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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공립학교에서 금지해야 할 종교 활동인가
에이미 줄리아 베커, 매튜 리 앤더슨, 로렛 윌리스  |  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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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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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지 아닌, 제한을 두자

우리 아이들은 몇 년 전 공립 유치원을 다니면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집에만 오면 요가 시간에 배운 ‘나비’나 ‘뱀’, ‘개’ 자세를 보여주려고 안달이었다. 유치원 어버이날 행사에서 아이들은 갖가지 스트레칭과 새로운 율동, 엉성하긴 하지만 꼼짝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심호흡하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규칙적으로 동네 요가 수업을 다니긴 했지만,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요가를 배운다는 게 어쩐지 찜찜했다. 나는 요가의 기원이 불교와 힌두교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그런 사상에 물들지 않기를 바랐다. 또 한편으로는, 공교육 기관에서 요가를 배우면서도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 대해서는 배울 수 없다는 데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요가 수업에서 배운 요가의 좋은 점을 아이들도 누리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이들은 명상을 한답시고 손을 가슴에 모으거나 “옴”으로 시작하는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됐다. 거기엔 부처의 어떤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보다는, 힘과 균형, 유연성을 습득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지도 배우고 있었다. 요컨대, 경기장이나 시합 따위가 아니어도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고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가 수업이 ‘교회와 국가를 분리’한다는 정교분리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면, 공립학교에서도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닌 유치원과 같은 모델을 따르는 것이다. 학교 전체의 관점에서 체육 수업이나 다른 수업의 일환으로 요가를 가르친다면, 합리적이고도 적절한 기준에 따라 허용해야 한다.

요가가 우리 아이들에게 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로 하여금 지구력과 유연성, 균형 감각을 기르는 순수한 육체 활동이 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체육 교사가 아이들에게 운동장을 한 바퀴 돌라고 시키면서 사도 바울을 들먹이지 않는 것처럼, 공립학교에서 요가의 영적 측면을 다룰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편, 동아리 같은 자발적인 학생모임에서는 요가를 통해 (힌두교나 불교적) 영적 측면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공립학교가 정교분리 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필수 교과 과정이나 활동에 특정 종교를 개입시키지는 않지만,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와 이를 표현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교내에서 그리스도인 학생들의 기도 모임이 허용되듯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불교나 힌두교에 접근하기 위해 수행하는 요가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요가를 계속하고 싶어 하면, 나는 아이들에게 요가가 어떤 영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 전통 역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상호 교통을 추구한다는 사실도.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의  이러한 요소들을 통합하실 때 요가가 어떻게 그분이 내 안에서 일하시는 한 방편이 되었는지도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요가가 우리 몸에 가져다주는 장점들을 누릴 수 있었던 데도 감사할 것이다.


에이미 줄리아 베커 CT 여성 전문 블로그 Her.meneutics에 글을 쓰고 있으며 「왜 나는 영적이면서도 종교적인가」(Why I Am Both Spiritual and Religious)를 비롯해 여러 책을 썼다.


2. 상황에 따라 다르다    
        
공립학교에서 요가는 금지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짧지만 복잡하다. 바로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 요가를 공립학교에서 금지할 것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요가’와 ‘종교 활동’이라고 일컫는, 첨예하면서도 포괄적인 용어를 어느 범위까지 규정하는지에 달렸다.

‘요가’의 의미를 두고 얼마나 갑론을박하는지 보려면 요가를 하는 그리스도인 아무에게나 가서 이렇게 말해보라. 겉보기에 요가는 힌두교의 뿌리와 떼놓고 볼 수 없다고. 그러면 그들은 요가에 내포된 영적 의미를 부인하며, 요가의 동작이나 호흡법 등이 신체에 얼마나 유익한지를 조목조목 들려줄 것이다.   

