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델 베리] 다르게 사는 길을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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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델 베리] 다르게 사는 길을 상상하라
  • 레이건 셔터필드 | Ragan Sutterfield
  • 승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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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돌보는 마음을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심다

 

웬델 베리는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쓴 책들을 보면 그를 사회비평가, 농부, 자연보호론자로 소개하고 있다. 모두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작가다.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이며 소설가다. 진보잡지 <프로그레시브>도 보수잡지 <내셔널리뷰>도 그를 제 편으로 인용했다. 유진 피터슨은 그를 영성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곱 저자 중 한 사람으로 꼽으면서 “통렬한 예언자의 모습과 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결합된 베리에게서 “예수를 따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베리의 책을 읽는 사람 가운데 젊은 그리스도인이 늘고 있는데, 공동체 생활과 성품의 변화를 추구하는 복음주의자가 특히 많다. 휘튼대학 정치학 교수 애슐리 우디위스는 “학생들이 베리가 제시하는 재기발랄한 대안들과 가능성들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베리가 낭만적 이상주의자라고 늘 나오는 비판을 하는 학생도 물론 있지만, 대다수 학생에게 그는 복음주의자는 아닐지라도 기독교 사상가임은 분명하다. 우디위스는 수업 중에 소개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많은 정치 사상가들을 포함한) 모든 저술가 중에 베리가 졸업 후 학생들의 삶에 가장 실제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산상수훈에 근거한 자연보호론

베리는 세계와 자기 지역에 무관심한 채 살아가는 미국인의 모습을 40년 넘게 여러 방법으로 들추어내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숨겨진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들을 소비하고 받아들인다고 지적한다. 컴퓨터를 켤 때 ‘이것이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캐낸 석탄으로 생산한 전기를 소비하는 물건이구나, 쓰는 만큼 환경이 나빠지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묻는다.

베리는 컴퓨터나 기술 사용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켄터키의 작은 동네 포트로열(인구 116명) 근처 레인스랜딩에 있는 50헥타르 규모의 농장에서 트럭을 몰고, 전기톱을 쓰고, CD플레이어를 돌린다. 컴퓨터는 없고, 농장 안,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나무 위의 집에서 글을 쓴다.

베리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들은 환경오염, 토양척박화, 노천채굴, 삼림벌채, 산업 및 상업 폐기물의 양산을 현대의 안락함과 편리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 불가피한 ‘현실’, ‘실용적인’ 타협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목록을 열심히 연구하고, 치료책을 찾아야 할 과제로 여긴다.”

베리의 입장은 산상수훈 정신에 따른 자연보호론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을 돌보면서, 오만불손하고 파괴를 일삼는 현대 문명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안을 깨끗이 하”고 “우리 눈에서 들보를 빼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근거해 일관성 있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베리는 다른 자연보호론자들과 입장을 달리한다.

나는 베리가 성경을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며 알게 되었다. 그는 사복음서와 바울서신의 여러 구절을 자유롭게 인용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피조세계를 돌보는 일에 관한 그의 비전이 생명의 신성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다정하고 신사다운 남부의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 아니고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깨우침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리의 친구인 철학교수 노먼 위어즈바가 지적한 것처럼, 베리가 교회를 “가차없이 자연을 파괴하고 뉘우칠 줄 모르는 경제체제에 깊숙이 얽혀 있는 자발적인 공범”으로 여긴다. 베리는 “교회와 모든 사회 기관이 세상의 파괴에 반대하지 못했다”고 내게 말했다.

 

 

개인의 책임

베리의 주된 표적은 기관이 아니라, 그 자신을 포함한 개인이다. 그는 “내가 여러 일을 벌이게 된 것은 이 세상과 내가 태어나고 선택한 지역에서 책임을 다하며 편안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쓴 바 있다.

