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성경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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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성경 번역
  • 헨리 체허
  • 승인 201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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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성경 번역의 기준을 정립했다

마르틴 루터는 실로 다양한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설교가이자 교사였으며 웅변가였고 번역가였다. 또한 신학자였고 작곡가였으며, 지극히 가정적인 가장이기도 했다.그는 유럽 종교개혁이 대표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루터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누가 뭐라 해도 그가 옮긴 독일어 성경일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이 책만큼 한 나라의 발전과 정신적 유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루터가 살았던 시대에 독일어는 여러 지역 방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합스부르크-룩셈부르크 제국의 황제들이 궁정에서 평소 사용하던 말이 이런 독일어였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이 방언들이 어떻게 하나의 근대 언어로 통합되었던 것일까?
 
거기에는 중산 계층의 등장과 무역의 증대, 그리고 인쇄 기술의 발달도 한 몫씩 했다. 그렇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바로 루터의 성경이었다. 
 


바르트부르크의 기적

1521년 보름스 의회(Diet of Worms,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 로마제국 의회.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을 단죄했다/편주)가 열린 후, 루터의 관할 영주 프리드리히 현제(Frederick the Wise)는 루터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신시켰다. 그곳에 머물면서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을 단 11주 만에 번역했다. 시대와 상황을 막론하고 가장 경이롭게 여겨지는 이 업적은, 루터가 암흑의 시대에 희미한 불빛 아래서 병약한 몸과 싸우며 이뤄낸 것이었다.

이 <독일어 신약 성경>(Das Newe Testament Deutzsch)이 출판된 것은 1522년 9월이었다. 인쇄술의 대작이자, 루카스 크라나크(Lucas Cranach)의 작품과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의 저 유명한 요한계시록 연작에서 채택한 목판화가 들어간 이 성경은 ‘9월의 성서’(September Bibel)로 불리며 출간 후 두 달 만에 5000부가 팔려나갔다.

그러자 루터는 구약 성경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모두 배운 루터였지만, 혼자서 성경을 번역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번역가는 절대로 혼자 일해서는 안 된다. 혼자 번역을 하면 적절한 최상의 단어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루터는 ‘산헤드린’이라고 명명한 번역위원회를 꾸렸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번역위원회라는 개념은 필립 멜란히톤(Philipp Melanchthon), 유스투스 요나스(Justus Jonas), 요하네스 부겐하겐(John Bugenhagen), 카스파르 크루시거(Caspar Cruciger) 같은 학자들이 루터가 만든 번역위원회에 합류해 선례를 만든 덕분이라고 보면 된다. 이 위원회의 학문성에 필적할 만한 것은 그 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독일어로 만나는 선지자들

루터는 번역의 최고 책임을 맡았다. 그는 산헤드린에 동기를 부여하고 이들을 이끌며 번역을 진행했는데,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지 않았다. 그는 학문적이거나 문어체가 아니라 독일 말을 생생하게 살린 번역을 원했다. 어떤 단어나 구절이든 옮겨 적기 전에는 반드시 루터의―눈이 아닌―귀부터 통과해야 했다. 들었을 때 거슬리지 않고 잘 이해돼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일어 성경이 가진 가장 최고의 자산인데, 이것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문자 하나하나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해석하려 했던 루터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어의 표현을 모국어로 온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절한 번역 방법론은 원서의 어법에 따라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을 고르는 것이다. 번역을 제대로 하려면 외국어가 담고 있는 의미를 우리말의 표현이 되게 해야 한다. 나는 시장 통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처럼 말하기 위해 노력한다. 모세를 소개하면서 누구도 그를 유대인으로 보지 않도록, 꼭 독일인처럼 만들려고 한다.”

번역자들은 기본 언어로 궁정 언어를 채택했지만, 제국의 갖가지 방언들에서 최상의 표현을 찾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루터는 철저한 완벽주의자로, 꼭 맞는 단어 하나를 찾아내기 위해 각기 다른 방언을 쓰는 노인들과 아주 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제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푸주한을 데려다 양을 도살해서 그 내장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새 예루살렘’에 나오는 ‘보석’을 번역할 때는 도대체 그것이 어떤 돌인지 알지 못해 고민이 되자, 선제후의 수집품 중에서 그것과 비슷한 돌을 빌려와 한참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루터는 히브리어 원문을 최대한 독일어답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말할 수 없이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우리는 선지서를 독일어로 옮기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고 그는 기록했다. “오, 주여. 이 저자(선지자/편주)들이 독일어로 말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요. 이들은 그럴 마음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들은 히브리어를 포기하고 야만적인 우리 독일어를 따라할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 지빠귀로 하여금 아름다운 선율을 거두고 경멸해 마지않는 뻐꾸기의 재미없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욥기 전편에 흐르는 격한 감정을 표현한 말들을 번역하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심지어 욥은 친구들에게서 위로를 받는 것보다도 우리가 욥기를 번역하려드는 게 더 고통스러운 것 같아 보입니다. 우리의 번역을 받아들이느니 차라리 재 위에 드러눕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산헤드린은 신속하게 그렇지만 정확하게, 과학적이라기보다는 변증적인 어조로 번역을 해 나갔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태어난 독일어 성경은 이보다 나중에 나온 <킹 제임스 성경>보다도 문학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다. 또한 이 성경은 읽을 때 뿐 아니라 낭독할 때도 자연스럽게 들리기 때문에, 운율과 가독성에서 탁월해 지금까지도 독일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 가정에 꼭 있어야 할 책

