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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을 갖고 있지만 '4가지' 없는…「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양낙흥 | IVP | 260쪽
정지영  |  C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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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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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전, 청부론과 청빈론이라는 사뭇 다른 그리스도인의 재물관이 책으로 나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그에 기여했던 출판사에서 그간의 청부론/청빈론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새로운 원리를 제안할 책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자를 듣고는 갸우뚱하면서도)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그렇다고 냉소적으로 보내기에 인생은 얼마나 변화무쌍한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입 안 가득 고인 아쉬움을 네 가지로 뭉뚱그려 보았다.

오래된 것이 좋다지만 새로운 것(something new)이 없다. 부와 가난에 관한 저자의 주장은 새로울 게 없다. 재물과 경제에 관한 청교도들의 주옥같은 말씀들이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의 입장은 청교도적 개혁주의 경제관이다. 이는 맘몬을 섬기기 전이나 섬기고 있는 중에도 한국 교회가 여전히 붙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모두가 동경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고전(古典) 같은, 모두가 믿지만 누구도 따르지 않는, 가장 성경적이지만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 재물관이다. 청교도적 개혁주의 재물관이 한국 교회를 맘몬의 예배자로 만든 원흉은 아니며,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재물관이라도 제대로 교육되고 전수되었더라면 한국 교회가 분명 지금과 같이 천박한 자본주의의 하수인 노릇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실패를 경험한 청교도적 개혁주의 프레임을 한국 교회에 적용하기 위해 먼저 작업해야 할 일들을 언급하지 않은 채 새로운 프레임처럼 제시하는 것은 분명 착오다.

많이 읽으면 좋겠지만 핵심 독자가 모호하다. “이 책은 평신도부터 목회자, 남녀노소 모두에게 매우 유익한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직분, 나이, 성별이라는 장벽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내용이 탁월한 책임을 강조해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추천 글의 전형이다. 이런 글이 잘 알려진 이의 이름과 함께 등장하면 독자들은 한번쯤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내 독서와 출판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이런 추천은 대개 과장이거나 주례사 추천일 확률이 높으며, 혹 진심이라 하더라도 독자 확산을 지나치게 염두에 둠으로 오히려 그 목적을 그르치는 대표적인 추천 글이다. 이런 욕심을 내는 것은 누구보다 저자나 출판사다. 그런  의도로 특정 독자를 상정하지 않아서인지 저자가 처음으로 말을 거는 독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읽는 내내 목회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난 논의를 이제야 다시 꺼낸 것도 그렇고, 대중적 제목과 카피 등에 비해 내용, 구성, 접근은 매우 교과서적이어서 주제의 관심자들이나 전문적으로 다뤄야 할 이들이 아니라면 그리 매력을 느끼지 못할 듯하다.

교회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세상이 없다. 특정 프레임을 넘어 균형 잡히고 좀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리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건네려다보니 이 책이 가장 필요한 핵심 독자가 희미할 뿐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와 조언 또한 매우 희박해졌다. 십일조로 대표되는 교회에서의 재물에 관한 문제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이며, 따라서 성경적 재물관이 작동해야 할 주된 영역은 교회보다는 세상이라는 차원에서 이는 쉽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저자의 삶의 현장이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여서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황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빈약함은 (일터, 일중독 사회, 한국 목회자의 물욕 추구의 역사적 배경 등을 다룬 9, 10, 11장의 깨알 같은 통찰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크다.

김영봉은 있는데 김동호는 없다?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앞서 말했듯이 청부론/청빈론 프레임을 넘어서는 대안으로 무엇을 보여줄지였다. 새로운 대안은 기존 주장의 건설적인 비판 위에 가능하다. 따라서 기존 프레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무엇인지는 책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두 프레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청부론보다는 상대적으로 청빈론에 집중해있다(9.5쪽과 13.5쪽이라는 분량의 차이로도 드러난다). 저자는 청부론의 신학적 위험을 번영 복음에, 청빈론의 신학적 위험을 금욕주의에 두고 성경적으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려는 균형감을 보여주지만, 신학적으로 아르미니우스주의인 김영봉 목사보다는 같은 칼빈주의에 맞닿아서인지 청부론에 비교적 우호적(?)이다. 사실 저자가 제안하는 자족, 향유, 나눔이라는 원리는 김동호식 청부론에 무척 기묘한 형태로 녹아있기에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부론/청빈론 비판은 허수아비 치기에 가까울 정도로 두 목사의 목회적 주장을 너무 자구적으로 해석하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준다. 김동호 목사, 김영봉 목사 모두 저자의 분석에 동의할지 의문스럽다. 두 분 중 한 분이 본서를 읽고 서평 한다면 흥미로울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목회적 서신을 상황과 행간을 읽어내려 하기보다는 신학자적으로 접근해 답답했다. 개혁주의 교회사학자라는 자신의 전공에 충실하게 오늘날 한국 교회에 칼빈과 청교도들의 재물에 관한 빛나는 지혜를 전해주려는 저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깔끔한 표지와 명쾌한 제목에 비해 본문 편집이 못내 부담스럽고 위와 같은 약점(어떤 이에게는 강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들이 있지만, 성경적 재물관을 추구하려는 이들과 성경적 가르침을 전하고자 하는 목회자들에게 ‘균형 잡힌’ 좋은 안내서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CTK

정지영 IVP 편집2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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