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도 십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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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도 십일조?
  • 더글라스 르블랑, 짐 셰퍼드, 게리 무어
  • 승인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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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를 받는 실직자도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

 

더글라스 르블랑

그렇다, 기쁨으로 드린다면

미국의 인기 록밴드 도어스의 드러머로 오랫동안 활동한 존 덴스모어는 존 레논과 오노 요코가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십일조를 높게 평가하는 것을 듣고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더 네이션>에 기고한 글에서 덴스모어는 십일조 덕분에 탐욕을 억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만든 우리 밴드에 대한 영화가 나왔을 때, 음반 로열티가 세 배로 치솟았다. 십일조를 내는데 손이 떨렸다.”

2008년 내가 십일조에 대한 책을 출판할 때 받은 사전 계약금의 십일조를 드리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손이 떨리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당시는 저널리스트로서, 내 생애에서 가장 척박한 시기였다. 집에 충분한 돈을 벌어다주지 못해 부끄러웠고, 책을 낼 수 있을지도 확신이 없었다.

내가 어떻게 십일조를 계속 낼 수 있었을까? 십일조를 주저하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의 뻔뻔한 위선에 대한 혐오감 외에 또 무엇 때문이었을까? 주로 이 때문이다. 십일조를 내는 자발적 훈련 과정에는 이혼 시 재산 분할에 대한 혼전 합의서와 같이 빠져나갈 예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실직자뿐만 아니라 이유를 대자면, 그 누구라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이유가 있다. 오직 율법에 대한 의무감에 기쁨 없이 드리는 십일조라면 하지 않아도 된다. 신약이 규정하는 십일조에 대한 명령 때문이라면 드리지 않아도 된다(신약에는 십일조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이 내게 갚아줄 것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거나, 채무를 변제하지 못할 처지라면 십일조 하지 않아도 좋다. 하나님이 희생을 요구했다고 억울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 경우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런 감정을 없애주실 것을 바라며 십일조를 작정하는 것이 아니라면 드리지 않아도 된다.

십일조를 피하려는 이유에 어떤 패턴이 보이지 않는가? 주택 담보 대출을 두 배로 늘려야 할 상황이고, 조변석개하는 욕망을 끊임없이 만족시키려는 삶을 살고 있다면, 십일조를 드릴 것인가 말 것인가 이상의 문제다.

십일조는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사람만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옵션이 아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고, 탐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마음을 치유하고, 당신의 끝없는 자비로 가까이 두시기 위해 고대부터 사용하신 영적 방법이다. 

불과 몇 년 전, 나는 생업에 관련하여 사막을 걷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실직한 형제자매를 위해 이러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도를 하고 싶다.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보살펴주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길 바란다.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목표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누리게 되길 바란다. 예배를 통해, 가진 것의 나눔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광야를 지나는 우리를 보고 계심을 알기를 바란다.

좋은 때나 힘든 때나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서 계획하신 목적은 그저 수지타산을 맞추고 사는 것 이상의 축복임을 깨닫기 바란다. 위안, 위로, 구원의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을 느끼기를 기도한다.

 


더글라스 르블랑Douglas LeBlanc <생명의 교회> 객원 편집자이자 「십일조Tithing: Test Me in This의 저자


 

짐 셰퍼드
그렇다, 나눔의 너그러움으로


최근 경제위기의 가장 큰 비극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장기 실업’일 것이다. 선한 목적을 갖고 성실히 일한 근로자들이 일자리에서 버는 수입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으로 살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교회에 잘 다니는 전형적 그리스도인들은 가족 부양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실족하기 쉽다. 곤고한 때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실한 청지기로 남기 위해서는 목회자, 지도자, 친구와 같이 사랑과 힘을 보태줄 수 있는 멘토를 찾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성경은 자신의 노력으로 얻지 않은 수입의 십일조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십일조를 이만큼 드려라”고 잘라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성경은 나눔의 너그러움과 감사를 항상 강조한다. 교회 지도자와 그리스도인들은 실업급여의 십일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다음 질문을 해볼 수 있다. 

• 실업급여를 당신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공급으로 생각하는가?