독일에서는 누구나 <루터역 성경>을 산다. (영혼의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영혼 구원을 위해서 그런 것만 아니라, 이 성경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중산층으로서의 위신 때문에라도 그렇다. 이 성경은 가정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할 책이었고, 또 대다수 독일인들에게는 읽을 수 있는 성경이 이것 말고는 달리 없었다. 또한 그들이 살 수 있는 형편이 되는 몇 권 되지 않는 책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대중매체라는 게 생겨나 일상생활에 스며드는 첫 경험이기도 했다. 모두들 루터의 새로운 성경을 읽거나, 읽는 것을 듣거나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구절이 일상 표현이 됐고, 성경이 말하는 바는 대중이 따라하는 구호가 됐다. 그러니까, 이 성경이 가진 보편성이 호소력을 가진 셈이었고, 독일어의 범위 전체를 온전히 포용해 결국 현대 독일어를 형성하는 언어적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독일 문학과 공연 예술의 형식적 재건에도 도움이 됐다. 이 성경뿐 아니라 루터가 가져온 영향은 아주 놀랄만한 것이어서, 훗날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루터를 가리켜 독일 민족정신의 화신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많은 학자들은 지금도 루터를 역대 독일인들 가운데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고 있다.
 

영어 성경의 ‘삼촌’

짐작하듯이, 이 독일어 성경의 영향은 제국의 국경을 넘어 멀리 퍼졌다. 네덜란드와 스웨덴, 아이슬란드와 덴마크 등지의 성경에 직접적인 자료가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나라들에서도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이 성경이 위대한 영어 성경 번역가에게 불멸의 인상을 남겼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종교개혁 운동의 영웅,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루터가 독일어 신약 성경을 출판할 무렵 영국에서 피신해 유럽 대륙으로 건너왔다. 그 역시 원어 사본을 놓고 성경을 번역했는데, 아마도 비텐베르크에서 루터와 만났던 것 같다.

틴들에게 강렬하게 영향을 준 루터의 업적 중 한 가지는 신약 성경의 배열 순서였다. 이전의 성경전서들에는 성경을 배열하는 표준이 없었다. 번역자들이 임의로 순서를 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그리스도가 어떻게 가르치셨나”를 기준으로 사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와 사도행전, 서신서(구세주가 드러나는 강도에 따라 순서를 정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 순으로 성경을 배열했다. 틴들은 루터가 정한 이 순서를 따랐으며, 이후로 사실상 모든 성경 번역자들이 동일한 순서를 따랐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구절들이 루터에게서 틴들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나오는 “육에 속한 사람”(natural man)에 나오는, 틴들이 쓴 ‘natural’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의 ‘natürlich’에서 왔다. 마태복음 2장 18절의 “소리가 들리니(was a voice heard)”는 루터가 쓴 ‘auf dem gebirge’(산에서의 외침/편주)라는 표현에서 왔다.

틴들은 요한복음 19장 17절의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the place of dead men’s skulls)과 고린도후서 6장 12절의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라”(Ye vex yourselves off a true meaning), 디모데전서 1장 7절의 “율법의 선생”(Doctors in the Scripture)”과 마태복음 21장 15절의 “호산나”(hosianna)라는 표현도 <루터역 성경>에서 옮겼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틴들도 독자를 감안해 라틴어로 된 교회 용어들을 삼갔다. ‘참회하다’(do penance)는 말 대신 ‘회개하다’(repent)는 표현을, ‘교회’(church) 대신 ‘회중’(congregation)을, ‘사제’(priest)가 아니라 ‘장로’(elder)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그리스어 ‘아가페’(agape)를 뜻하는 말로 ‘자비’(charity) 대신 ‘사랑’(love)이라는 표현을 썼다.

루터와 틴들 둘 다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운율과 어휘로 번역했다. 그리고 틴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루터의 교리를 최대한 지지했다. 이 두 번역자가 많은 곳에서 각자 독립적으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틀림없지만, ‘영어 성경의 아버지’ 틴들에게 루터가 미친 영향 역시 명백하다.

틴들의 영어 번역이 <킹 제임스 신약 성경>(틴들의 번역을 기초로 1535년 출간됐다/편주)의 90% 이상, 개역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 미국에서 출판됐으며 신약은 1946년, 구약은 1952년에 완성됐다/편주)의 75% 이상을 이루고 있으니, 루터의 유산은 지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루터는 많은 면에서 특별한 은사를 받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천재적인 면모 중에서 그 영향력에서 가장 책임이 무거우면서도 가장 덜 알려진 것이 번역가이자 작가로서의 그의 재능과 능력이었을 것이다. 루터에게 이런 면모가 없었다면, 종교개혁과 통일된 독일 국가의 성장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헨리 체허(Henry Zecher)는 이 글을 쓸 당시 미국 보건인적자원부의 인사 전문가였으며, <델라웨어 스테이트 뉴스>에서 기자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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