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 작가 열전
[미로슬라브 볼프] 진리를 진리로 여기게끔끊임없이 기독교와 지금 이곳을 연결하는 미로슬라브 볼프
팀 스태포드  |  Tim Stafford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1.13  
트위터 페이스북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볼프는 기독교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를 둘러싼 세계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무신론적 세계였다. 그는 매년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이 세계와 직면했다고 기억한다.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학생들은 각자 반 친구들 앞에 서서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질문 중 하나는 ‘아버지는 어떤 일을 하시니?’였다. 볼프의 아버지는 오순절 교회의 목사였기에, 이어지는 조롱을 피할 수 없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3500명 학생들 중에서,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아이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당연히 여러 도전이 있었죠. ‘나이 들고 어리석은 자들이나 믿는 거야’ 같은 말이었죠. 생각해 보니, 그런 도전에 대답하려 했던 노력이 저의 첫 지적 활동, 첫 번째 학문적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열여섯 살에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까지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볼프는 말한다. 그러나 그 후로는 토목공학에서 올 A를 받는 학생이 되었다. 그 무렵에 볼프는 피터 쿠즈미치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 쿠즈미치는 볼프의 누이와 연애 중이었다. 현재 고든콘웰신학교의 선교학 교수로 있는 쿠즈미치는 다양한 재능을 지닌 인물로서, 당시 볼프에게 관심을 갖고 그에게 읽을 책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첫 책은 버트런드 러셀이 쓴 철학 입문서인 서양의 지혜(서광사 역간) 번역본이었다. 또한 쿠즈미치는 볼프에게 영어를 독학할 것을 권유했다. 나중에는 그리스어를 공부하라고 권했는데, 볼프는 즉시 그 제안을 따랐다. 볼프는 폴 리틀의 이래서 믿는다(생명의말씀사 역간)를 읽었고, 곧이어 보다 정교한 신학으로 나아갔다.

“당시 10대였던 제가 쿠즈미치에게 늘어놓던 불평이 기억나네요. ‘어떻게 이 복음주의자들은 하나같이 글 쓰는 법을 모르는 거죠?’ 제가 보기에, 복음주의자들의 말이 옳긴 한데 그들은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제가 왜 불트만의 말하는 방식에 그토록 큰 관심을 기울였겠어요?” 볼프는 쿠즈미치에게서 C. S. 루이스를 소개받고 나서야 비로소 존경할 만한 정통파 저술을 발견하게 된다.

“쿠즈미치는 결코 교조주의자가 아니었어요. 제가 비복음주의권 작가들의 글을 읽는다고 해서 걱정하지 않았죠. 저는 복음주의의 경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어요. 쿠즈미치는 제게 여러 권의 책을 주었고, 그 책을 가지고 저와 토론했고, 제가 너무 멀리까지 나간다고 생각되면 자기가 걱정하는 바를 얘기해 주었죠.”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볼프는 쿠즈미치가 막 설립한 성경학교(볼프는 나중에 이 학교에서 가르치게 된다)에 등록하고 동시에 자그레브 대학교에도 등록했는데, 그는 거기서 철학을 공부했다. 일상적으로 새벽 두 시까지 공부했고, 일곱 시면 일어나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쿠즈미치가 볼프의 초기 신학 형성에 지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볼프는 자신의 신학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은혜에 대해서는 부모님과 유모가 일구어 낸 가정 분위기에 공을 돌린다. “가족은 참된 대안을 제시해 주었어요. 원수를 적대시하지 않는 것이 집안 분위기였는데, 그것이 제 신학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죠. 우리 가족은 원수를 사랑해야 했고, 원수를 향해 냉담한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되었죠. 도리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원수를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풀러신학교는 볼프에게 더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안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학사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풀러에 있는 동안 그는 초빙 교수로 와 있던 올랜도 코스타스 교수의 수업을 들었는데, 그는 위르겐 몰트만 밑에서 박사 과정을 밟을 것을 볼프에게 권했다. 볼프는 자신의 복음주의적 확신이 튀빙겐 대학교에서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망설였다. “[몰트만은] 내 모습 그대로 나를 받아 주었어요. 그는 내가 복음주의자인 것을 알고 있었으나, 괘념치 않았어요. 내 모습에 마음이 열려 있는 분과 조우한 것이죠.”

학계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부딪치는 장애물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볼프는 가볍게 답했다. “복음주의와 비복음주의 양쪽 모두 최전선에는 이념적인 참호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저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다양하고도 변화무쌍한 문화입니다. 그 문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흥미롭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화는 덧없는 여러 욕망을 뒤섞어 ‘신’마저도 만들어 냅니다. 그 문화 속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좋은 과거 같은 것도 없고 사람들이 희망하는 밝은 미래 같은 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가 살아가는 모호한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세계 시장과 미디어는 수시로 변하는 이미지뿐 아니라 단기 기억의 문화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해 왔습니다. 이 같은 현실은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는 옛 문서에서 신앙의 내용을 가져와서 하늘 도성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같은 실체들을 그려 내는 언어는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말한 것처럼 일정 부분 이미 식어버린 ‘차가운 기억’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언어는 동시대인들을 향해 강하게 요구하지 못합니다. 그들을 향해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변화하는 이미지 문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기독교 신앙은 삶을 형성하는 ‘뜨거운 기억’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변에는 온통 공허한 언어뿐인데, 어떻게 해야 언어 스스로 말하도록 그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있을까요?”

