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다시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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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다시 찾았습니다
  • 캐롤린 아렌즈
  • 승인 2019.0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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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어긴 이웃을 다시 사랑하기까지

 

 

WRESTLING WITH ANGELS 
캐롤린 아렌즈의 천사와 씨름하기
 

리는 브리티시 콜롬비아의 써리에 있는 한 동네에서 살았다. 우리는 그곳을 “모든 막다른 골목의 근원지”라고 불렀다. 집들 사이의 공간은 자동차를 열두 대쯤 세우거나 활기 넘치는 축구 경기를 해도 될 만큼 넓었다. 우리 딸은 그 막다른 골목에서 걸음마를 배웠고, 우리 아들은 거기 있는 풀사이즈 농구 골대에서 처음으로 득점을 했다. (하긴, 그때 아이의 키는 자기 아빠의 어깨에 오는 정도였다.) 매일 밤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하키 스틱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이 완벽한 이웃들을 둔 데 대해 자축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사를 온 다음해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몇몇 젊은 가족들이 이사를 갔고, 새로운 이웃들과는 쉽게 사귀지 못했다.

어떤 주민들이 집에서 마리화나를 기르고 있다는 고약한 소문이 들려왔다. ‘약물 재배’는 지역사회에 만연한 문제였지만, 남편과 나는 우리가 범죄자와 담장을 같이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오른쪽 집에 사는 다정한 이웃 ‘밴’은 최근에 캐나다에 도착했는데, 영어를 배우느라 열심이었다. 왼쪽 이웃은 조금 더 나이가 든 부부로 쉴새없이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었고, 말수가 적기는 했지만 상냥했다.

어느 날 오후 아이들과 나는 바깥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걸 감지했다. 우리는 양쪽 이웃들이 경찰에 체포되는 것과 양쪽 집에서 끄집어낸 식물과 장비들이 트럭에 실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여기가 성공적인 마약 단속 현장임을 알리는 표지가 보란 듯이 붙었다. 바로 우리 집 진입로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우리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는 경찰관 한 명을 잡아챘다. 네 살된 우리 아들이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는 내게로 달려왔다. “이웃들이 반죽을 던져서(throwing dough) 잡혀갔데요.” 아이가 혼란스럽고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죽을 던지면 왜 안 되는 거예요?” 나는 그 경찰관이 “마약 재배”(growing dope)라고 말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 주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그날 일어난 사건에 대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고심할수록 더 화가 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떻게 감히 우리 이웃에 쳐들어와 우리 아이들을 위험한 범죄에 노출시킬 수 있단 말인가?

다음날 ‘써리 사랑’이라는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도 나는 여전히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지역 목회자들이 지역사회와 접촉하여 영향을 미치기 위해 초교파 봉사 활동을 조직했고, 나는 이런 종류의 활동 지원을 좋아했다. 하지만 몇몇 친구들이 마약 재배자들은 금방 풀려날 뿐 아니라 처벌도 미미하다고 말해주었을 때 나는 남몰래 화를 삭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았던 막다른 골목 한복판에 콜라 캔을 들고 선 밴이 내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30분이 지나고 마크가 집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속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그가 풀려나다니 믿을 수가 없네.” 나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게.” 마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법이 약한 거지. 하지만…”

“하지만 뭐요?” 내가 의심쩍은 투로 물었다.

“밴도 괴로워하고 있어요.” 마크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막다른 골목에서 잡초들을 뽑아서 저 콜라 캔에 집어넣겠다고 저기 있는 거예요. 자기가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거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하던걸.”

마크가 밴의 이야기―그의 개인적인 비극, 자기가 저지른 나쁜 선택들, 범죄 먹이 사슬의 상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착취당한 등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때 갑작스런 깨달음이 왔다. 밴은 내 이웃이었다.
물론 나는 그가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의미에서 내 이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만일 내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그 법을 명확히 정의하려는 변호사였더라면, 예수님은 내게 써리에 사는 마리화나 재배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을 것이라는 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입고 있는 새 ‘써리 사랑’ 티셔츠를 내려다보면서 찰스 슐츠(Charles Schultz, 피너츠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만화가/편주)의 반어적인 말이 생각나서 움찔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한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나는 이웃 사랑을 추상적으로 알았고, 심지어는 설교도 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핵심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 이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거리에서 마약을 생산하는 범죄자보다는 아프리카에 사는 죄 없는 희생자들을 떠올렸다.

밴은 주변 사람들을 보는 우리의 방식을 변화시켰다. 우리가 결국 그에게 보여주기로 결심한 호의가 그 절반만큼이라도 그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한다. BMW를 타며 쫓기 듯 살아가는 전문직 종사자, 시끄럽게 짖어대는 개를 기르는 은퇴한 노인, 너무나 수줍어서 눈도 맞추지 못하는 새로운 이민자,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다. 그들을 만드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

C. S. 루이스는 “평범한 사람은 없다. 당신이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그저 죽게 마련인 미천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이 막다른 골목에는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고, 모두들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사람이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랑받아야 할 이웃이다. 우리 옆집에 사는 불멸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CT

캐롤린 아렌즈 가수/작곡가로서 아홉 장의 앨범을 발표한 CCM 사역자다. 2008년부터 CT 칼럼 ‘천사와 씨름하기’에 기고하고 있으며, 같은 제목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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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을 다시 찾았습니다.
샬롬, 우리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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