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1] 십일조, 율법으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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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1] 십일조, 율법으로 할 것인가
  • 존 오트버그
  • 승인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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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말하는 ‘드림’의 의미는
   

수님께서 절대 하시지 않은 말씀 중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그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십일조에 관해서라면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느니라.”

십일조는 ‘베풂’이나 ‘나눔’ 같은 말보다는 확실히 인기가 없다. 십일조와 관련해 흔히들 이런 질문을 한다. “수입 총액의 십분의 일을 내는 건가요? 순이익의 십분의 일을 말하는 건가요?” 그런가 하면, 목회자들의 질문은 이렇다. “십일조는 구약의 개념 아닌가요? 우리는 지금 은혜 안에 살고 있잖아요?”

이 질문에는 교회는 오순절 사건 이후에야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라는 사실과 인간이 청지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가정이 들어있다. 이 질문에는 율법주의적인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십일조 했음’ 확인란에 표시하기만 하면 (“땅과 그 안에 속한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이니” 같은 성경 말씀은 무시하고) 나머지는 몽땅 자신들을 위해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는 의미가 숨어있다.

더 나쁜 것은, 은혜에 대한 안일한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드리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 친구가 그런 경우다. “내 아이들이 정말 주님의 것이라면, 애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데 쓴 돈을 전부 셈해 봐야겠네. ‘선한 청지기’ 노릇에 든 돈이 아닌가? 우리 집에서 소그룹 모임을 열고 사람들을 초대했어. 가구를 사들이고 집을 꾸민 것도 마찬가지고. 성경공부를 준비하면서 컴퓨터를 쓰고 휴대폰에 찬송가를 저장해두었지. 그럼 이 모든 게 ‘선한 청지기 업무 수행에 따른 공제 항목’이 되겠군.”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린다고 할 때, “은혜받은 대로 모두 드리는” 이런 유형은 아무것도 드리지 않는 것과 흡사하다.

만약 십일조가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 중 하나라면 어떨까? 십일조가 은혜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의 도구라면? 나는 십일조에 대해 언급한 전형적인 성경구절로 돌아가, 하나님이 십일조를 도구 삼아 우리를 좀 더 관대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이유를 보여주고 싶다.
 

 



영적 보조바퀴

드림에 대해 말할 때, 십일조는 보조바퀴를 다는 것과 같다. 보조바퀴는 처음 자전거를 탈 때나 필요하지, ‘투르 드 프랑스’에 나갈 때 필요한 장치가 아니다.

언제 보조바퀴를 떼도 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답은 ‘보조바퀴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을 때’다. 언제 십일조를 그만해도 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정답은 ‘십분의 일 이상을 드릴 때’다. 십일조를 드림의 상한치로 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며, 시작점으로 잡는 것이 옳다.

선지자 말라기가 불성실한 십일조를 두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꾸짖은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8)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시험하도록 하셨다. 동시에 십일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도적질이라고 하셨다. 십일조는 ‘아낌없이 드림’이라는 행위의 끄트머리에 놓인 말이 아니다. 드림의 가장 처음이다. 하나님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신다. 아마도 사람들이 돈 문제로 곤란을 겪을 때, 가장 쉽게 지나치는 것이 십일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십일조는 율법적이다?

십일조 제도는 이스라엘의 삶의 방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27:30

십일조라는 말은 “10분의 1”이라는 뜻이다. 십일조는 10%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일조는 시작에 불과했다 .


이스라엘이 거둬들인 십일조는 세 가지다.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18:21), 수확을 감사하여 축하하고 즐기기 위한 것(신14:23), 고아와 과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3년마다 걷는 것(신14:28-29, 26:12-13)이다. 따라서 실제 십일조의 비율은 10이 아닌 23에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가 구약시대의 제도인 만큼, 의미 전체를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셨다. 초대교회에서 “율법에서 자유롭게 해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러니 십일조는 이제 안 해도 되는 거죠? 십분의 일보다 훨씬 적은 돈을 내도 괜찮잖아요!” 하고 쾌재를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베푸심에 감격해서 십일조 이상을 드렸다.

십일조가 “하나님께 우리가 진 빚을 갚는” 수단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하나님을 우리 중심에 모시고 베푸는 삶을 훈련하기 위한 도구가 돼왔다.

안식일이 우리의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십일조는 우리의 소유물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삶의 매순간, 한 치, 한 자락까지도 하나님의 손에서 나와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것이라는 진리를 가리키는 견고한 지침이다.

 

 


베풂의 경제학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사회비교 이론에 해당하는 일련의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우리가 다루는 문제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에 따라, 자신을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기도 하고 못한 사람과 비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도덕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대량학살범이나 마약거래상 같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돈 문제에서는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 즉 돈이 더 많은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 탐욕은 커지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의 감정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런 상향 비교를 지양했다. 십일조는 인간이 하나님께 자신의 소유를 드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욕구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상기시켰다.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이스라엘이 확연히 달랐던 점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신교를 믿은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겼다. 또 한 가지는 자신들의 부에 대해 자율적으로 한계를 정한 점이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베푸는 삶을 살았다.


은밀히 행하는 십일조

몇 년 전 나는, 제법 규모가 큰 사역을 책임지고 여러 교회와 협력하며 관리하는 사람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어떤 교회가 잘 베푸는 교회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본적인 척도가 있을까요?” 나는 그가 기부 프로그램이나 나눔에 관한 설교 빈도수 따위를 말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가 말하길, 잘 베푸는 교회가 되는 첫 번째 요건은 담임목사가 잘 베푸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십일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서 우리가 속한 지역 기관들에 낸다. 그렇게 해서 월드비전이나 국제정의선교회International Justice Mission, 풀러신학교 같은 다른 사역을 후원한다. 은혜로 가득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로 이끌고 싶은 목회자라면 이러한 실천이 특히 중요하다. CT
 


존 오트버그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장로교회 담임목사이며 「나의 일로 하나님을 높이라」 「평범 이상의 삶」 등을 펴냈다.

[수정:2015.03.03] 
[게시:20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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