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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무시할 수 없는 하나님내가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나 자신이다
커스틴 파워스  |  Kirsten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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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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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만 해도, 누군가 내게 당신이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간증을 기고할 거라고 말했다면 어이가 없어 크게 웃었을 것이다. 내 인생에 가장 확실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그 어떤 종교도 의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특히나 경멸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라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알래스카에서 성공회 교회를 다녔지만, 내 신앙은 피상적이고 얄팍했다. 이런 성향은 고고학자인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러시아어를 독학할 정도로 명석한 분이었다. 회의가 찾아올 때면 나는 아버지가 믿던 사실을 의지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버지의 신념에 기대어 그럭저럭 버틸 수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자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더구나 내가 어른이 되자 아버지는 자신의 의심들을 내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 나약한 신앙으로 그런 의심들을 견뎌내기엔 역부족이었다. 20대 초반부터 무신론과 불가지론을 오가면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전혀 생각조차 못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부터 1998년까지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했다. 백악관에는 온통 똑똑한 사람들뿐이었는데, 그들은 설령 신앙심이 깊다 하더라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나중에 민주당에서 일하면서 뉴욕으로 터전을 옮겼는데, 엄청나게 세속적인 곳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했고, 친구들은 지독한 무신론자들뿐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들의 삶이 끔찍할 거라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기회가 넘쳤고 즐거운 대화와 특권이 즐비했다. 지금은 그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그게 전부인 줄만 알았다. 더 나은 삶이 있는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삶을 동경할 수 있겠는가?

열린 마음을 가졌느냐고?
그리스도인들을 만나면 몇 가지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올랐다. 물론 예상대로 그들은 늘 동성애자나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예수를 좋아하는 남자와 사귀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사실, 그 사람을 만나기 일주일 전에 한 친구가 내게 데이트할 때 가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종교적인 사람만 아니면 돼.”

만난 지 두어 달쯤 됐을 때 남자친구가 긴히 할 말이 있다며 전화를 했다. 그때 내가 집 안 어디쯤 앉아 전화를 받았는지 지금도 기억이 또렷하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나요?” 가슴이 쿵 하고 떨어졌다. 공포가 밀려왔다. ‘이럴 수가. 그이가 미쳤나 봐.’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가 물었다. “그분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당신과 결혼을 하고 싶은데,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나는 당신을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싶진 않다고, 나는 예수님을 믿을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 같은 자유주의자에게는 마법과도 같은 말을 꺼냈다. “그러면 신앙에 대해 열린 마음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마다. “그럼요, 제가 얼마나 트인 사람인데요!”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지성주의와 편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고 조롱했다. 그들은 아무 의미 없는 이 세상을 직면하기엔 너무 나약했다. 이 남자는 그냥 넘어가기엔 조금 과할 만큼 열심히 교회에 출석했고, 그것은 그의 매력을 반감하는 요소였다.

대화가 계속되면서 내 갈등은 점점 더 커졌다. 한편으로는 정말 섬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컸다. 그는 똑똑하고 교육도 많이 받고 지적 호기심도 왕성했다. ‘만에 하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 말을 고려해보지도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몇 주 뒤에 그 사람과 함께 교회에 갔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어서 장로교인 중에 복음주의자가 있는 줄도 몰랐다. 어렸을 때 다닌 고교회 전통의 엄격한 전례에 익숙한 나는 리디머장로교회 예배에서 목격한 장면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무슨 공연장 같은 곳에서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는데, 나중에야 그게 ‘예배 찬양’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는 못 올 것 같은데, 남자친구한테는 뭐라고 말한담?’

그러는 찰나, 목사가 설교를 시작했다. 그런 설교는 평생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술과 자신의 이야기, 철학을 엮은 팀 켈러의 설교는 지적으로 빈틈이 없었다. 나는 그의 설교를 다시 들으러 오기로 작정했다. 얼마 안 돼, 일요일에 그의 설교를 듣는 것이 일주일 중에 가장 기다려지는 일이 됐다. 교회보다는 흥미로운 강연을 들으러 간다는 심정이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나머지 요소는 묵묵히 견뎠다. 켈러의 설교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마지막에 가서야 예수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신의 요점을 하나로 정리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처음 두어 달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예수 이야기만 빼면 완벽한데, 굳이 그 이야기를 집어넣어 좋은 강연을 망치는 이유는 뭘까?’

매주 켈러는 기독교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무신론과 불가지론에 반박하는 주장도 내놓았다. 세속적 세계관의 지적인 약점도 여실히 밝혔다. 나는 기독교가 진짜가 아니라고 한다면, 무신론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완벽한 진실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이 친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십사” 나를 붙잡고 기도했다. 여덟 달 동안 팀 켈러의 설교를 듣고 나서, 증거가 기독교 쪽으로 기운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하나님께는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상태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그분을 체험했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필시 착각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그 사람들은 자기 기분을 좋게 하려고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대만 여행 중이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상태로 잠에서 깼다. 예수가 내게 와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데, 마치 현실처럼 너무나 생생했다. 도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그는 어젯밤에 기도하다가 나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실연의 아픔보다 예수가 나를 찾아왔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이었다.

신경조직이 잠시 어떻게 됐나보다 생각하고 그 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를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며칠 뒤 뉴욕으로 돌아온 나는 넋 나간 사람 같았다. 갑자기, 어딜 봐도 하나님이 계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런 인식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사생활을 침해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러다가 미쳐버리지는 않을지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서, 에릭 메택시스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작가인데, 예전에 남자친구를 통해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세요. 캐시 켈러 사모님이 인도하는 모임이 좋겠네요”라고 말해주었다. 그의 조언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세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무도 이해 못할 것이다. 나조차 납득이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리스도인들이 나를 공화당원으로 바꾸려 할까봐 염려했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성경공부에 참석한 첫날,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였다. 내 상식으로는, 성경공부에 나오는 사람들은 죄다 별난 사람들과 열성분자들뿐이었다.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성경공부가 끝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사실뿐. 모임 장소인 아파트를 나서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게 진실이구나. 완벽한 진실이었어.” 베일이 걷힌 것처럼, 세상이 180도 달라 보였다. 이제 내겐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기쁨도 잠시,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슬며시 밀고 들어왔다. 이후로 두어 달 동안 하나님을 멀리하려고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어딜 가든, 그분은 거기 계셨다. 서서히 두려움은 사라지고 기쁨이 찾아왔다. 천국의 사냥개가 나를 쫓아와 잡았다. 내가 싫든 좋든. CT

커스틴 파워스 <USA 투데이>의 기고가이자 <뉴스위크/데일리 비스트>의 칼럼니스트다. 폭스뉴스에서 민주당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게시: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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