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여성을 억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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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여성을 억압하는가
  • 린다 하르츠 럼프 | Linda Hartz Rump
  • 승인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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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리는 기독교 유산을 때로는 극복해야 할 때가 있다

여성은 기독교 역사 초창기부터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에 포함되었다.

교회가 다른 주변 문화보다 여성을 더 존중해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때로 교회는 양성이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말하는 성경과 전혀 동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초기 기독교는 여성에 대해 혹독했던 로마법을 잠재적으로나마 경감시켜줄 영적 일체감을 가르쳤다. 로마법은 여성을 법적 권한이 있는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런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만연했다. 예를 들면, 남성의 불륜은 용납하면서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면 사형에 처했다.

이런 문화에 대항하는 초대교회의 이상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는 바울의 말에 잘 드러나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실제로 여성은 교회 내에서 핵심 역할을 감당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간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은 중세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중세 사회는 대체로 여성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많이 낳기를 바랐다.

실제로 고위층에서는 부모들이 딸을 중매하거나 결혼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로 많은 여성들이 결혼의 대안으로 수도생활에 매력을 느꼈다. 수도생활을 하면 묵상과 연구, 여행, 영적 교제를 하면서, 남성 수도사와 교회 지도자들과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예수의 메시지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잠재적 양성평등이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사라 섬너는 「교회 내의 남성과 여성」(In Men and Women in the Church)에서 교회가 여성 문제와 관련해 보여준 오욕의 역사를 살핀다.

섬너는 여성에 대한 심각한 차별을 드러낸 교부들의 글을 인용한다. 그 첫 번째가 3세기에 쓰인 터툴리아누스의 “여성의 복장에 대하여”(On the Dress of Women)라는 논문이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영향력 있는 교사 터툴리아누스는 여성을 대상으로 이 글을 썼다.

거기서 터툴리아누스는 모든 여성을 하와에 빗대어, “마귀로 통하는 길”이나 “금지된 열매를 따먹은 자”라고 부른다. “마귀가 공격하기에 남자는 너무 단호했지만, 그런 남자를 여자가 설득했다”는 논리다.

터툴리아누스의 주장에 따르면, 하와 곧 여성이라는 종족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죽음이라는 저주를 받았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죽으셔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감히 어느 여성이 “살가죽 위에다 뭔가를 치장할 생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덧붙인다.

섬너는 주후 374년부터 397년까지 밀라노의 주교를 지낸 암브로시우스도 인용한다. 그는 “낙원에 대해서”(On Paradise)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남성은 낙원 밖이라는 열악한 곳에서 창조되고도 더 우월한 존재가 된 반면, 낙원이라는 더 좋은 장소에서 창조된 여성은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암브로시우스가 보기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자연의 진리였다.

교회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여성을 창조하신 이유는 오로지 출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는 “출산을 제외하고는, 여성이 남성을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는 하나님이 남녀 관계에서 동반자 의식을 전혀 의도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목적이라면 “남녀보다는 두 남자가 같이 사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섬너는 “교부들에게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의 편견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기독교의 사고방식은 여성에 대한 성경적인 사고방식과 다르다”는 것이다.

터툴리아누스는 결혼과 여성을 폄하했던 로마시대의 사람이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 두 사람은 모두 기독교 사상가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성에 비해 여성은 비합리적이며 미덕도 부족하다고 믿었다.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가치를 지녔다는 사상은 최근에 와서야 폭넓게 지지를 받았다. 섬너가 주장하듯, 우리는 우리가 성경을 객관적으로 읽기보다는 남녀 불평등이라는 오래된 전통의 렌즈로 해석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이런 렌즈를 내려놓을 때야 비로소 남녀평등 문제에서도 반문화적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신다. 편애가 없으신 분이다(행 10:34)!

성경은 여성에 대해 세 가지 분명한 그림을 내놓는다. 이 세 그림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고 용서하고 준비시키고 능력을 주실 때 기회를 균등하게 주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첫 번째 그림은 창조의 그림이다.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남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띈다. 여성은 남성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창 2:23).

하나님이 첫 번째 여자를 만들어 첫 번째 남자에게 데려가신 직후, 남자는 그 시각 이후로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복 주시고, 땅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모두에게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 됨을 경험하고 함께 일하기(다스리기)를 기대하셨다. 이것이 첫 번째 그림, 곧 창조의 그림이다.



두 번째 그림이 있기 전에,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창세기 3장에는 유혹과 타락이 등장한다. 자유의지를 받은 인간은 끔찍한 결정을 내리고, 엄중한 결과가 뒤따른다. 하나님이 뱀과 여자와 남자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하지만 좋은 소식도 있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용서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 남녀 모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주도권을 발휘하셔서, 인간이 그 아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다시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다.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신 빛이다.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가족에 편입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요 1:12).

이 새로운 “그리스도의 몸”에서, 남자와 여자는 모두 서로를 섬길 수 있는 은사를 받는다. 결혼생활에서 남녀가 하나 되는 것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제, 그리스도의 몸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것도 그분의 계획이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은사를 나누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공동 이익을 위해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고전 12:7, 18, 새번역).

이런 새 질서가 여성에게 가져온 결과를 성경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누가복음 10장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가,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고 혼자 일하게 내버려둔다고 불평하자(전통적으로 손님 접대는 여성 몫이었다), 예수는 마르다에게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에서 여성이 사건의 핵심에 등장하는 경우는 이번 한 번만이 아니다. 예수가 죽었을 때 여성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무덤에 있었던 이들도 여성들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들은 기도하고, 자신의 재능과 은사로 그리스도의 몸을 후원했다. 나중에, 브리스길라 같은 여성은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두 번째 그림은 예수가 여성들을 용서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을 준비시키고, 여성들이 그분에게서 배워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것을 얼마든지 환영하셨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그림에서는 여성들이 천국에서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세 번째 그림은 영원한 그림이다.

천국에서 남성과 여성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3-5을 읽어보라.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기독교가 여성을 억압했는가? 그렇다. 그리스도가 여성을 억압했는가? 아니다.

사도 바울이 주장했던 것처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갈 3:28).

태초에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결혼생활에서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서로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할 것이다. 남녀가 나란히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분은 하나 됨을 바라신다.

 


린다 하르츠 럼프(Linda Hartz Rump)는 일리노이주 디어필트에 있는 트리티니신학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장성한 두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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