베리는 1977년에 나온 그의 혁명적인 책 「미국의 불안」(The Unsettling of America)에서 “일부 대표적인 환경단체들이 투자 목적으로 사들인 주식 가운데 환경파괴로 악명 높고 환경보호론자들의 주장에 철저히 무관심한 기업들과 업종들이 있음”을 지적한다. 해당 환경단체들은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재빨리 투자정책을 바꾸었고 그런 행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스러워했다. 그러나 베리가 더욱 통탄해하는 점은 “그런 투자행위가 부조리하지만, 특별히 이상한 행동은 아니었다”는 부분이다. 환경보호단체들이 한 일은 “그 구성원들 상당수가 개인적으로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일을 조직으로 수행한 것뿐이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옹호할 수 없는 기업들에 편승해 돈을 벌고 있었다.”

베리는 여기서 대리자의 문제를 인식한다. 그는 대리자를 쓰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라고 말한다. 문제는 대리자들이 하는 일을 인식하지 않고 우리의 책임을 그들에게 넘겨버릴 때 발생한다. 베리가 자주 드는 사례는 먹거리 생산이다. 우리가 먹을 것을 기르고 사냥하고 모을 수 없으면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해야 한다. 대부분의 도시와 상당수의 농촌에서, 먹는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이고 의존적인 소비자”로 전락했다.

그들은 “먹는 일이 농업 행위”라는 점과 먹거리가 특정 지역의 땅과 생태계와 노동과 연결되어 있음을 잊어버렸다. 먹거리 생산을 위한 노동은 그것이 좋건 나쁘건, 건전하건 파괴적이건, 먹거리 산업의 생산물을 먹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주어지는 것을 그냥 구입할 따름이다.

“먹는 사람들은…먹는 일이 지구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 농업적 행위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먹는 방식에 따라 세계를 사용하는 방식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베리는 먹거리 조달에서 개인이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을 알려준다. “할 수 있는 대로 먹거리 생산에 참여하라.” “음식을 직접 준비하라.” “구매하는 먹거리의 원산지를 파악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구입하라.” “자기보호 차원에서 먹거리 생산 산업의 구조와 기술에 대해 최대한 많이 알아두라.” “농사를 짓고 식물을 가꾸는 일의 필수요소를 알아두라.”

베리는 먹거리와 연료 조달을 스스로 해결한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전깃불은 꺼져있다. 나와 만난 날에도 날씨가 흐렸지만 보는 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전깃불을 켜지 않았다. 베리는 그의 숲에서 죽은 나무를 직접 모아와 (70대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힘든 일이 되고 있다) 화목난로로 집을 난방한다. 집 뒤에는 채마밭이 있는데, 5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내 타냐와 그곳에서 먹거리 대부분을 직접 재배한다. 베리의 농장은 “가정경제”의 중심에 있다. 돌봄과 파괴의 갈림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떠돌이 세대

베리는 건전한 가정경제를 꾸려가려면 한 지역에 정착해 마을에 속해서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가정이 점점 적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들을 파악할 만큼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떠돌이들이다. 동네 하천이 어디서 시작해 얼마나 멀리서 흘러왔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 동네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베리는 피조세계를 보살피며 그 안에서 책임감 있게 살려면 이런 질문에 금세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 지역과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한다. 베리의 부모는 두 사람 모두 켄터키 강 부근의 헨리카운티에서 최소한 5대째 농장을 경영하며 살아왔다.

베리는 여러 소설에서 켄터키 주에 있는 가상의 마을 포트윌리엄을 그리고 있는데, 그곳의 생활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마을에서 살아가고 마을 일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 심지어 “말과 노새와 젖소와 개들까지” 다 아는 상태를 “멤버십”이라고 부른다.

포트로열도 포트윌리엄처럼 간선도로에 상점이 하나뿐인 작은 마을이다. 교회는 감리교회와 침례교회, 이렇게 두 군데가 있다(베리는 침례교회에 다닌다). 마을을 둘러싼 많은 농장들에선 한때 대부분 담배를 재배하고, 양을 기르고, 가족과 이웃이 함께 먹을 먹거리들을 길렀다. 그러나 지금은 루이빌과 렉싱턴으로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단지로 바뀌고 있다.

