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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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체험기
  • 대니얼 해럴 | Daniel Harrell
  • 승인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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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 레위기대로 살아보고 얻은 값진 교훈

위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짐승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죄를 적절히(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다루는 일에 주로 할애되어 있는 난해한 책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피부 전염병과 버짐을 치료하기 위한 황당한 처치법과 옷감과 씨앗 등을 뒤섞지 말라거나, 계모나 자매나 조카와는 동침하지 말라는 여타의 계명들―부적절하거나 뻔한 상식처럼 보이는 계명들―을 뒤섞어 놓은 책을 연상할 것이다.

따라서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고, 설교의 주제가 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문 이 레위기는 일 년 성경 통독이 진행되어 나가다 끊어지는 무덤이 된다. 회의주의자들은 레위기를 동성애 혐오주의자들의 무기 창고나 동물보호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으로나 알고 있다. 많은 유대인들은 레위기를 어색하고 흘러간 옛날이야기로 간주한다. 레위기를 꾸준히 읽는다는 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한 일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위기를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위기를 성경의 다른 말씀들 대하듯 진지하게 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게 이 질문은 그저 수사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한다면, 어떤 부분만 경청하겠다고 선별하는 호사를 누려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설교를 해오면서 레위기는 생략해 버렸던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한 유대인 친구로부터 레위기가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 레위기는 엄수파 유대인 자녀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첫 번째 책들에 속한다.

레위기는 성경의 다른 어떤 책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인용을 많이 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레위기를 먼저 이해하지 않는다면 신약 성경과 그 어휘(희생 제물, 속죄, 거룩함, 부정함, 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두 번째 큰 계명도 레위기에서 나온 것이다(19:18). 예수님은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다(눅 10:28).

그래서 레위기 설교 시리즈를 시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레위기를 곧장 설교하기보다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출애굽을 시도’하는 부담을 안기보다는) 레위기를 맨 처음 들었던 옛날 사람들이 레위기를 배웠던 방식 그대로, 곧 레위기를 삶을 통해 배우는 방식으로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말하자면, 리얼리티 설교 시리즈를 실행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이 생각은 제이콥스(A. J. Jacobs)의 책 「미친 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세종서적 역간)에서 힌트를 얻었다.

자칭 불가지론자인 제이콥스는 가능한 한 일 년 내내 문자 그대로 성경의 모든 요구 사항을 실천하면서 살기로 결심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제이콥스와는 달리 내가 택한 접근 방식은 불가지론적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레위기의 가르침들이 아직도 유용하다고 전적으로 확실히 믿었고, 레위기의 말씀들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제이콥스와 달리 나는 이 일을 혼자서만 하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레위기는 몇몇 구별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부여된 말씀이었다. 그래서 레위기가 명하는 대부분의 내용은 공동체 가운데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함께 레위기식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필요했다.
 


해석하기

감언이설로 구워삶고, 어떤 경우는 목사의 권위로 압력을 가해서, 나는 우리 교인들 가운데 21명을 한 달 동안 레위기대로 살아가는 ‘기니 피그’(guinea pigs, 실험용이나 애완용의 호주산 작은 돼지 종류/편주)가 되도록 모집하는 데 성공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우리의 의도가 아니었다. 레위기식으로 살아가려는 우리의 시도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로서 그러한 형태의 삶을 시도해 본다는 의미였다.

구약에서 신경 써야 할 것과 신경 꺼도 될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관습적으로 신약 성경을 기준
(또는 관점)으로 구분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더 이상의 어떠한 동물 제사도 필요 없게 만드셨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특별한 제사장의 필요성을 폐지시켰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릴 때 우리는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종종 율법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록됐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이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게 율법을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약 성경을 들여다보면, 우리 마음대로 무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몇몇 계명들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개종자들은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지만 여전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행 15:29)는 명령을 듣는다.

음행에 대한 금지는 물론 친숙하지만, 날 것에 가깝게 피가 스며 나오도록 살짝 구운 스테이크에 대한 금지는 어떤가? 그리스도의 율법의 성취는 율법 준수에 대한 전적인 면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해석의 문제가 우리 앞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참여자들에게 각자 나름대로 해석 방법을 찾도록 맡겨 두었다. 그 결과 어떤 참여자는 레위기 가운데서 신약 성경이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는 계명들만을 준수하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어떤 참여자는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 신약 성경이 구체적으로 무효화하고 있지 않은 것이면 모든 것을 준수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참여자는 주석을 참조해서 결정을 내렸다. 또 어떤 참여자는 유대인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한 여성 참여자는 아동용 레위기 역본을 따랐다. 처음부터 우리는 어떤 특정한 해석을 배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참여자로 하여금 자유롭게 무시할 것은 무시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시도해 보도록 했다.

