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들은 왜 결혼을 할까
상태바
목사들은 왜 결혼을 할까
  • 양혜원
  • 승인 2019.06.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신이면 사역에만 일심으로 헌신할 수 있는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7:32-34). 남자든 여자든 결혼을 하면 마음이 나뉘어 일심으로 주를 섬기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내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아는 남성 목회자들은 다 결혼을 했고, 여성 목회자들은 대부분 독신이다. 남성의 경우 결혼을 해야 안수를 받을 수 있는데, 여성은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안수를 받는 것 같다. 바울의 글에 비추어보면 오늘날의 이런 현상은 조금 이상하다.

물론 성경에는 바울의 이런 조언 외에도 장로 선정 기준이나 바람직한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한 권고도 있다. 게다가 고린도전서의 이 말씀은 바울이 주께 받은 바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라고 명시하기 때문에, 결혼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그러하다는, 다소 ‘인간의 조건’ 같은 표현으로 여겨질 뿐, 심각하게 고려되지는 않는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성직자에게 독신을 요구하는 제도가 개신교에서는 사라졌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 곧 닥칠 일로 여겨지던 상황에서 쓴, 또 독신으로 선교를 다니던 바울 개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글로 여겨진다. 이미 개신교 안에서 이렇게 정리된 입장에 새삼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현실적 문제들 때문이다.
 

 


성직제도와 결혼

사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독신 성직자 제도를 없앤 것은 어느 정도 인간의 본성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이었다. 독신 성직자 제도를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제재와 처벌에 의해 겨우 유지되었다. 수도원을 택하는 수사는 독신으로 주께 헌신하고 청빈과 금욕과 순종하는 삶을 서약하지만, 일반 성직자는 소소한 가사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서라도 집안에 여자를 두었고, 그 여자와 침대를 공유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직자의 결혼이 공식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여자들은 내연의 처가 되었으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사생아가 되었다. 종교개혁 이후 수도원은 문을 닫았고 성직자의 독신 제도는 폐지되었는데, 전에도 썼듯, 그 결과가 여성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여성이 가사와 육아의 의무에서 벗어나 합법적 독신으로 존경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제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정 내 여성의 역할에 대한 이데올로기는 강화되었다.

그 강화는 두 가지 방향에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르네상스 시대에 부활한 로마법은 중세시대에 자기 이름으로 땅을 소유하거나 법정에 설 수 있었던 여성의 권한을 박탈하고 아버지나 남편 등 남성 보호자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강화했다. 그리고 성직 제도가 폐지되면서 교회 안에 존재하던 신의 대리인이던 신부(Father)의 지위가 가정의 아버지(father)에게로 이양되었다. 말하자면 가정이 신의 뜻을 수행하는 최소한의 사회가 되었고 그 안에서 아버지는 가장이자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병행하게 된 것이다. 개신교가 남편이 ‘머리’라는 교리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이런 가정의 모델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개신교 가정의 모델이고, 목회자 가정은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목회자와 결혼제도

개신교에서 성직제도가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이 평신도와는 분명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학교로 대변되는 교육 커리큘럼 외에 그들에게 요구되는 ‘결혼’이라는 조건은 디모데전서 3:2 이하에 근거한다. 나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과 디모데전서 3장을 어떻게 연결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목회자의 아내로 13년을 살면서 늘 궁금해한 것은 제도보다 더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을 거론하는 고린도전서 7장은 왜 목회자의 요건으로 고려되지 않는가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갈라지지 않은 마음으로 사역을 하는 동시에 가정을 돌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해야 하는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를 돌보는 것이다. 즉 이미 목회자에게는 정신적·감정적으로 헌신할 대상이 있다. 교인들에게 그렇게 열과 성을 다 쏟아 부은 목사가 자기 아내에게, 자식에게 쏟아줄 에너지가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목회자 가정이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 말한 개신교 가정의 모델을 내면화한 아내의 협력 때문이다. 물론 목회자의 아내가 되고자 자처하는 여성도 있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처럼 주도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 여성은 자기를 도울 남편을 찾지 않겠는가.

많은 여성 목회자들이 독신인 이유는 그런 남편을 찾기도 어렵거니와, 결혼한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사역에 전념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즉, 여성들은 이미 가정과 사역을 병행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갈리지 않도록’ 독신을 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남성에게는 가정이 마음이 갈리는 원인이 되지 않는가? 내연의 처를 두었던 과거의 성직자들처럼 남성들에게 가정은 아내에게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제공 ‘받는’ 곳이지 자신이 돌볼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정에서 남성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은 돈을 벌어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력 향상으로 요즘 남자 신학생들은 피아노 선생님, 약사 등 자신을 경제적으로까지 후원해줄 신붓감을 선호한단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그들은 여성에게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제공하며 여성이 기대하는 친밀한 가정을 이루는가?

앞에서도 말했듯 사역의 구조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는 지친다. 그것을 눈치 챈 목회자라면 마음이 갈리기 시작할 것이고, 여성 목회자들처럼 가정과 사역을 병행하는 게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 목회자들도 여성 목회자들처럼 이제 서서히 독신을 선택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겠는가?

이미 신학생이 넘쳐나는 마당에, 게다가 갈수록 평신도들도 신학 공부에 열심을 내는 마당에, 목회자 선발 기준이 좀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말하자면 육체의 정욕을 이길 수 있는 자, 혹은 아내의 결혼생활 만족도가 매우 높은 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양혜원은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포이에마)를 펴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 「그 길을 걸으라」, 「비유로 말하라」, 「부활을 살라」(이상 한국IVP 역간) 등 유진 피터슨의 주요 저작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