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자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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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의 딜레마
  • 조던 몬지
  • 승인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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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 압도적인 증거를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언제부터 회의론자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다섯 살 무렵이 아니었을까? 어머니는 한 생일 파티에서 내가 다른 아이를 이렇게 몰아붙이는 장면을 목격하셨다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라는 걸 네가 어떻게 알아?” 열두 살 무렵엔 우리 중학교에서 내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교회 다니는 한 남자아이가 우리 집에 찾아와 “무신론자들을 다 쏴 죽이겠다”고 위협한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나와의 대화를 회피했는데, 자신들의 엉성한 논리가 얼마나 철저히 짓밟힐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정말 그랬다.

2008년 나는 하버드대학교(이 대학의 좌우명이 바로 ‘베리타스’(Veritas), 진리다) 신입생이 되어 정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상쾌한 11월의 어느 날, 나는 존 조셉 포터를 만났다. 처음에 보수적인 정치권의 문제를 중심으로 흘러가던 우리의 대화는 곧 종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터가 하버드대학교의 기독교 관련 잡지인 <익투스>(Ichthus)에 하나님의 존재를 옹호하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글에 딴지를 걸었다. 우리는 캠퍼스에서 새벽까지 논쟁을 벌였고, 집에 돌아가서는 이메일로 논쟁을 계속했다. 포터는 나의 가장 기본적이고 철학적 질문, 즉 ‘성경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준 첫 번째 그리스도인이었다. 전능한 하나님이 자신도 들어올릴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을까? 에우튀프론(Euthyphro)의 딜레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즉, 선한 것은 하나님이 그것을 선하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선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선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선하다고 구분하신 것인가? 나처럼 기독교적 바탕이 없는 사람한테는 그런 질문에 대해 “믿음만 있으면 돼”라고 답하는 것은 비겁한 행위로 보였다. 포터는 결코 그런 답을 하지 않았다.

포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내가 무신론자라고 주장하면서도 옳고 그름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범주라고 믿는 것은 굉장히 모순적인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의 비판을 논박할 능력이 없었던 나는 당장 형이상학 세미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무신론자들도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름의 윤리체계를 발전시켜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신의 섭리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무신론자 교수님이 내 연구 발표 주제로 C. S. 루이스를 배정하신 것이다. 루이스는 에우튀프론 딜레마를 다음과 같은 논리로 명쾌하게 해결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선하신 분이 아니라 선함 자체이시며, 선함은 단순히 신적인 성질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이다.”

포터는 또한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도 나를 굴복시켰다. 나는 항상 빅뱅 이론을 믿어왔다. 그러나 다행히도 빅뱅 이론을 처음 제안한 과학자 조르주 르메트르가 가톨릭 사제였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물론 빅뱅의 ‘원인’이 무엇이고, 또 그 원인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으로 한없이 이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완전히 무지했다.

밸런타인데이 무렵부터 나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내가 이신론자(deist)라는 사실은 지적으로 전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토마스 제퍼슨을 비롯해 존경스러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지적으로 비슷한 수준에 오른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의 이신론자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다. 가톨릭 신자인 친구 하나가 내게 J. 버드지제스키의 「나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라」(Ask me Anything)라는 책을 권해주었던 것이다. 그 책에는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선을 행하기 위한 의지적인 헌신이다”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담겨있었다. 이 주제―사랑은 진정한 선을 위한 헌신이다―는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십자가는 더 이상 하나님의 가학성을 보여주는 기괴한 상징이 아니라 놀라운 사랑의 증표로 보였고, 기독교는 이상하고 신화적인 종교가 아니라 우주적이고 아름다운 종교로 보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나의 죄를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지독히 교만했고 자주 분노를 폭발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도 몰랐고 한없이 이기적이었다. 절대 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성적 경계선도 넘었다. 스스로 세운 윤리적 기준을 준수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잘못을 바로잡을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십자가가 단순한 사랑의 상징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는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였다. 요한복음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흐느껴 울었다.

