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인을 항상 도와야 하는가
상태바
걸인을 항상 도와야 하는가
  • 게리 호그, 앤디 베일즈, 로날드 사이더
  • 승인 2019.0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적선을 요구하는 걸인에게 항상 돈을 주어야 하는가

1. 그렇다, 아낌없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수많은 사역을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분의 본을 따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세 가지 문제가 수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인이 걸인을 섬기고자 할 때 방해 요소로 작용해왔다.

첫째, 우리가 그들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도울 가치가 있는 걸인인지, 도움을 받은 그가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를 판단한다. 왜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가? C. S. 루이스의 일화를 통해 한번 생각해보자. 어느 날 루이스는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걷다가 구걸하는 노숙인을 만났다. 다른 친구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가는데 루이스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지갑을 다 비워주고 난 후에야 친구들과 함께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그에게 물었다. “저런 사람에게 돈을 주다니 무슨 짓인가? 저런 사람들은 그저 허랑방탕하게 써버린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루이스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내가 그 돈으로 할 일이었다네.”

둘째, 아낌없이 주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잔을 비워 남을 도우면 하나님이 그 잔을 다시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라고 말한다.

“모든 일”에 너그럽게 연보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이를 돌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브레넌 매닝이 말한 것처럼, 한없이 자비를 베푸는 삶을 살도록 부르신 그 밑바탕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과 돌보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보다 내 소유를 더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혼보다 물질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문서인 “헤르마스의 목자”는 우리에게 “밭을 구하기보다, 어려움에 처한 영혼을 힘닿는 대로 구하라”고 권고한다. 만일 자산관리에 이와 같은 관점을 적용하면 어떨까? 아낌없이 베풀면 얼마나 많은 걸인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첫 번째 제자들을 보내셨을 때처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라고 말씀하시며, 지금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고 믿는다.

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하나님이 물질을 제공해주실 것을 믿으며, 사람보다 물질을 더 소중히 여기지 않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 우리가 이것을 실천할 때에 포스트모던 사상에 물든 이 세상은 우리의 자비로움을 통해 예수님을 볼 것이고, 우리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그 시대에 했던 것처럼 교회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게리 호그(Gary Hoag)는 그리스도인의 자선 활동 장려에 평생을 헌신한 수도사다.



 

2.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


분명히 성경은 도움이 필요한 형제와 자매에게 항상 손을 내밀라고 가르친다.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바로는, 길모퉁이나 도로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들, 심지어 자선단체 관계자를 만나려고 교회를 찾는 사람들 대부분이 실제로 노숙인이나 빈곤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버지(칼 베일즈)가 아이오와 주 디모인 시의 현장 조사에 참여했는데, 그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걸인들이 하루에 300달러 정도를 벌고, 술이나 마약에 그 돈 대부분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나는 패서디나 지역의 노숙자 400여 명과 스키드로우 거리에서 노숙하는 걸인 천여 명의 이름까지 잘 알고 있지만, 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반면 하루 종일 길거리에서 구걸해 300달러 정도를 벌고는 자기 차로 돌아가거나, 아파트나 주택으로 차를 몰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집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을 돌볼 공동체이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배경은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사도 요한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들은 걸인의 요구에 돈을 건네는 대신 그보다 더 나은, 치유와 회복을 선물했다. 사람이 강건해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예수 그리스도와 신앙 공동체와 관계를 맺으면, 이를 공급받을 수 있다.

돈을 건네는 것은 가장 도움이 되지 않는 일시적 행위이므로 최후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 거처를 마련할 목적으로 누군가 내게 돈을 요구하면, 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기관과 연결해주거나 우리 선교단체로 와서 도움을 받으라고 명함을 준다. 그저 피할 지붕만 제공하지 않고 삶을 변화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인도한다.

아주 가끔은 현금을 건네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가 있다. 상하이의 거리에서 구걸하는 한 노파를
만났을 때, 이 할머니를 도울 만한 단체를 알지 못했고, 중국 내에는 마땅한 사회보장제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건넨 적이 있다. 최근에 상하이로부터 구제선교단체 설립을 요청받았는데, 그제야 나는 진짜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앤디 베일즈(Andy Bales)는 로스앤젤레스의 노숙인을 섬기는 유니온구제선교회 대표다. 



 

3. 절대 안 된다

구제를 바라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은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즉각적인 구제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값싼 사랑에 불과하다.

돈을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간혹 무책임한 행실을 끊지 못해 구걸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술과 마약을 구입하려고 돈을 요구한다. 또 어떤 이들은 게으름 때문에 구걸하기도 한다. 때로 걸인의 이야기가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심지어 몇 번은 실제로 설득당하기도 했다. 이들 가운데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한순간에 식별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사랑이란 어떤 이를 위한 최고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을 건네는 실천이다. 하지만 우리가 건넨 돈으로 누군가가 무책임하고 파괴적인 삶을 지속한다면 우리의 실천을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간편하게 약간의 돈을 건네면, 일단 도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근본적인 방법으로 곤고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게으른 사람, 중독에 빠진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사랑이 가득 찬 기독교 공동체의 전면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는 많은 시간과 재정이 들어가는 일이다.

통합적인 구제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하려면 우리는 부유한 생활방식을 바꿔야 한다. 극심한 궁핍을 야기하는 부당한 사회구조에 도전하고 개선해야 한다. 단순히 구호 성금을 건네는 행위는 현실을 돌아보고 개선해야 하는 책임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도덕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해서 책임감 없이 돈을 기부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 부요함을 누린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돈을 건네곤 한다. 동전 몇 개를 던져주고 양심을 달래는 쪽 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지원하거나 빈곤을 발생시키는 사회구조적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빈곤층이 진정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능력을 획득하고 변화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돈 몇 푼 쥐어주는 것보다, 함께 앉아 떡을 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돈보다 사랑에 더 목말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고 보여주신 대로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공동체에 속해야 하며, 복음주의와 전반적인 사회문제를 함께 묶어 해결하는 통합적인 공동체 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이러한 단체와 연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제공할 수 있고,  좀더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같은 단체의 간사들이 적절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두 팔을 벌려 상처 입은 이들을 껴안는 교회로 그들을 초대할 수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로날드 사이더(Ron Sider)는 “사회 참여를 위한 복음주의 운동”의 대표이자「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한국 IVP 역간)」의 저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