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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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동물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 웨슬리 스미스, 캐런 스왈로 프라이어, 벤 드브리스
  • 승인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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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영혼이 있어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웨슬리 스미스

"많은 사람의 바람이다"

데카르트가 동물은 쾌락도 고통도 느낄 수 없는 로봇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동물권익보호는 많은 진전을 이뤘다. 그리고 사실은 데카르트가 주장한 바의 정반대라는 것도 널리 알려졌다. 동물도 경험하고, 고통을 느끼고, 슬퍼하고, 사랑한다.

애완동물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각별하다. 우리는 동물을 집 안에 들일 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받아들인다. 애완동물을 사랑한 나머지 영원히 함께하기를 소망하는 사람도 있다. C. S.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홍성사 역간)에서 동물의 사후 운명에 대해 고찰하면서 적어도 애완동물이나 가축처럼 길들여진 동물은 인간과 맺은 관계를 통해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그리스도와 맺은 관계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애완동물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제에 관한 논란 때문에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보여주는 영원한 삶에 대한 이해가 왜곡될까봐 걱정된다. 자칫하면 천국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위축시키는 감상주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천국을 상상할 때는 사랑하는 개를 끌고 아름다운 숲속을 산책하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암시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애완동물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은 동물과 인간, 하나님의 본성을 먼저 성찰해봐야 하는 문제다. 동물의 삶도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기 때문이다. 시편 104편을 보면, 동물은 하나님에게서 먹이를 구하고 하나님이 호흡을 거두면 먼지로 돌아간다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 허락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복음 3:16에는 동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위반의 죄와 태만의 죄를 지을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다. 그 점이 인간을 동물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든다.

예를 들어보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우리 집 고양이가 예전에 새집을 하나 찾아내 공격한 적이 있다. 녀석은 다 죽어가는 어린 새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신나게 갖고 놀았다. 고양이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만약 내가 그런 짓을 했다면 당장 괴물이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당시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가 무엇인지 알았다. 묵직한 장화를 휘둘러 불쌍한 어린 새를 고양이에게서 뺏고 사체를 치웠다. 나는 옳은 일을 했지만, 대가를 치러야 했다. 놀잇감을 빼앗긴 데 앙심을 품은 고양이는 그날 하루 종일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조건이 없으며 영원하다. 우리가 하나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끊임없는 예배를 통해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을 닮는다면--그것이 천국에서 우리가 영원히 하게 될 일이라고 한다--애완동물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바랄 때 우리가 갈망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보다 많은 것도 충족될 것이다.

그렇다면 애완동물도 영혼이 있을까?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나님만이 아신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할 뿐이다.” 여러 성경구절을 자의적으로 끌어다 해석하거나 인용하는 대신, 하나님이 애완동물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큰 기쁨에 감사하자. 그리고 우리 동물 친구들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든, 틀림없이 완벽하고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믿자.

 


웨슬리 스미스Wesley Smith. 디스커버리연구소 인간예외론센터 선임연구원.「쥐, 돼지, 개, 사람은 같다: 동물권리보호운동에 인간이 치르는 비용」A Rat is a Pig is a Dog is a Boy: The Human Cost of the Animal Rights Movement의 저자.


 

캐런 스왈로 프라이어

"언약을 통해"

어리고 영지주의적이던 시절, 나는 애완동물은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확신했다. 물론 당시엔 내가 영지주의적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삶이란 단순히 자전거와 아이스크림과 책이 전부고, 또 그저 말을 좀 가려서 하고 때로 헛간 뒤에서 사촌과 담배 피우는 것이 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국은 하나님이랑 천사들과 함께 지내고, 노래하고, 증조할머니를 다시 뵙고,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국에 가려면 구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회심은커녕 교회에 가는 동물도 본 적이 없었다. 우리 가족은 메인주의 작은 시골 교회를 다녔는데, 예전에 한 농부가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자신이 타고 온 말을 교회 밖 쇠 난간에 매어놓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그래도 말이 교회로 들어와 구원받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동물도 구원하신다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홍수를 피할 수 있도록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노아의 방주로 불러들이셨다. 또 니느웨 주민뿐 아니라 많은 짐승까지 구원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를 주저한 요나를 질책하셨다. 물론 그런 구원은 회심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물 구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동물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때로는 언약 안에 포함시키기도 하신다. 하나님이 노아와 맺은 언약에는 “혈육 있는 모든 생물”(창6:18-19)이 포함됐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은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는다고 선언했다(호2:18).

