과 적대감, 그리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세상으로부터의 추방으로 이어졌다.

성경적 문제의 비중은 작지 않다. 이 문제들은 너무도 견고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견고한 복음이 필요하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 즉 창세기 4장에서 요한계시록 22장까지는 이 깨어진 형상을 지닌 자들이 회복되어 하나님과 연합하고, 수치에서 해방되며, 다른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세상에 드려지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창세기 3장의 “문제”를 이같이 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지 않은 복음은 결코 충분히 견고하지 않다. 

견고한 복음은 원대한 비전을 지니고 있다 

작은 복음은 개인적인 구원과 영생을 약속해 준다. 하지만 견고한 복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견고한 복음은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창조 역시 약속해 준다. 예수님이 나사렛의 회당에서 일어나 이사야 61장을 읽고 앉으신 후 이 선지자의 환상이 이제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선포하셨을 때, 그것은 개인적인 구원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우고 삶으로 살아내는 사회인 하나님 나라가 이제 공식적으로 그분을 따르는 자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회는 로마 제국의 불의와 배척을 전복시키고 있었고, 포괄적이며 정의로운 대안 왕국을 세우고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의 첫 말씀(눅 4:18-19), 팔복(6:20-26), 요한에게 하신 대답(막 7:22-23)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이 같은 비전으로 인해 예루살렘 교회들은 관용과 환대를 급진적으로 실천하게 되었다(행 2:42-47).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새 사회, 곧 사도 바울이 교회라 일컬은 사회를 선언하지 않는 복음은 결코 견고한 복음이 아니다. 

견고한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뿐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수난일에 내린 성령의 은사 역시 포함한다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설교했다고 했지만 바울이 설교한 그리스도는 빈 십자가의 그리스도였고 빈 무덤의 그리스도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이 복음은 성육신의 삶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나타나신 후 승천하신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교회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그를 믿는 자들에게 권능을 주시기 위해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다.

만일 우리의 유일한 문제가 개인적인 죄라면, 그 해법은 수난일로 축소되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진정 성경적으로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수난일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곧, 우리는 성육신의 크리스마스, 대속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의미를 지니며 조직의 권력자들을 부당한 왕좌에서 몰아낸 수난일, 새로운 피조물이 된 부활절과 권능을 받은 오순절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견고한 복음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들어가게 하며,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위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신 그분의 죽음으로, 또 새 생명을 창조하고 의롭게 여기는 부활로, 그리고 우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서로 함께 살아가도록 권능을 부여하시는 오순절 성령께로 들어가 연합하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복 되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게 된다. 

견고한 복음은 믿음뿐 아니라 모든 것을 요구한다 

복음의 견고하고 성경적인 관점에 내재된 것은 회개, 신뢰, 포기, 헌신, 순종을 수반하는 믿음의 관점이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경고한다(살후 1:8). 바울은 복음을 설교하는 자신의 의도가 “믿음의 순종”(롬 1:5)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복음은 마가복음 1장 14-15절에서 찾을 수 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분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여 그분께 복종시키라고 하셨다(막 8:34-38). 견고한 복음은 우리 각자가 회개, 신뢰, 포기, 헌신, 순종으로 응할 것을 명한다. 실제로,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응하는 것은 예수 신경, 즉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이 의미하는 바다(막 12:29-31). 견고한 복음은 견고한 사람의 견고한 응답을 요구한다. 

견고한 복음은 하나님의 견고한 성령을 포함한다

우리는 복음 설교에서 하나님의 성령에 대해 얼마나 자주 듣는가? 부끄럽게도, 하나님의 성령은 복음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신약의 가장 악명 높은 복음 전도자인 바울의 이 말들에 주목하라.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롬 15:18-19). 바울에게 복음, 즉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1:16)은 “성령의 능력”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3-14). 예수님 역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라고 하셨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있는 성령에 의해 생기를 얻는 것이며, 그 결과 새 삶을 위한 성령의 권능이 부어진다. 
 

   
 


견고한 복음은 교회로부터 나오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끈다 

작은 복음은 예배, 우정, 설교,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자발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는 개인들은 많이 양산해 낼 수 있다. 그러나 견고한 복음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세 단어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그리고 교회. 다시 한 번, 바울의 말은 이것을 확고히 해준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 3:5-6). 복음의 신비는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의 약속 안에서 유대인들과 함께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복음의 의도, 사실상 복음의 실체는 예수님이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다. 견고한 복음은 좋은 소식(good news)이 있는 교회에서 나타나며 사람들을 바로 이 좋은 소식이 있는 교회로 이끈다.

13년간 나는 노스파크 대학(North Park University)에서 성경 연구를 가르쳐 왔다. 내가 마침내 알게 된 것은 창세기 3장에서 갑자기 요한복음 3장이나 로마서 3장으로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에서 갑자기 십자가로 건너뛸 수 없다. 하나님은 창세기 4장에서 아들을 보내어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는 대신, 기다리기로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시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등장하신 시대 사이에 하신 일은 공동체적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일이었다. 구약은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다. 신약은 예수님과 교회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 믿음의 공동체에 관한 것이다. 교회는 개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익을 주어 교회가 더 이상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을 때까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대신에, 교회는 현 시대에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심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다. 얼마나 자주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 참여하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복음 역사의 전부라고 설교하는가? 작은 복음은 새신자에게 지역 교회 선택권을 준다. 견고한 성경적 복음은 새신자에게 교회와 함께 그 교회의 주(Lord)를 제시한다. 궁극적으로, 구원받은 공동체만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그리고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내 주치의는 현재 십 년간의 내 삶의 방식이 다음 십 년간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앞으로 십 년간 복음을 어떻게 설교하는가가 그 다음 십 년간의 교회를 결정지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더욱 견고한 복음은 다음 세대를 위한 더욱 견고한 교회를 의미할 것이다. CT


스캇 맥나이트 노스파크대학 신약학 교수로, A Community Called Atonement(2007)의 저자이며, 2008년 11월 중으로 The Blue Parakeet(Zondervan)를 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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