다음 차례는 그 말씀들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었다. 레위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대로 살아야 했다. 그렇게 살아 봐야 레위기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깨닫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지원자들 중에는 코셔(kosher, 유대교 음식 법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정결한 음식이라 허용된 음식을 일컫는 말로 미국 등지에는 가게에 코셔 코너가 따로 있다/편주)를 먹고 면바지를 입었다. (추운 1월이었지만 똑같이 했다.) 거의 모두 나름대로 안식일을 준수했다. 면도를 하지 않는 남자들도 있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기 위해서 아파트 안에 장막(성막)을 세운 사람도 있었다. 한 여성은 매일 아침 옷을 입는 일이 갑자기 매우 느리게 의식에 따라 진행되는 절차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 여성은 “헤픈 여자들은 거룩하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현대의 관습 중에 레위기와 호응하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려 애를 썼다. 예를 들어, 고대 근동에서는 수염이 말끔하게 면도한 이교도들과 구별시켜주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커다란 십자가 목걸이가 그와 비슷한 경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람도 있었다.

한 참여자는 농장에서 인도주의적으로 마련된 음식만을 구입함으로써 음식 법을 지켰다. 번제가 지금은 우리가 잘 하고 있지 않은 방식으로 죄를 인식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한 달 동안 자기가 지은 죄를 다 적고 하나님의 용서의 표시로서 그 죄 목록을 불태우는 의식을 행한 참가자도 있었다.

다른 교인들이 우리의 실험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레위기를 그저 설교로만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속에서 실천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참여자들은 인터넷 사이트 페이스북(Facebook)에 각자 계정을 열고 ‘레위기대로 살아가기’(Living Leviticus)라는 페이스북 그룹(일종의 카페)을 만들었다. 참가자들은 여기에 일기와 사진, 코멘트, 비디오 같은 것들을 올려놓았다. 매일 벌어지는 온라인 활동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순종의 공동체, 가상 공동체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페이스북이 친교 중심의 네트워크 사이트여서 거의 200명이 ‘레위기대로 살아가기’ 그룹에 가입했고, 전 세계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게시물을 읽어보고 코멘트를 했다. 한 무리의 ‘메시아 유대인들’(Messianic Jews,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다른 유대인들을 전도하고자 하는 신앙 공동체/편주)은 우리 사이트에 들어와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토라를 지키는 방법에 관한 충고를 해 주었다.

한 달 동안 얻은 많은 교훈 중에서 가장 으뜸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나 당연시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었다. 사실 거룩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형편없는 죄인인지 인정하는 일을 간단히 생략해 버리고, 우리가 받을 은혜는 다 받아 챙긴 다음에 우리가 살아가려고 했던 대로 계속해서 생활해 나간다.

한 참여자가 말했듯이, “나는 내가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데 얼마나 선수인지를 전에는 결코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레위기를 읽고 자신이 얼마나 게으른 그리스도인이었는지를 알고 비참함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이는 레위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레위기는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단지 보여주기 위해서 성경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레위기가 성경 속에 있는 이유는 은혜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기 이전에도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택함을 받은 백성이었다. 율법의 목적은 결코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율법의 목적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원 받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미 은혜가 있었다 할지라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던 한 관찰자는 이런 말을 썼다. “레위기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이 이번 달에 나를 인도하신 많은 상황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건 불공평해요.

어째서 하나님은 내가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드십니까? 저에게 불친절 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일을 훨씬 더 쉽게 해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 언제나 죄가 문밖에서 들어오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하나님과 싸움을 벌일 때, 하나님과 나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져서 나의 평안을 빼앗아가 버리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 또한 커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기

이 실험은 체험 학습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거듭된 연구는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보다는 체험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높은 기억 유지와 적용을 보장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몇몇 남성 참여자들의 경우는 단순히 수염을 깎지 않는 것만으로도 일상생활 속에서의 믿음에 대해 통합적으로 생각하도록 자극을 주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들은 일상생활과 믿음을 별개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수염은 또한 믿음에 대해서는 결코 관심조차 없던 친구들에게 믿음에 대해 질문하도록 만들었다.

