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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이야기로 돌아가기다음 세대를 잃지 않기 위한 성경적 해결책
앤서니 베이커  |  Anthony D. 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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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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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달 전, 실천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 스탠리 하우어워스에게 새로운 교회 운동, 특히 이머징 교회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타임>이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꼽은 하우어워스는 늘 그렇듯이 악의 없는 풍자적 어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운동에서 교회의 미래를 찾을 수는 없지. 교회의 미래는 매주일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있다네.”

이 대답이 성의 없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 학생은 분명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블로그에 그렇게 표현했다. 나는 하우어워스의 말이 본질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 학생의 실망감 이면에 깔려있는 정당한 염려를 살펴보자.

간단히 말해 그의 염려는 ‘기독교 신앙이 무너지면 어떡하나’다. 주류 기독교가 하향세라는 통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내가 속해있는 영국성공회만 봐도 그렇다. 교단 출판물에 따르면 영국성공회는 1965년부터 2009년 사이에 신자의 3분의 1을 잃었다. 로마가톨릭 웹사이트에 올라온 최근 기사에서는 “앞으로 3-5년 내에 2000개 이상의 교회가 문을 닫거나 합병되거나 팔릴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종교사회학자들은 쇠퇴의 원인을 두고 토론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역사학회 회장인 데이비드 홀링거는 최근 논문에서 쇠퇴의 원인이 주류 교단의 문제와 관련 있음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그는 주요 쇠퇴 요인으로 두 가지를 짚었다. 출생률이 심각하게 감소했고 자녀들을 “문화적으로 동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출생률 감소라는 첫 번째 요인은 단순하다. 이는 대학교나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는 현상과 연관이 있다. 결혼한 이들은 부모가 되기 전에 학교를 마치고 확실한 경력을 갖길 원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과거에 비해 작은 가족을 형성한다. 하지만 두 번째 요인은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주류 교단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기독교 신앙의 규칙적 변화와 습관들을 물려받으며 문화적으로 동화되는 데 실패했을까? 홀링거는 주류 기독교가 저지른 잘못이 지속적으로 영향으로 미친 결과이며 따라서 이에 책임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그 잘못이 무엇일까?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에 세속주의가 급격히 퍼져나가면서 기독교가 공격을 받자, 미국 주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가 가르치는 내용을 믿고 따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대신 그들은 시민 인권 운동을 신앙의 ‘새로운 핵심’으로 바꾸고, 자녀들이 지역 모임에서 (혹은 집에서 정치와 관련한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주일 아침을 보내는 것을 허용했다.

[미국 주류 교회: 건국 초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 그리스도인 대다수가 속했던 주류 교단들을 가리킨다. 주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 구원과 복음 전도보다 사회약자 보호 등 사회 정의를 강조하는 신앙 노선을 주로 취해왔다.-CTK]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주류 그리스도인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세속주의의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고 자녀들이 성경을 지니고 다니며 예수님에 대해 말하도록 가르쳤다. 홀링거는 복음주의의 부상이 주류 교회의 쇠퇴와 맞물려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이머징 교회 같은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출현하자 불안감이 조성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자라서 복음을 사회적 참여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도신경과 성찬을 무가치한 일회용 형식쯤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실제로 무엇인가 무너진 것이다.

 

   
 


나를 부르는 복음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우어워스의 답은 매우 공격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매주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우리가 늘 하던 일이 교회를 연약하게 한다면 그 일에 참여해도 되는 것일까?

물론 이는 우리가 하는 “똑같은 일”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 그 반복하는 일로 아이들이 기독교에 문화적으로 동화되기는커녕 멀어진다면, 그 일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복음서를 읽는 동안 당황해서 헛기침을 하거나 기도하는 동안 지루해하며 손장난 하는 아이에게서 교회의 미래를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매주일 하는 똑같은 일”이 복음 선포와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 죽음, 부활 안에서 신자들의 삶을 형성해가는 다양한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음 문장이 사실임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의 미래는 주일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것들을 행하는 데 달려있다.

하우어워스는 최근 저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말씀과 더불어 행하기”work with words를 배우는 것이 기독교 영성 형성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 관점으로 문화적 동화에 대한 우리의 시도(혹은 시도하지 않음)를 비판적으로 점검해보는 것은 올바른 접근이다. 문화적 동화라는 문제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계속 쥐어줌으로 해결되리라 생각한다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더불어 행해야 할 “말씀”(복음과 그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신앙의 뼈대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하나님에 대한 복음의 말씀과 더불어 행하고, 기독교 신앙을 전통적이면서도 새로운 언어로 표현해나갈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고민에 대한 유일하고 실제적인 ‘해결책’이다.