 

덤불숲을 헤매다

그러나 아름답고 문제의 해결책이 된다고 해서 전부 진리인 것은 아니다. 나는 성경이 진리이길 간절히 바랐지만, 여전히 지적인 증거가 부족해 보였다. 나는 곧바로 기독교 변증론의 세계로 뛰어들었고, 다양한 관점의 책과 논쟁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코란과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김영사 역간)을 읽었고, 「회의론자의 주석 성경」(The Skeptic's Annotated bible)을 살펴보면서 그 책에 언급된 명백한 모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반박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기독교 지성들이 남긴 풍부한 전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친구들과 논쟁을 벌이면서도 어거스틴, 안셀무스, 아퀴나스, 데카르트, 칸트, 파스칼, 루이스 같은 대가들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었다. 마침내 그들의 작품을 전부 읽고 나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합리적인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와 가슴이 입장을 바꿔버렸다. 성경을 지지하는 증거를 알게 되면서 내 머리는 해답으로 가득 찼는데, 한 달 전에 나를 흐느끼게 했던 그 이야기가 이제 더 이상 내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케이프 코드에서 진행된 봄 수련회 기간 동안 예수의 고난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아무 감동이 없었다. 나는 기도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나는 숲속 연못가로 걸어가서 물가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과 사랑하는 친구들, 그리고 내 몸 자체와도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발 모든 것을 분명히 해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고, 나는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주변의 덤불숲을 헤치며 연못을 지나 작은 시내로 접어들었다. 저 아래 어디쯤에 있다는 바다까지 내려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주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돌아가는 편이 나을까? 짐을 전부 다 두고 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떼어놓으며, 끝을 볼 때까지는 중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출발 지점으로 되돌아간다면 도저히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대충 방향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날카로운 나뭇가지와 무성한 관목들을 힘겹게 통과했고, 빽빽한 가시나무 덤불을 만나면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진흙이 무릎까지 차오르는 늪지대를 통과하기도 했다. 늪지대를 벗어난 후에는 그냥 시내를 따라 첨벙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옷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있었고, 물길이 잘 닦여있는 강바닥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햇살마저 기울고 주변이 완전히 어둠에 잠길 때까지 나는 계속 시내를 따라 걸었다.

문득 들장미 덤불을 헤치며 나아가는 숲속 여정이 뭔가 내 삶의 은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어딘가에 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그곳에 도달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점이 그랬다. 확실한 길이 보이지 않으니 본능에 의지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잠깐씩 엉뚱한 곳을 헤매게 될 수도 있고, 처음 출발한 장소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언젠가는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이고, 그때는 모든 것이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진흙탕에 빠지거나 가시덤불에 걸려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든 이겨내고 그곳에 도달할 것이다. 상처는 약간 남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하나님을 향한  탐구를 계속할 작정이라면, 단순한 지적 여정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될 것이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 8:31-32, 새번역)라고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나는 머리와 가슴이 모두 동의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수련회가 끝날 무렵에도 머리와 가슴은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런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어느 순간 내 가슴이 동의했었고 이제는 내 머리가 동의했으니, 언젠가 내 가슴도 머리를 따를 터였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슴 때문에 논리적으로 합당한 행동, 즉 진리가 요구하는 복종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2009년 부활절 일요일, 나는 드디어 세례를 받고 평생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결코 평탄한 여정은 아니었다.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고, 막 사랑하기 시작했으나 늘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이 하나님을 향해 소리 지르고 대들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믿음을 위해 지성을 희생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의심을 통해 나를 가장 크게 축복해주셨다. 내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따를 때마다 하나님은 성경과 기도, 우정, 기독교 전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이 여정이 과연 어떻게 끝날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무작정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압도적인 증거를 마주하고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를 외면하게 될 때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하버드로 돌아와 여전히 ‘베리타스’를 찾고 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나를 발견하셨다. CT

 


조던 몬지는 베리타스포럼의 미 북동부 지역 디렉터이며, <페어 포워드>(Fare Forward)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20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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