이번엔 힌두교 옹호론자에게 가서, 사실 요가는 20세기 초 영국의 ‘신체 문화’physical culture[19세기부터 영국, 독일, 미국 등지에서 일어난 체육 활동의 대중화]에서 비롯됐으며, YMCA가 인도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스웨덴의 스트레칭을 들여온 데 반발한 인도인들이 시작한 것이었다고 말해보라. (이 내용은 마크 싱글톤의 탁월한 저서 요가 바디에서 주장한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이 이야기를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가가 종교적인 행위인지 아닌지는 사실, 그때그때마다 누가 그 요가 수행을 주도하며 무엇과 관련된 요가인지로 판가름난다. 어떤 사람들은 요가를 미용체조의 한 변형으로 본다. 이런 맥락에서는 학교에서 요가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 그런 운동이라면 종교적 행위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차라리 ‘요가’라는 말을 쓰는 대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용어로 명명해 의도를 분명하게 밝히는 편이 낫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신체 운동을 굳이 힌두교 뿌리와 엮으려고 기를 쓴다. 그런 경우, 교과 과정에 포함된 요가는 공립학교에서 종교활동을 규제하는 기준에 부합하는 과목이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이름만 바꿔서 요가를 교과 과정에 포함시키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위의 두 가지 입장을 같은 선상에 놓고 다루려면, 요가의 특정 자세와 형태에는 사람들이 진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무언가가 내재돼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진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런 종류의 논쟁은 자칫 그리스도인들이 ‘폴 댄싱’[술집에서 댄서가 무대 위 봉을 잡고 추는 선정적인 춤]을 의미 있는 근육 운동으로 받아들이는 지경으로 비화될지 모른다. 성인 오락물로서 폴 댄싱은 본질적으로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한다. 이를 즐기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피해야 할 행위가 틀림없다. 하지만 요가 역시 서구인들-정작 이들도 폴 댄싱의, 어느 정도는 합의가 된 포즈나 몸을 뒤트는 동작을 비난하고 있다-에게 순수하게 운동의 형태로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피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매튜 리 앤더슨 흙으로 지음받은 그릇: 몸은 어떻게 신앙에 영향을 주는가(Earthen Vessels: Why Our Bodies) 저자이자 MereOrthodoxy.com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필자이다.


3. 요가는 힌두교의 위장일 뿐 

공립학교에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기도와 같은 종교활동을 금지한다면, 요가 또한 금지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요가는 운동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힌두교도들은 요가를 자기 종교의 한 부분으로 본다. 아메리카힌두교대학교(Hindu University of America) 수브하스 티와리 교수는 요가가 힌두교의 베다 전통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종교적 수행으로서의 요가에서 신체 운동 요소만을 분리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요가를 힌두교 포교 수단이자 뉴에이지 운동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7세부터 29세까지 22년 동안 요가와 뉴에이지 운동에 몸담았던 나는, 요가가 신체 운동 이상의 의미를 전달한다는 걸 몸소 체험한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나는 하타 요가와 쿤달리니 요가를 배웠으며, 우리 어머니처럼 하타 요가 강사였다.

어머니와 나는 일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요가에 눈을 떴다. 어머니는 요가가 스트레스를 덜어준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요가 강사가 됐고, 나도 어머니의 전철을 밟았다. 우리는 점차 교회 일은 제쳐놓고 뉴욕주 북부에 있는 아시람[힌두교인들이 수행하며 거주하는 곳]을 찾곤 했다. 점점 더 요가에 빠져들게 되면서, 다른 뉴에이지 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 늘어났다.

요가 동작들은 수백 만 힌두교 신들에 대한 경배다. 특히 “요가의 신”에 대한 경배를 포함한다. 그 신은 바로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다. 산스크리트어로 요가는 ‘멍에’나 ‘결합’을 의미하며, 어느 유명한 요가 지도자는 “요가는 사람들 각자를 우주와 결합시킨다”고 말하기도 했다. 따라서 요가를 수련하는 것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힌두교 신들과 하나가 되려는 행위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상의 제물에서 멀리하라(행15:29)는 명령을 받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멍에를 메고 배우면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시며,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다.

분명 공립학교의 요가 수업은 종교적 측면이 전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장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된 당신의 자녀가 서점에서 동양 종교 코너를 지나다가 요가 책들을 본다면, 초등학교 때 비종교적이라고 칭한 요가 수업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친숙함을 다시 느끼게 될 것이다.

공립학교에 한 가지 제안을 한다면, 어린이를 위한 ‘프레이즈 무브’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종교가 아니라 인성 교육과 신체 단련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엡6:12) 바울이 남긴 경고의 메시지이다. 이러한 영적 존재들은 힘을 지니고 있고,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로렛 윌리스 헬스 전문가이자 기독교 요가 대안 단체 프레이즈무브(PraiseMoves.com)의 설립자다. CTK 20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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