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열린 마당
목사의 설교가 더 나아지려면?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더 효과적인 방법들
마크 래버튼, 케이트 브루스, 키스 드루어리  |  C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2.26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홀로 지낼 시간을 주라

   

로 설교는 허공을 치며 겉돌기도 한다. 설교자가 자신이 선포하는 하나님, 자신이 설교하는 성경본문, 설교를 듣고 있는 교인들을 잘 모를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설교가 흔들리는 데는, 이 세 가지보다는 불분명하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설교자가 자기 자신을 모를 때다. 하나님을 모르고는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으며 자신을 재고해보지 않고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한 칼빈이 옳다면, 설교자와 그의 설교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자기 인식이 있는지 없는지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자라는 근본적 확신을 살필 때 설교자가 이 사실과 스스로를 어떻게 연관시키는지를 생각해보자. 목사 역시 구원자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며 설교하는가, 또한 그렇게 사는가? 설교자 역시 죄를 짓고, 실수하며, 때로 부적절하며, 끊임없이 속으로나 겉으로나 분투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잊는다면, 그의 설교는 병들게 된다.

목사는 자신의 처지가 설교 듣는 교인과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설교자가 이 사실을 마음속 깊이 새기지 못하면, 설교는 금방 교만해지고 멀어지고 가식적인 어조로 가득 차면서 교인들과의 동일시는 물 건너가게 된다. 설교자의 불완전이 아니라 부정직이 문제가 되면 설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욕구에도 정직하지 못한 설교자가 우리의 욕구에 은혜를 베풀리라고는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목사는 자신을 붙든 구원자를 인식하면서 설교하고 살아가는가? 목사의 이런 자기 인식은 구원자가 필요한 자기를 인정하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그 구원자의 사랑이 주는 자유와 기쁨과 희망을 알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목사는 자신의 온갖 타락에도 불구하고 용서받고 선택받고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런 인식을 내면화하는 데 실패한 목사는 설교로 자신의 가치만을 드러내려 하고, 자신의 설교와 인격과 능력으로 구원을 제시하려 시도하게 된다. 그 순간 목사가 경험한 하나님과 교인들에게 경험하라고 소개하는 하나님 사이에 위선적 간극이 발생한다. 그런 설교자는 교인의 호의와 인정, 심지어 과찬까지 필요로 하는데, 설교에서 선포한 내용을 그보다 더 빨리 망가뜨리는 것도 없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을 제공한다. 설교자는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존재를 깨달은 후에야 설교단에 오를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목사들은 점점 더 예수와 닮아가겠지만, 사실 우리는 설교를 듣고 있는 교인들과 훨씬 더 공통점이 많은 존재들이다.

이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교인들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순간, 목사는 자신의 교인은 물론이고 자신의 구원자와도 함께 서게 될 것이다. 그럴 때에만 설교자와 설교 자체가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하게 되고 설교의 영향력도 가장 강력해질 것이다.

마크 래버튼Mark Labberton, 풀러신학대학교 로이드 존 오길비 설교연구소 소장
 


준비할 시간을 주라

젠가 설교에 관해 이런 말을 들었다. “평범한 사람은 설교를 듣느니 차라리 두 눈을 바늘로 찌르고 싶어 한다.” 그럴 듯한 의견이지만, 믿지는 않는다.

물론 한없이 길고 지루한데다 성경적이지도 않은 횡설수설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사랑이 넘치는 위로든 따끔한 충고든, 주님의 말씀을 갈망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가 근무하고 있는 더럼대학교의 부속 연구소 코덱(CODEC)에서 설교에 관한 소규모 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소규모’란 교회 16곳과 응답자 193명을 의미하므로, 이 연구 결과를 과도하게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193명이 무시할 만한 숫자는 아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97%가 ‘자주’ 혹은 ‘이따금’ 설교를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이다. 가장 그럴 듯한 내 짐작으로는 과거에 어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것이다.

설교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응답자들은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다. 많은 사람들(62%)이 설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고 대답했다. 하나님이 설교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주시는 것이다. 연구 결과, 설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응답자의 73%는 설교를 듣고 나서 성경을 읽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설교는 사람들이 성경을 일상생활과 결부시키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49%가 ‘자주’, 47%가 ‘이따금’ 이런 도움을 받는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된 모든 종파(성공회, 침례교, 가톨릭, 감리교, 무종파 등)에서 성경적 설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설교에서 격려와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고 싶어 했다.

