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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콜슨] 변화받은 사람닉슨의 해결사였던 찰스 콜슨, 어떻게 복음주의권의 주요 인사가 되었나
조너선 에이트컨  |  Jonathan Ait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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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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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1일 사망한 찰스 콜슨의 부고 기사를 작가열전에 소개합니다. 지금 저 세상에서는 찰스 W. 콜슨을 맞이하는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지도자로서 그가 이룩한 업적과 그의 인격에 나타난 큰 변화를 기리는 것이리라. 그의 인생역정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능력을 보여주는 빼어난 사례로 널리 알려져있다. 콜슨은 정치에 입문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그 덕분에 대통령 선임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지면서 처참한 실패자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 어두운 시절, 그는 워싱턴에서 리처드 닉슨 다음으로 비난을 많이 받은 인물이었다. 콜슨에게 쏟아진 혹평은 거침이 없었다. 예를 들면, 그가 브룩클린연구소를 표적으로 폭탄투척을 지시하려 했다는 것은 언론계의 신화다. 그러나 “닉슨의 해결사”를 자처하면서 많은 야비한 짓을 꾸민 것은 사실이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터졌을 때, 언론과 검사들은 콜슨을 주목했다. 그들은 그가 백악관 내부에서 도덕적으로 불미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 주범임을 알았다. 콜슨은 1972년에 “리처드 닉슨을 위해서라면 내 할머니라도 밟고 넘어가겠다”는 내용의 내부 메모가 밝혀지면서 처음으로 언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그 메모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생각을 가진 냉혹한 정치공작가 콜슨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가 워터게이트를 설계한 주요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나중에 그도 인정했다시피, 콜슨에게는 인생 초반부 41년 동안 도덕적 나침반이 없었다. 그 기간에 그는 가끔 자신을 “명목상 성공회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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