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열린 마당
교회 내 소셜네트워크의 역할은?교회 내 소셜 네트워크 사용, 어떻게 볼 것인가
매튜 리 앤더슨, 브랜든 포크트, 더그 그루서스  |  C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3.04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매튜 리 앤더슨
현실을 왜곡시킨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이점도 많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신중하고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한다.
잘만 사용하면 소셜 네트워크는 그리스도인 간에 서로의 삶을 열어 보이는 창이 되어, 교회 안의 교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이웃 돕기에 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도록 권장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광범위한 지역사회의 일부분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심오하고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소셜 미디어는 단기적이고 기술적인 해답밖에 제공하지 못한다. 소셜 네트워크를 하다보면, 실질적 교제 없이도 친밀해지거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공동체를 세우는 전략으로 소셜 네트워크라는 장치에 의존하면 할수록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을 위험이 커진다.

공동체의 문제는 서로가 한 공간에서 식탁교제를 하며 자리를 같이해야 하는 사회적 상황과 환경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그 순간, 서로의 어깨를 감싼 그 편안한 팔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셜 네트워크가 그리스도인의 교제에 즉각적 위험이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백성의 모임에서 형성되는 독특하고 고유한 사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직관을 무디게 만들지 않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특히 날이 갈수록 소셜 네트워크가 비디오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현실에서 이 질문은 보다 중요해진다.
비디오 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하다보면 온라인에서도 한 공간에서 실제로 교제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때문에 몸소 함께하는 교제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고유한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되고, 결국 교회에서 모이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셜 네트워크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 사회성을 환기시키지만, 동시에 더 이상 우리가 육신으로 실제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마치 사회성이 충족되는 것 같이 몰아간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직접 육신을 입고 사람들 가운데 거하러 오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이 기술적 확장이 인간성을 파괴할 때,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야 할 원칙적 이유가 우리에게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소셜 네트워크를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활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소셜 네트워크 자체가 교회 화합을 돕는다는 거짓 약속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리스도인 간의 연합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매튜 리 앤더슨(Matthew Lee Anderson).「질그릇: 왜 우리 몸은 믿음에 영향을 미칠까? 」(Earthen Vessels: Why Our Bodies Matter to Our Faith)의 저자. MereOrthodoxy.com에서 활동하는 블로거.
 

브랜든 포크트
교제를 깊게 만들어준다

교회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소셜 네트워크로서, 복잡하게 상호 연결된 공동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 역시 삼위가 하나로 존재하며 활기 있게 움직이는 네트워크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한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용기를 내어 두려워 말고 현대 소셜 미디어를 사용해야 한다. 교회가 성도 간의 교제를 위해 이 도구를 포용해야 하는 데는 다섯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교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목적이란 공동체와 사역, 복음화, 영적 성장 등을 가리킨다. 소셜 미디어는 이 각 요소의 폭발적 성장을 가능케 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교제에 큰 도움을 준다.

둘째, 소셜 네트워크는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즉, 교제의 폭을 교회 너머로 확장해 전 세계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도구로서 소셜 네트워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눅 5:4)는 명령을 이행하도록 돕는다.

교회의 교제는 배타적이어서는 안 되며, 교회 안에만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 언제나 바깥을 향해 초점을 맞추고, 선교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뿔뿔이 흩어진 부족처럼 지역 개교회에 고립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다.(고전12:12)

셋째, 소셜 미디어는 시간적 제약을 뛰어넘는다. 과거에는 일반적으로 교회나 가정 등 특정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을 정해 만났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지난 주일의 설교를 두고 한 주 내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넷째, 온라인에서 맺어진 관계가 오프라인에서 공동체를 촉발시킬 수 있다. 소셜 미디어는 인간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가 아닌 보완이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도구다. 이상적인 것은,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가 오프라인으로 연결되어 마침내 서로가 얼굴을 마주보며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요2 1:12) 경우다. 나도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주에 사는 친구 여럿을 최근 직접 만난 적이 있다.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관계가 실현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셜 미디어가 그리스도인 사이에 한정되었던 교제의 문을 열어 외부 사람을 기독교 공동체로 초대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한 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는 젊은 세속주의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인 블로거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한 무신론자는 유튜브에서 우연히 종교 논쟁에 참여했다가, 신의 존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한 젊은 엄마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오랫동안 가졌던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바로잡기도 했다.

