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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며속죄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은 속죄이론을 파악하는 것 이상이다
필립 얀시  |  eunbyu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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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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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속죄’(atonement)와 ‘이머징 교회’(emergent church)라는 단어를 함께 검색해 보면, 컴퓨터 화면에 열기가 한층 달아오를 것이다. 고전적 속죄이론들을 옹호하는 이들과, 속죄이론들이란 60년 전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Sayers)의 풍자적 표현을 약간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에 격렬한 (언제나 예의바르지만은 않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이어즈의 말이다. 하나님은 모두를 정죄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아들, 너무도 순결하고, 그래서 특별히 매력적인 희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써 자신의 형벌적 가학성(vindicative sadism)을 충족시켰다. 하나님은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거나 그리스도에 대해 들어본 적 없는 사람들만을 정죄할 뿐이다. 2000여 년 전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래, 오리게네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피에르 아벨라르, 칼빈 같은 신학자들은 속죄를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를 제안했다. 사탄에게 지불한 속전(사탄 속전설, 오리게네스), 하나님이 요구하신 배상(속상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인류를 위한 도덕적 감화(도덕 감화설, 피에르 아벨라르), 인간 때문에 대신해서 받은 형벌(형벌 대속설, 칼빈).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와 하나님의 진노를 언급하는 속죄이론 중 일부는 많은 현대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표상이며,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빌려보자면) “하나님은 세상을, 그렇게도 혐오하는 이 세상을 위해 죽으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다”는 생생한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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