• 시간, 기술, 금전 등 모든 분야에서 나눔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 실업급여의 일부를 드리는 것은 고용급여의 일부를 드리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실업급여의 일부를 드리는 것은 당신 삶의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것인가?

나눔은 마음의 상태다. 나눔을 기뻐하는 사람이 재물을 소유하면, 재물을 나누게 된다. 이는 제2의 천성이다. 어려운 시기라고 나눔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벌이가 적을 때 드리는 십일조는 우리가 드린 아주 작은 것도 당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데 사용하시는 ‘공급자 하나님’을 일깨워주기 때문에, 감사와 신뢰를 공고히 한다.

뿐만 아니라 통장에 얼마가 있든, 일정 수입이 있든 없든, 내 삶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어려운 시기에 나눔을 실천하며 서로 격려하고 돕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직장이 있는 사람에게도 십일조를 몇 퍼센트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실직한 이에게도 그런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각 개인 간의 사안이다. 나눔의 삶은 의무가 아니라 기회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지, 강요받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7-8).

 


짐 셰퍼드Jim Sheppard 기독교 금융자문단체 제네리스Generis의 CEO 


 

게리 무어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30년 전부터 청지기의 의무에 관해 연구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예수님과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외하고 천국에 가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자신이 갖고 있던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했던 과부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굉장한 믿음의 표현임에는 틀림없지만, 실업급여나 복지급여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십일조의 의무가 없다고 말한다면, 많은 교회 지도자들(특히 TV에 출연하는 유명 목회자들)은 놀라고 실망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적 이유부터 얘기하면서 위대한 청지기의 말을 빌리자면, 십일조가 사람을 위해 생긴 것이지, 사람이 십일조를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세는 십일조가 부요한 자들에게는 부요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요, 성직자를 비롯한 곤고한 자들에게는 선물이라고 가르쳤다(신 14:22-29).

십일조를 드리는 성경적 의미 중 하나는 실직상태에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헌금에 동참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라는 성경의 의무에 반하는 것이다.

말라기가 “온전한 십일조를 들여”라고 도전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위해 충분한 음식을 만들라고 한 것처럼, 성전의 제도적 필요를 위해 재물을 대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성전에 쓰기 위해 세금을 걷었지만, 당시의 십일조는 그 이상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엠티툼Empty tomb, inc.의 조사와 기타 기독교 재정 고문들에 따르면, 교회에 헌금을 적게 하는 것은 제도적 지지 이상을 의미한다. 성경 시대에는 십일조를 거두어 교회 외부 사업에도 사용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그런 용도, 특히 정부 추진 사업에 재정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성경 시대와 동일한 십일조를 기대해서는 안 되며, 특히 그 용도가 교회 지도자의 안락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교회 역사는 교회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에 자신의 생각을 추가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르틴 루터는 독창적인 청지기 관료였던 요한 테첼이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위한 재정을 모금한다는 소식을 듣고 종교개혁에 힘을 보탰다.

테첼은 성당 건축의 ‘필요’와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 축복하시는 이들, 즉 가난한 자의 필요를 혼동했다. 루터는 교회의 이기적 행동을 공격하는 95개 논제를 발표하면서 거리낌 없이 분명히 비판했다. 

우리가 불우하다고 일컫는 이웃들은 사실 복 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은 너그러이 베푸는 자들보다도 가난한 자와 더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이 복 있는 자들에게 나눔을 기대하기보다, 이들과 나눔으로써 교회는 빈곤한 자와 부요한 자 모두와 관계를 맺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

실직 중이어서 가난한 이들에게 십일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율법적이고 가혹하며 성경적이지 않다. 그러나 빈곤하더라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나눠도 좋다.

만약 가난한 자들이 가진 것을 교회 사역에 드리고자 한다면 (비록 그 돈이 정부보조금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확인이 있는 사람이며, 우리가 바늘구멍을 겨우 통과해 천국에 가서 꼭 찾아봐야 할 사람들이다. CT

 


게리 무어Gary Moore 재정 세미너리Financial Seminary 창립자이자 「신실한 재정 개론」Faithful Finances 101의 저자

[수정:2015.03.15]
[게시:2011.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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