신학자 야나 스트루코바가 최근 청소년과 제자도에 관해 연구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영성 형성의 비결은 소명으로서의 기독교를 회복하는 것이다. 소명은 부름이다. 복음이 독자나 청자에게 언어로 직접 건네는 ‘부름’이다. 마틴 루터가 주장했듯이, 복음은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 귀가 복음을 듣는 데 훈련되어야 그 부름에 답할 수 있고, 또한 그 대답은 “말씀과 더불어 행하는” 삶으로까지 나아간다.

문화적 동화에 대한 홀링거의 개념을 소명의 틀로 다시 살펴보면, 복음의 말씀이 그리스도인 청소년의 영성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스런 부름을 계속 들으며 자라난다면, 친구와 가족을 사랑하듯 복음을 사랑하며 성장할 것이다. ‘선반 위의 크고 검은 책’에 대한 그리운 친밀감 때문이 아니다. 복음의 메시지와 그 내용 즉 성경 말씀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를 헌신하게 만든다. 20세기 초, 이론가 조지 알버트 코우가 정의했듯 기독교 교육의 어려움은 말씀과 신앙의 가르침을 자신의 갈망, 목적, 실천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버림받는 유치한 기독교

우리가 이 난관을 얼마나 잘 극복하고 있을까? 성인 대상 강의와 주일 설교를 살펴보면 별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주일 아침 교육과 설교 시간에는 인생관리 시리즈(재정, 양육, 취미)가 판을 치고 있다. 수많은 설교들은 성경 본문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 같고, 성경 해석을 하는 이들도 약간의 역사적 배경을 제시한 뒤 곧장 윤리적 ‘인생 적용’으로 나아간다.

아이들 쪽 상황은 더 심하다. 여름 캠프는 파도타기를 하는 예수, 혹은 모험가 차림을 한 예수를 내세우고, 주일 아침 교육에는 질 낮은 그룹 상담 시간을 갖는다. 우리가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고후5:19) 순전한 복음이라고 볼 수 없다. 아이들은 즐기는 척하면서 우리의 비위를 맞추고, 언제쯤 좀 더 재밌는 것을 하게 될지 항상 궁금해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는 동안 애처롭게도 우리의 노력은 지루해지기 일쑤고, 교회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 예수 이야기에 표현된 하나님 사랑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지 못하게 된다.

스트루코바의 연구에 의하면, 오늘날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신앙의 현실성 혹은 진정성”이다. 대신 우리는 엉성한 바닷속 그림을 교회 벽에 그려놓는다. 켄다 크리시 딘과 론 포스터는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삶을 전적으로 바꾸어놓고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교회가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 대부분을 피자를 사주는 데 썼다.”

학습도구를 이용하는 꽤 인기 있는 놀이 과정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감각 학습은 기독교 교육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내 아이들도 성경과 예배 관련 장난감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놀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신앙적 놀이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학습도구와 밀접하게 연결시키다보면, 이러한 도구들이 ‘선반’으로 옮겨질 때 복음 역시 그런 취급을 당하게 된다. 게다가 학교 환경은 ‘큰 교회’ 가는 경험과 현저히 다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앙도 수많은 인형과 장난감 트럭들처럼 어른스럽지 못한 어떤 것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학습도구를 이용한 교육과정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해결하려는 바로 그 문제를 강화할 뿐이다. 그리스도인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면, 목재로 만든 목동, 세례식 모형, 그리고 (슬프지만) 기독교와 같은 유치한 것들을 버릴 때가 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러브 스토리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마도 그 답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신자들이 복음서를 읽도록 가르쳐야 한다. 무슬림 어린이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처음 배우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뒤늦게 배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성경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에 근거해 교제하는 우리는 코란의 그러한 평가를 어떻게 현실화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성경의 사람들이 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초등학교 사서라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이 이야기를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것임을 잘 안다. 이야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수학 문제를 풀 때나 저녁식사를 할 때도 그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또한 좋아하는 이야기 속 인물과 상상 속 모험을 즐길 시간을 따로 가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단순히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언어의 그릇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에게 사랑을 돌려주신다. “당신이 읽는 이야기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넘어 기독교 교사는 “그 이야기는 당신을 사랑합니까”라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염려에만 휩싸인 우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어떻게 복음의 “말씀과 더불어 행할”지를 더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스런 부름을 새롭게 들으면서 말이다. 복음서 읽기를 배우면서 우리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선물을 자신에게 하게 된다. 세상의 근본을 이루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끼는 사랑, 그 이야기 속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받아들이게 되면서 큰 선물을 받게 된다. 연령, 인종, 계급을 초월해 아이들과 어른들이 복음서의 말씀을 향한 사랑으로 하나 된 교회를 상상해보라. 그리스도인들이 매주 나사렛 예수 이야기를 읽는 법을 익힌다면, 우리가 읽는 이야기를 사랑하고 그 이야기의 사랑을 받는다면, 분명 교회의 미래는 조금 더 희망적이 될 것이다. CT

 


앤서니 베이커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사우스웨스트신학교의 조교수로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Anthony D. Baker, "Learning to Read the Gospel Again" CT 2011:12; CTK 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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