베리는 소설을 통해 이와 같은 작은 마을의 장점과 이웃 간의 정, 어려움을 소개한다. 1800년대 말의 활기찬 포트윌리엄이 현재의 동네로 바뀌는 과정과 전 같지는 않지만 끈질기게 “멤버십”을 유지하는 모습을 그리고 농촌이 파괴되는 광경을 증언한다. 베리의 소설을 그의 에세이들과 함께 읽어나가면 금상첨화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의 저작을 충실하게 읽는 독자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어 삶의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베리의 비전에 대한 평가

베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강한 어조로 생태학적 회개를 촉구한다. “기독교와 피조세계의 생존”이라는 에세이에서 베리는 이렇게 썼다. “콜럼버스가 바하마 군도에 첫발을 내디딘 후 500년 동안, 기독교 전도자는 정복자와 상인과 동행했고 자신의 목적과 그들의 목적이 같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기독교 단체들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의 파괴와 약탈에 대체로 무관심하다….” 베리는 기독교인들이 이처럼 세계 파괴의 공모자가 된 근원이 “성경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시골 감리교회에서 애너소스커뮤니티가든을 이끌고 있는 듀크신학대 졸업생 프레드 반슨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배운 복음주의 기독교가 “마음과 몸, 종교와 경제 사이의 이원론을 명시적, 암묵적으로 [지지했다]”고 말한다.

웬델 베리 안에서 우리는 지역과 마을에 뿌리내린 일관성 있는 생활과 이 시대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흙을 가까이 하는 겸손한 삶을 발견한다. 반슨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손에 흙을 묻히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아담은 아다마[ ‘흙’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즉 부식토에서 나온 인간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졌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너무 많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흙과 분리되어 산다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변호사이자 듀크대에서 신학박사를 받은 리처드 처치도 베리의 저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을 많이 발견한다. 그러나 처치는 베리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베리가 “콘스탄티누스 시대의 신자”, 즉 하나님의 백성과 농촌의 농부를 구분하지 못하는 문화적 기독교인이 아닌지 우려한다.

베일러대학 신학과 문학 교수인 랠프 우드도 그리스도인들이 베리를 대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드는 베리의 저작에서 “거룩한 것들은 언제나 공동체적이고 중재된 형태로 찾아온다는 기독교의 주장과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가 볼 때 베리의 자연관은 기독교적 시각이 아니라, “만물은 그 본성(physis), 그 본질적인 성장원리로 제 기능을 완수한다”는 스토아학파의 시각에 가깝다. 우드에 따르면, 베리는 “하나님의 타자성”은 놓치고 하나님의 초월성이 설자리가 없는 심각한 자연신학에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우디위스는 베리가 신학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창의적인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는 무엇을 내놓고 있는가?”

웬델 베리는 학계와 신학계 모두에서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정답을 다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아들 농장의 길게 펼쳐진 밭을 내다본 후, 베리는 나를 태우고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웬델과 타냐 부부가 40년 넘게 소유한 언덕 중턱의 농장을 향해, 죽 펼쳐진 도로를 따라 달렸다. 나무 위의 집을 지나고, 강변 낮은 땅에 자리한 숲을 통과해 헛간으로 올라섰는데, 그곳에 짐수레를 끄는 나이 많은 암말이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베리는 트럭 엔진을 껐다. 우리는 말없이 나무에 앉은 박새, 참새, 홍관조를 지켜보았다.

베리가 말했다. “나는 이 모든 소리 중 하나일 뿐입니다. 다른 소리들도 많아요. 내가 이제껏 쓴 내용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쓴 겁니다. 나에게는 최종발언권이 없습니다.”

 



레이건 셔터필드(Ragan Sutterfield)는 아칸소에 사는 농부, 작가,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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