한 여성 참여자 소그룹은 안식일을 준수하면서 너무 깊은 감동을 받아 생활과 생각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게 되었고, 함께 우정을 나눌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속해서 하겠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음식과 의복에 대한 사려 깊은 배려가 영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음을 발견한 참여자들도 있었다.

참여자들 모두 단순히 ‘성경이 말하는 바를 그대로 행하는’ 실천만으로도 다양한 차원에서 그보다 더 모호한 몇몇 법규가 애초에 성경 안에 들어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통찰을 갖게 되는 경이로운 체험을 했다.

참여자들에게 체험 학습이 중요했듯이, 그 실험을 바라보고 관찰하는 것 역시 다른 교인들과 우리 교회 외부의 사람들에게 매우 귀중한 경험이 됨을 증명했다. 친교 중심의 네트워크 사이트에서 전형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인터넷의 작은 코너 하나를 ‘구속하고 있다’
(redeeming)는 느낌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매일 매일 레위기의 말씀에 따라 생활해 나가는 능력은 매주 예배와 설교에서 이루어질 내용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대시켜 주었다는 사실이다. ‘레위기대로 생활하기 달’은 예배 동안 자신의 체험에 대한 언어상의, 그리고 다중적인 ‘증거들’을 제공해 주었으며, 예배 후에 더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부반을 개설하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레위기에 대해 신나게 떠들면서 이야기하고 배움을 나누었다.

레위기 체험이 참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끼친 변화의 힘은 기대 이상의 것이었으며, 아마도 가장 보람찬 측면이었을 것이다. 한 참여자는 이렇게 썼다. “레위기 체험 한 달 동안 나는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30일 18시간 동안 나는 구시렁대며 불평했다. … 그 달 초에 나는 희생 제사 대목을 읽어나갔는데, 예수님 이후의 시대인 오늘날에 그 희생 제사에 해당하는 것이 고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해는 내가 가톨릭신자 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고해라는 것은 결코 내 생활의 일부였던 적이 없었다. 나는 고해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억지로 하게 만드는 그런 방식을 싫어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싫어하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성공회 교회를 찾아가 친절한 고해 신부를 정하고 깊이 심호흡을 한 번 한 뒤에 죄를 고백하는 일을 감행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거대한 삶의 이벤트였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내 생활에 쌓여 있던 쓰레기와 오물 덩어리들을 다 찾아내고 목록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씻겨 내려가 버렸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갑자기 내가 진짜 좋은 처지에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는 나의 삶을 쓰레기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기도했다. ‘좋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환상적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머물고 싶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요?’ 은혜의 빛 가운데서 레위기 전체를 다시금 읽어보니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사순절 기간 동안 교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 속죄 일’
(Day of Atonement, 레 16장)을 실시하기로 맘먹었다. 물론 아사셀 양은 없이 말이다. 공적인 고해에 친숙하지 않은 개신교인들에게도 그러한 실천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많은 사람들이 큰 기쁨을 갖고, 또 더욱 더 하나님 안에 터전을 잡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혜는 바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이다. 나는 어째서 우리가 그토록 순종하는 것을 힘들고 부담스러워 하는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순종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아파트 안에 장막
(성막)을 세웠던 참여자는 한 달이 지나 장막을 해체한 경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제 내가 그 장막을 바라볼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흉물스런 작품처럼, 또는 룸메이트의 보기 흉한 등불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매일 일깨우기 위해 세워놓았던 이 형편없는 장막―내가 무시하려고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그것―이 마치 다른 가구들처럼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오늘 나는 소파에 앉아 그 장막이 사라졌음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성령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심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뭔가가 빠졌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레위기는 나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거룩하심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일깨워 주었다. 레위기는 우리가 더 높은 부르심을 위해서 지음 받았으며 택함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가 ‘없는 자’가 아니라 ‘가진 자’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예배에 끝물을 가지고 갈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레 26:11-12). 여러분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레위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련다. 아멘, 아멘.” CT

 


CT 2008:9 "The 30-Day Leviticus Challenge"
CTK 2009:1 "레위기 체험기"

[게시:200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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