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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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지켜야 한다
  • 존 오트버그 John Ortberg
  • 승인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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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평판 유지가 아니라 사랑의 연합을 위해 필요하다

 

   

권징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현실은 어쩌면 가장 단순할지 모른다. 누군가는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죄는 큰 교회나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아마 1인당 죄의 발생률은 교인 규모와 상관없이 비슷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사실에 슬퍼해야 마땅하지만, 놀랄 필요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던져야 할 정당한 질문은 죄가 만약 발생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죄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이다.

두 번째 현실도 교회 크기와 관계없이 비슷하다. 진실하고 성경적인 공동체에서는 죄를 무시하지 않고 맞서 다스린다.

내가 보기에는, 교회 밖 사람들보다 교회 내부 사람들이 죄를 덮기에 더 급급한 것 같다. 작은 교회보다 큰 교회일수록 이런 유혹에 더 잘 빠진다. 사람들이 ‘큰’ 교회와 ‘복 받은’ 교회를 잘 혼동하고, 큰 교회일수록 영적으로 더 성숙하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또 유명 교회나 단체에서 발생한 죄가 덮어지면 복음의 평판이 유지되리라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도자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을 그냥 덮지 않는다. 아담과 하와의 죄에서부터 노아의 만취, 아브라함의 거짓말, 다윗의 불륜과 살인에 이르기까지, 성경 저자들은 노골적이다 싶을 만큼 정직하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한다”(새번역)고 말한다. 우리는 자백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교회가 자발적으로 잘못을 실토하고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뢰감을 갖는다. 그러니 유명할수록 이런 책임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교정과 권징은 모든 신자에게 필요하지만, 큰 교회에서는 특히 교회 지도자들에게 관심을 쏟는다. 이들의 독특한 잠재력이 교회의 영적 건강과 증언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깨진 신뢰, 뼈아픈 회복

정직하게 죄를 직면하는 것은 평판을 관리하는 것 그 이상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

언뜻 보면 이 구절은, 특히 대형 교회는 지키기 어려운 말씀 같다. 모든 예배에서 주중에 성도들이 지은 죄를 일일이 지적하다보면, 예배 형식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권징만 하다 예배가 끝난다.

하지만 바울의 말은 장로에 대한 고발을 어떻게 다룰지를 이야기하는 맥락에 등장한다. 그 원칙은 이렇다. 신뢰를 무너뜨린 지도자들은 적절한 공개 질의응답이 있은 후라야 원래 자리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바로잡는 일에 고통이 따른다. 어느 대형 교회가 생각난다. 그 교회의 유력한 목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성관계 루머가 돌았다. 교회 장로들은 진실을 조사하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목사는 더 이상은 진실을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기립박수를 받았고, 사임은 부당한 대우라는 소문이 돌았다. 장로들은 자신들을 포함해서, 목사와 교회를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적절한 설명이 뒤따랐고, 전임목사는 교단의 감독 하에 회개와 화해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해서 진정한 회복이 가능했다.

대원칙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죄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공동체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내에게 죄를 지었다면 아내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 내가 지은 죄가 내가 인도하는 소그룹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 사람들에게도 죄를 고백해야 한다.

오해가 없기 바란다. 가르치거나 이끄는 사람들의 경우, 어떤 사람(특히, 누군가의 배우자)의 신뢰를 깨뜨렸다는 것은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의 신뢰를 깨뜨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그런 때는 우리가 이끌고 가르치는 모든 사람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 나는 윌로우크릭교회에서 섬기면서 이 원칙을 몸소 실천한 경우를 두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 나누는 것은 적절치 않겠지만, 나는 회복 과정이 소그룹에서 교역자들, 전 교인에게로 확장되는 모험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 말은,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들이 모두 예전의 자리로 복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전문가들은 사전에 계획한 타락이 아닌 경우(다윗)와 회개와 화해 과정을 거치면서도 복위는 되지 않는 경우(엘리의 아들들)를 구분하여, 방랑자와 포식자라고 명명한다.

권징은 몸 전체의 영적 건강을 위한 것이다. 대형 교회 교인들은 권징을 단순히 추문을 피하는 수준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절한 관리의 부재는 진정한 사랑이 아니며, 죄를 낳는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레 19:17). 권징은 단순히 교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권징은 사랑의 연합을 강화한다.

권징을 표현하는 다른 단어로 상호 책임이 있다. 상호 책임의 최상의 형태는 누군가가 당신의 소재를 늘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방법 같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때 목회자가 아무에게도 소재를 알리지 않고 교회 밖에서 시간을 오래 보내는 것은 문제 발생을 알리는 초기의 위험 신호 중 하나다.

큰 교회들은 자신들이 기업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따라서 권징은 교회 사명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그 토대라고 할 수 있다. 본회퍼의 말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신앙 공동체 내의 권징은 서로 친한 친구들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책망하고 나무라는 말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CT

존 오트버그(John Ortberg)는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장로교회 목사로, 「생각보다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평범 이상의 삶」(이상 사랑플러스 역간)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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