물론 소셜 미디어에는 위험성도 잠재되어 있다. 근거 없는 소문을 확대하거나, 자기도취를 조장할 수도 있으며, 한 사람을 몇 문장으로 단정 지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험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일단 위험을 깨닫고 나면, 예방과 극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신중하게 사용한다면, 소셜 미디어는 실보다 득이 많다. 그리스도인 간의 유대를 강화시키고 기독교 바깥에 있는 수많은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연결할 수 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는 교회 내의 교제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성장시키고 건실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브랜든 포크트(Brandon Vogt).「교회 그리고 뉴 미디어: 블로그하는 회심자들」(The Church and New Media: Blogging Converts), 「온라인 활동들」(Online Activists), 「트위터하는 주교들」(Bishops Who Tweet)의 저자. ThinVeil.net에서 활동하는 블로거.
 


더그 그루서스
장단점이 있다

대다수 미국인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라면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어쩌면 아예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대로 흡수하고 발전시킨다. 마셜 맥루언의 표현대로라면, 이들은 “몽유병 상태로 역사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빛’과 ‘소금’(마 5:13-16)이라 칭한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시시각각 공격해오는 수많은 기술의 장단점과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각 교회에서 이뤄지는 교제와 복음화에 있어 소셜 미디어는 현재 어떤 역할을 하나? 우리 교회에서 페이스북이 긍정적 역할을 하나? 우리 목사님은 트위터를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소셜 미디어란 무엇인가?’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인 간의 교제(혹은 코이노이아)에 대한 성경적 모델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소셜 미디어는 컴퓨터를 매개로 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서, 사람과 단체 사이의 접근성과 커뮤니케이션 속도를 높여준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덕분에 나는 길 건너의 이웃뿐만 아니라 인도에 사는 친구 소식도 금방 알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이용자는 소셜 미디어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먼 곳까지 글과 사진을 보내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소셜 미디어는 “그곳에 있다” 혹은 “함께 있다”는 실제 존재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인간 실제 존재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문자메시지로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고, 온라인으로 세례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소셜 미디어는 우리 의식에 너무 많은 정보를 어수선하게 집어넣어 집중력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한 번에 한 대상에 깊이 몰두하는 능력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멀티태스킹(다중 작업)이 일상화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 뇌는 원래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 정신은 흐트러지고 산만해져, 그 어느 것에도 온전히 몰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인격적 교제를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소셜 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이다. 소셜 미디어는 이를 모방하고 가장할 뿐이다. 요한이 쓴 짧은 서한인 요한이서는 이렇게 맺는다.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요2 1:12). 하나님 역시 수세기 동안 선지자를 보내고 영감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셨지만, 결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요 1:14)하게 될 때까지 모든 것은 미완의 상태로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의 일은, 열방이 하나님을 유일하고 진정한 신임을 깨닫고 드리는 경배를 받는 것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열과 성의를 다해 복음을 전하고 옹호해왔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라는 말씀에 따라, 가능한 한 다양한 언어로 성경을 옮겨 적고 번역해왔다. 또한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오늘날은 인터넷을 통해 그 메시지를 퍼뜨리려고 힘쓴다. 그리스도인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으며 교회 안에 연합의 장을 만들 수 있다.

한 마디로, 다른 모든 미디어가 그렇듯 소셜 미디어에도 장단점이 있다. CT

더그 그루서스(Doug Groothuis). 덴버 신학교 교수. 「기독교 변증론: 성경적 믿음의 포괄적인 사례」(Christian Apologetics: A Comprehensive Case for Biblical Faith), 「사이버 공간에서의 영혼」(The Soul in Cyberspace) 저자.

 

[수정:2015.03.04]
[게시:2011.11.22]

매튜 리 앤더슨, 브랜든 포크트, 더그 그루서스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