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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오해하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할 것인가평행선을 달리는 두 세계 사이에서-많은 이들이 ‘복음주의’라는 말에 반감을 갖는 이유는
필립 얀시  |  Philip Yanc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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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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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대학의 독서토론회에 참석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독서토론회에서는 필립 로스, 소울 벨로우, J. M. 쿳시 등 시카고대학과 관련 있는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주로 읽고 토론했다. 토론회에는 마르크스주의자인 철학교수, 유아교육 전문가, 약학 연구원, 신경과 전문의, 변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똑같은 책을 놓고서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견을 내놓을 때는 놀랍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다양한 견해가 출렁이는 바다를 어지럽게 항해한 다음에는 여지없이 대화는 정치 문제로 흘러갔다. 나는 보수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가졌지만 토론자 중 나와 가까운 한 사람은 진보 성향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정권에 불만을 가진, 상당히 예외적인 진보주의자였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나를 이 세상과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는 창문처럼 여겼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복음주의자에 대해 아시죠?”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물었다. “그럼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동성결혼을 왜 그렇게 반대하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최선을 다해 답하려고 애썼고 유명한 복음주의자의 주장을 인용해보았지만 그는 별로 이해가 안 가는 눈치였다. 2004년 대선이 끝난 뒤 마르크스주의자 교수는 소위 ‘우파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에 대해 장황하게 연설을 늘어놓았다. “그 사람들은 순전히 증오심에서 그러는 겁니다.” 그는 획기적 변혁에 대한 두려움, 이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건 순전히 증오심이라니까요!”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까지 높이며 자신의 주장을 내세웠다. 그에게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우익 복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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