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나무로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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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로 키우기
  • 앤디 크라우치 Andy Crouch
  • 승인 2019.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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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변화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은 시대를 살고 있다. 목회자 출신의 행위예술가인 랍 벨은 그런 세태를 대변하듯 2010년 듀크신학대학원에서 목회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혁명가가 될 생각으로 목회를 시작했는데, 결국 기업 경영자가 되어 있는 느낌이 든 적 없습니까?”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랍 벨은 목회를 내려놓고 로스앤젤레스로 자리를 옮겨 보다 비제도적인 새로운 소명을 발견했다.

벨의 질문은 제도적인 교회와 제도적인 리더십에 대한 깊은 불만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가 구성원의 영혼을 좀먹는 관료주의로 굳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제도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제도의 본질과 그 작동 방식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관료주의적 조직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제도다. 역사를 살펴보면 훨씬 다양한 제도들이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제도란 인간이 만들어낸 각종 역할과 규범 등으로 구성된 문화의 한 유형이며, 인간의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핵심 무대다.

문화적 변화가 계속 성장, 발전하여 사회 안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제도화되어야 한다. 반복과 학습이 가능한 형태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그 변화가 처음 만들어낸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세대에게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히브리 성서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들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방법이 그렇듯이, 진정한 문화적 변화도 여러 세대를 거쳐야만 완전히 사회 안에 흡수되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훌륭한 제도는 공간적·시간적으로 ‘샬롬’을 확대한다. 살롬은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히브리어인데 나는 ‘광범위한 번영’(comprehensive flourishing) 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제도 중 하나인 야구를 예로 들어보자. 야구 역시 여러 세대를 이어 내려온 문화 유형의 하나로, 현재 전 세계 여러 대륙에서 프로 야구 경기가 열리고 있다. 인간의 모든 위대한 행위가 그렇듯, 위대한 야구 경기도 정신적·신체적·감정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부과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성취감을 선사한다. 즐거운 놀이와 치열한 경쟁이 결합된 야구 경기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창의성과 탁월한 성취를 향한 야망을 반영하고 있다. 야구 경기는 한 명의 선수만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제도다.
 

제도 안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정식 야구 경기와 뒷마당에서 하는 캐치볼의 차이는 철저히 ‘제도화된’ 다양한 포지션의 존재 여부다. 포수와 투수, 우익과 좌익, 1루와 3루 등은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씩 다른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 결과 야구 경기는 굉장히 풍요로운 다양성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이 그렇게 다양하길 원하신다.

     
 

서구는 물론이고 복음주의 내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도 중 하나는 바로 대학이다. 대학 안에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한다. 수많은 학문 분야의 교수와 학생들은 물론이고, 뛰어난 전략과 운영 능력을 겸비한 경영진과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직원들, 각종 동아리와 기숙사 모임, 밴드와 운동부도 있다.

그러나 제도의 이런 긍정적인 면에는 반드시 부정적인 면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광범위한 번영’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한 도전을 하는 대신, 제도‘주의’에 굴복한 채 제도의 유지 자체에만 급급한 경우도 있다. 죄와 불의를 지속적으로 전파하는 제도들도 있다. 노예제도 같은 불합리한 제도들은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정사와 권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인간이 만든 제도는 하나님의 목적과는 반대로 악마적인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를 대체할 만한 대안은 마땅치 않아 보인다. 제도화에 실패한 운동은 싹은 빨리 틔웠으나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한 씨앗과 같다. 주목을 받으며 등장해 각광을 받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유명인들이 그런 예다. 이런 사람들은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어떤 단체보다 큰 영향을 미치지만, 분명한 문화적 변화를 지속시키는 데는 실패한다. 정치학자 휴 헤클로는 제목은 진부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 「제도적 사고에 대하여」(On Thinking Institutionally)라는 저서에서, 최선의 경우 야구에서는 칼 립켄 같은 선수가 배출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립켄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야구라는 보다 크고 위대한 목표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뛰어난 선수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는 야구를 자신의 자아를 과시하기 위한 무대 정도로 간주하는 배리 본즈 같은 유명인이 배출될 수도 있다. 
 

이 나라와 교회에는 배리보다는 칼 같은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칼 같은 사람이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제도, 배리 같은 사람의 이기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제도가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런 제도를 구축하는 길은 젊은 급진주의자들이 꿈꾸는 무정부주의도, 냉소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지루한 관료주의도 아니다. 그 어려우면서도 보람찬 과제는 바로 리더십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예수는 자신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게 된다고 약속하셨다. 우리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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