또한 연구 결과는 우리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해주었다. 설교는 동시대의 이슈, 즉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건들과 강하게 연관돼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는 여전히 목양적인 동시에 예언적 직무다. 위안과 용기를 주고 양육한다는 의미에서 목양적이며, 월터 브루그만이 표현한대로 “대안적 세계에 대한 시적 해석”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예언적이다. 그 시적 해석은 성경에서 도출해 우리 삶의 맥락에 적용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훌륭한 설교는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대안적 세계를 완성하는 데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뒤흔든다. 그런 설교는 용감하고 활기차고 강력하다.

설교가 교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목사들은 설교 준비시간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사람들은 설교가 줄 수 있는 것에 깊이 목말라 있다. 목사들은 아무렇게나 대충 만든 샌드위치 하나로 굶주린 사람의 배를 채워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찾는 것은 간단한 간식이 아니라 잘 차려낸 정찬이다. 교인들은 목사가 매주 그런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야 한다.

지친 설교자는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여유가 그들에게 반가운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동시에 설교를 통해 여전히 자신의 일을 성취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케이트 브루스Kate Bruce 영국 더럼대학교 교목 겸 설교학 연구교수
 


3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라


회는 변하지 않는 일을 한결같이 수행하지만, 신기술은 이를 새로운 방법으로 이룰 수 있게 돕는다. 인쇄 기술이 등장하자 교회는 재빨리 성경과 교육 과정을 인쇄해 교육 사역에 도입했다. 설교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음향 설비를 교회에 설치했다.

최근 등장한 기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신기술을 흡수하고 사용한다. 물론 이따금 무분별하게 수용할 때도 있지만.

핸드 헬드 카메라와 저렴한 프로젝션 기술은 모든 목사를 영화 제작자로 만들고 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그런 기술을 교인 간증에도 활용한다. 설교 도중 적당한 시점에 목사가 동영상을 재생하면, 교인이 직접 간증하는 영상이 나와 목사의 가르침에 현실성을 더한다.

이메일은 교인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고 설교 다음 단계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다. 최근 우리 교회 목사는 설교 도중 교인들에게 차세대 교인들을 적극적으로 멘토링해서 ‘세대교체’를 이뤄달라고 독려했다. 몇 시간 후 멘토링에 자원할 사람을 모으는 이메일이 교인들에게 발송되었다. 온라인 버전의 ‘제단 초청’(altar call)인 셈이다.

설교문 작성에 평신도가 참여하기도 한다.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설교 주제와 관련 성경 구절을 올려놓고 신도들의 질문과 아이디어, 토론, 개인적 일화 등을 제공받아 주일 예배에 활용한다.
예전에는 설교 테이프를 복사해 배포하는 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예배를 마치고 채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설교가 온라인에 올라온다.

주문형 도서 출판은 모든 목사에게 출판의 기회를 주고 있다. 컴퓨터 한 대와 인터넷만 있으면 어떤 목사든 자신만의 멋진 설교집을 출판해 일주일 안에 전 세계 어느 곳에나 배포할 수 있다.

일부 과감한 목사들은 설교 도중에 전자 기기를 이용해 교인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인디애나주 앤더슨에 있는 매디슨파크하나님의교회에서는 목사가 설교를 하는 동안 교인들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설교단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 진행 중인 설교에 대한 교인들의 질문에 재빨리 답변을 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축복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저주가 될 수 있다. 어떤 교인들은 맹목적으로 최신 유행만 따르다 기술이 하나의 전달 시스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빈약한 내용을 기술로 채울 수는 없다. 처음에는 요란한 기술에 마음을 뺏겼던 교회들도 일부 기술들이 실제로 활용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이고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평신도가 설교문 작성에 참여하는 것은 멋진 아이디어지만, 설교자는 논쟁이 가열되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 설교는 결코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 표 던지듯 그 가치가 결정되어선 안 된다.

우리 신앙에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언어로 축소될 수 없는 의례들이 있다. 적어도 나는 온라인 성만찬이나 인터넷 세례로 만족할 수 없다. 기술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매체 자체가 메시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CT

키스 드루어리Keith Drury, 인디애나웨슬리언대학교 목회학 교수, 전직 목사, 목회 사역 관련 저술가

CT 2010:4 "Better Ways to Deliver God's Word" 
CTK 2012:8 "어떻게 해야 목사의 설교가 더 나아질까"

[수정:2015.02.27] 
[게시:2012.07.25] 

마크 래버튼, 케이트 브루스, 키스 드루어리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