미로슬라브 볼프는 교회에 뿌리를 두되 세상을 향해 말하는 신학을 하고 싶어 한다. 풀러신학교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듀크대학교와 예일대학교, 그리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교수직을 두고 마지막으로 고심하고 있었다. 복음주의권 대학의 교수가 듀크나 예일, 하이델베르크의 청빙을 받은 경우는 아마 그가 처음일 것이다. 마침내 그는 예일을 선택했다. 그것이 다양한 청중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볼프의 명성은 한여름 밤의 달처럼 높이 솟아올랐다. 특히 구 유고슬라비아 전역을 집어삼킨 내전 기간 중 크로아티아의 한 신학교에서 가르쳤던 경험에 기초한 배제와 포용(VP 역간)이 출간된 이후로 더욱 그러했다. 1991년 가을, 볼프가 가르치고 있던 신학교는 오시예크를 빠져나가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슬로베니아의 시골 벽지에 있는 한 개혁주의교회 목사관에서 모두가 지내야 했습니다”라고 볼프는 회상한다. “[아내] 주디와 저는 학생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예닐곱 명이 한 방을 사용해야 했어요. 텔레비전을 통해 160km 밖에 있는 고향 집들이 전쟁터로 변한 모습을 보았죠. 망명길에서의 신학교 사역과 전쟁 경험은 저의 인격 형성에 필연적으로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쟁은 그에게 깨진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깊은 질문을 제기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양쪽 진영의 그리스도인 친구들 중 일부가 [그가 속한 전통적으로 평화주의적인 오순절 교회의] 약속과 의무 일체를 헌신짝 버리듯 포기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괴로웠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실천했던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 이웃이 원수가 되었을 때에는 실천하지 못했습니다.…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묻곤 했어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크로아티아인 동족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세르비아인 형제자매 중, 여러분과 더 가까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떤 대답이 나올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러나 크로아티아인만의 문제가 아님은 곧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교회와 전 세계가 직면한 딜레마였죠.”

포화 속 크로아티아든 분열된 가족이든 대립하는 상황에서의 기독교 신앙을 숙고한 끝에 「배제와 포용」이라는 책이 탄생했다. 이 책은 성경에서, 가인과 아벨, 아브라함, 그리고 십자가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처럼 구별된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삶을 바라보는 이런 시각 속에 우리 인간 안에 있는 최선의 모습이 차고 넘치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한다. 볼프가 제시하는 신학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배타적 영역이기보다는 온 세상을 향한 호소인 셈이다.

이렇게 되자 성경의 권위에 투철하지 않은 이들과의 토론이 불가피해졌다. 그들과 유익한 신학적 토론이 어렵지 않은지 물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가 답했다. “성경의 권위를 아주 엄격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권위의 문제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중심 문제는 성경이 신학과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입니다. 만일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의 형식적인 권위, 이는 저도 기꺼이 단언하는 바이지만, 이 권위를 강화하는 데 집중하는 대신 성경이 어떻게 우리 삶을 건강하게 빚을 수 있는지, 성경이 어떻게 우리에게 유익한지, 성경이 어떻게 한 사람이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본문이 되는지 보여 주는 데 좀 더 집중한다면, 복음주의자들은 분명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형식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기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성경의 권위를 확립하는 데 실질적으로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볼프에게는 몇 가지 당면한 프로젝트가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이미 그것들을 넘어 그가 가장 고대하는 작업에 가 있다. 하나님에 관한 책이다. 하나님에 관한 책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그에게 물었다.

“제가 강의를 어떻게 하는지 말씀드릴게요.” 그가 말했다. “보통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죽였습니다…하나님이 죽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볼프는 하나님에 대한 논의를 현대 세계의 신관에서 시작한다. 그는 우리가 여러 가지 하나님 대체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검토한다. 그는 하나님의 속성을 연구하면서, 우리가 끌림을 느끼는 세속의 대상들과 하나님 속성의 상호작용을 살피고자 한다. “저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설명하되, 그분이 우리 삶에 요구하는 것을 함께 담아내는 방식으로 신론을 전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단언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이 이러저러한 특정한 방식으로 살기를 원한다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CT

팀 스태포드 CT 선임기자
Tim Stafford “Miroslav Volf: Speaking truth to the world” CT 1999:2; CTK 2012:9

 

팀 스태포드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밴드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효령로68길 98 5층  |  대표전화 : 080-586-7726  |  팩스 : 02-6919-1095
발행인 : 오정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은홍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은홍  |  사업자등록번호 : 214-88-27116  |  통신판매업신고 : 제01-2602호
Copyright © 2017 Christianity Today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