하나님은 선택한 자와 언약을 맺을 때 특별한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언약의 증표로 삼으실 때가 많다. 아브라함, 사라, 이스라엘, 예수, 바울이 그랬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물의 이름을 지으라 명령하셨다.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은 하나님의 명명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가 생명의 호흡을 함께할 동물을 집안으로 들이기로 선택하고 이름을 지어줄 때, 우리도 그들과 일종의 언약 관계를 맺는 것일지 모른다. C. S. 루이스가 「천국과 지옥의 이혼」(홍성사 역간)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 우리가 동물의 이름을 지을 때 동물은 “그들 본질에 가까워지고” 우리의 구원이 “동물에게로 흘러간다.”

지금은 나도 천국에 대한 유치한 생각을 벗어버렸다. 성경이 말하는 영원은 하늘 꼭대기 구름 위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영원이란 지금 우리의 삶과 마찬가지로 영적이기도 하고 물질적이기도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천국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롬8:21) 새 하늘과 새 땅이다(벧후3:13). 이사야서에서 예언했듯이 그곳엔 동물도 있을 것이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어린 아기에게 끌리며”(사11:6) 말이다. 아마도 하나님은 내가 함께 살았던 애완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을 기억하고, 그레이시, 케이시, 머틀, 피터, 오스카, 그 외에도 다른 많은 동물들을 천국에 데려가주실 것이다.

 


캐런 스왈로 프라이어Karen Swallow Prior 리버티대학교 교수. CT의 여성 전문 블로그 Her. Meneutics 및 기타 출판물의 동물복지 관련 기고가


벤 드브리스

"나도 알고 싶다"

동물보호단체에서 몇 달 동안 일하면서도, 동물의 영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심지어 ‘동물복지에 대한 성경신학적 근거’라는 주제로 신학대학원 졸업 논문을 썼으면서도, 나는 동물의 영혼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뤄볼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종종 “저 무지개 다리 너머에서” 자신의 반려동물을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확신에 찬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상실과 거기서 비롯된 자연스런 갈망에 동정심을 느꼈다. 하지만 반려동물과 다시 만날 것이라는 소망은, 성경이 내 삶에서 갖는 의미를 고백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 바람과 타협적 영성에 근거한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을 잘 보살피라는 분명한 성경적 소명을 훼손하는 태도로 비쳐졌다.

그런데 2년쯤 전에 우리 집 고양이 부바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수술에서 예상치 못한 합병증을 얻어 갑자기 죽었다. 그 후로 나는 동물의 영혼이라는 문제를 훨씬 더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부바는 4년 전 한 입양기관에서 데려온 무척 사랑스러운 고양이였다. 그 이름만큼이나 사근사근하기 그지없었고, 갓 태어난 아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던 완벽한 반려동물이었다. 동물병원에서 아내와 함께 부바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우리는 늦은 밤 쏟아지는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부바를 묻었다.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며칠 동안 가슴이 무척 아팠다.…집안 어디를 둘러봐도 녀석이 보이는 듯하다.…나중에 부바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부바의 영혼을 거두셨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더 허전하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정말 너무나 알고 싶다.”

나는 슬픔 속에서 이따금 생각했다. 만약 하나님이 부바를 만들었다면, 우리 가족보다 부바를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한다면, 자신의 소중한 피조물에게 언젠가 다시 생명을 주고 싶으시지 않을까 하고.

인간과 관계를 맺었든 아니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창조하고 돌보신 다른 많은 피조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구원의 하나님은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해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알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떤 죽음도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일부가 아니었음을 안다. 그리고 동물도 분명히 더 이상 죽음과 눈물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은 그 동물들이 과연 우리가 알고 사랑했던 바로 그 동물들인가, 즉 이전에 창조됐던 동물과 동일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나도 정말 알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어쨌든 천국은 완벽한 곳일 것이라고 최선을 다해 믿으면서, 부디 부바를 다시 만날 수 있는 큰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CT

 


벤 드브리스Ben DeVries 기독교 동물보호단체 ‘참새 한 마리도’Not One Sparrow 설립자 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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