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조차 어둠이 아니다
상태바
어둠조차 어둠이 아니다
  • 마크 뷰캐넌 | Mark Buchanan
  • 승인 2019.0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를 잃고 싸늘한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사실
   

몇 해 전 「영혼의 사계절Spiritual Rhythm이라는 책을 썼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것인데, 나는 뒤늦게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내가 한 말은 아니다. 솔로몬, 아니면 누가 됐든 전도서를 지은 사람이 한 말이다. 책을 쓰면서 나는 그 개념을 세상물정 다 겪은 탕자의 단순한 감정 토로쯤으로 간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출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내가 암울하고 싸늘한 겨울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내 세상은 고통스럽고 외롭게 변해버렸다.

모든 것은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캐럴은 아내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내가 신뢰하는 동료였다. 캐럴은 남다른 은사를 갖춘 목회자였다. 그가 하나님과 얼마나 깊이 있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도 하나님과 그렇게 관계 맺기를 바랐다. 캐럴의 기도는 하늘을 뒤흔들었고, 캐럴의 설교는 하늘 문을 열었다. 그의 삶은 사람들을 초대하는 삶이었다.

그런 갑자기 캐럴이 발을 헛딛거나 걷다가 벽에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다. 간단한 것도 잘 잊어버렸다. 가끔은 웃음 가스라도 마신 사람처럼 들떠서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심각한 두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의사는 편두통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는 내 아내가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두통을 달래려는 캐럴을 보았다.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이런 식으로 편두통을 다스리는 사람은 없다. 아내는 캐럴에게 CT 촬영을 받아보라고 권했고, CT 결과를 본 의사는 MRI 촬영을 의뢰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사 끝에, 야구공 크기만 한 암 덩어리를 캐럴 머리에서 발견했다. 이어진 수술과 치료는, 15개월 후 장례로 막을 내렸다.

캐럴의 투병 기간 내내 난 흔들림이 없었다. 매주 강단에서 설교하고 기도하며 사람들을 권면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캐럴의 상태를 성도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캐럴의 장례식을 마쳤다. 그때까지도 내게는 힘과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장례식 이후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너무도 피곤하고 슬펐다. 그 상태가 엄청나게 오래갔다.

약을 먹거나 치료가 필요할 것 같았다. 직업을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믿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평소처럼 설교하고 교회를 섬겼지만, 기운 차리기 힘든 날도 많았다. 사람들이 기도를 요청하면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이 내 초라한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일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마음에도 없는 기도를 억지로 짜내다가, 마음속 의구심과 회의감 때문에 도중에 말문이 막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이 상태를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어릴 적 살던 캐나다 북부는 1년의 절반이 겨울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혹독한 겨울처럼 지극히 정상적이고 막을 수 없는 (또는 견딜 만한) 마음의 겨울을 겪고 있었다. 지구가 기울어진 채 태양 주변을 돌다보니 해마다 겨울이 찾아온다. 태양은 그대로인데, 빛이 줄어든다. 마음의 겨울도 비슷하다. 무언가 기울어진 채로 이동하면서 빛이 줄어들고, 모든 것이 차가워지고 활동을 중단한다.

끔찍하지만, 지극히 정상이다. 이 사실을 깨달으니 도움이 되었다.

 

시편 88편도 나를 도왔다. 이 시는 어두운 시다. 시인이 평생 받은 고통과 하나님의 무관심과 잔인함에 반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햇빛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시는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시88:18, 새번역)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시인(원래는 “고라의 아들들”이 맞지만, 이들은 일인칭 단수형으로 글을 썼다)은 지하실에 너무 오랫동안 웅크리고 있던 나머지, 그곳을 제집처럼 편하게 느낄 정도다. 그는 깊은 슬픔의 수렁 가운데 있으며, 손쉬운 경건심 따위에 기대어 빠져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를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벌거벗은 듯한 솔직함, 격렬한 애통, 극심한 분노와 체념 사이의 줄다리기, 하나님을 조롱하면서까지 그분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적극성이 맘에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내게 겨울을 버틸 수 있는(겨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힘이 되어주었다. 이 시편은 기도라는 점이, 첫 번째 실마리였다. 시인은 그 과정을 통과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 두 번째 실마리는 이것이다. 그는 그분께 자신의 실망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행동해 주시기를 구한다.

이것이 겨울을 통과하는 나의 기도가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내 감정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말씀드리면서도, 그분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다. 또 하나님이 하실 수 있고, 마땅히 하셔야 할 일을 직설적으로 말씀드렸다. 이 시절, 나의 기도는 노골적이고 꾸밈이 없었다. 그 기도는 진정한 믿음의 행동이었다.

그때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힘들고 암울한 시기였다. 그 시절과 작별하게 되어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그 시절은 앞으로 내게 또다시 필요할지도 모를 중요한 사실, 곧 “주님 앞에서는 어둠도 어둠이 아니라”(시139:12)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LJ

 



마크 뷰캐넌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뉴라이프커뮤니티교회 목사다.
Mark Buchanan, "Even the Darkness" Leadership Journal 2011 가을, CTK 2012:9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