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자의 커밍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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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의 커밍아웃
  • 로라 터너
  • 승인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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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친구들이 교회에서 성장한 것을 한탄하지만, 나는 그것에 감사한다
   

나는 전형적인 맏딸로 자랐다. 세 아이 중 첫째였던 나는 전통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즉흥적인 가족들을 대신해 늘 세밀한 계획을 세웠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혹 아버지가 깜박하시기라도 하면 동생들을 벽난로 앞에 몰아놓고는, 책장 높이 꽂혀 있던 오 헨리 단편집을 꺼내 아버지께 건네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크리스마스 선물>(The Gift of the Magi)을 낭독하셨다.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전통이었다. 제임스와 델라 딜링햄 영이라는 젊은 부부가 서로를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려다 가난 때문에 엇갈리는 상황에 처하는 이야기. 부부는 서로의 선물을 사기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보물을―델라는 시바의 여왕도 질투할 만한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짐은 솔로몬 왕도 탐낼 만한 귀한 금시계를―팔아버린다. 우리 가족은 20분 정도 완전히 이야기에 몰입한 채, 델라의 머리핀과 짐의 시곗줄, 델라의 짧아진 머리와 짐의 팔아버린 시계에서 이어지는 감동적인 결말을 기다린다. “선물을 주고받는 사람들 중 그들이 가장 현명했다.”

좋은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몇 달 전부터 복음주의 가정에서 성장한 내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요즘 블로그나 책을 통해 주목받는 그리스도인 가정(나 역시 존 오트버그 목사의 딸이지만, 특히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 이야기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다행히도 내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행복한 결말을 향하고 있다.

나는 1990년대 미국 복음주의의 한복판에서 성장했다. 나는 그 사실에 감사한다. 물론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고 당혹스러운 순간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순전한 기독교」와 「천로역정」 같은 책을 읽었고, 성별과 인종주의, 사회 정의 등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눴으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삶으로 실천할 것인지 고민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내가 배운 내용들을 기록하면 할수록, 내가 복음주의자로서 특별한 상처나 트라우마 없이, 세상에 대한 열린 시각을 유지하면서, 교회나 가정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어떤 차별도 받지 않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졌다.

그러나 요즘은 복음주의자들도 형제자매나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뭔가 망설이거나 몇 마디로 일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미국 종교계를 지배하는 내분과 분파주의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정상적인 상태라고 믿게 되었고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고 여긴다.

또한 복음주의자들은 오랫동안 하나의 부류로 뭉뚱그려 평가되어왔다. 도덕주의자이고, 우파이며, 교육 수준이 낮고, 지구 환경에 무관심하고, 미적 취향이 형편없으며, 두려움이 많고, 지극히 평범한 부류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복음주의자에 대한 정확한 묘사도, 충분한 묘사도 아니다. 아무리 나쁜 점만 골라낸다 해도 이런 묘사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복음주의자를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내용이 훌륭할 뿐 아니라 우리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약속을 전해주는 이야기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주변의 세속적인 문화가 들려주는 슬픈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깨어짐은 널리 알리면서도,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고통스런 현실을 분석하고 슬퍼할 뿐, 우리가 나누는 믿음을 축하하지는 않는다. 선보다는 악을 찾고, 우리 영혼이 산산이 부서진 이유만 궁금해한다.

나는 성장하면서 (우리 부모님과 그리스도인 역사가 마크 놀 덕분에) 생각하는 삶의 중요성과 (앞에서 언급한 친구들 덕분에) 연약함의 능력을 배웠다. 나는 하나님 나라에서 내 은사를 발견하여 사용하는 방법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내 믿음을 공유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이는 부당하게 비난받아온 복음주의자의 전형적 특징이기도 하다. 그 대신 요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내 믿음을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달고 다닌다. 확신을 전하기에는 복음이 너무 빈약하게 소개되고, 때로는 복음에 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예수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길’과 ‘진리’와 ‘생명’에 대해 지나치게 열광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매력적으로만 묘사한다는 점이다.

결국 문제는 우리의 복음주의 운동으로 귀결된다. 나는 한 사람이 복음주의자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최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 대한 태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물론 내 주변에는 그 테스트에 공감하지 못하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 테스트는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당신은 복음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소식―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각종 헤드라인과 언론 보도에 지치고 실망하여 냉소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는가?

많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위험하게도 존 번연이 묘사한 ‘세상 지혜자’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맞서 싸울 것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가장 좋은 소식이자 가장 좋은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델라와 짐은 서로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최고의 것을 희생했다. 그들의 행동이 빛나는 것은 서로를 향한 넉넉한 사랑 때문이고,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넉넉한 사랑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우리 이야기의 바탕에도 그런 넉넉한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를 바란다.

 



로라 터너는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작가이자 CT의 여성 전문 블로그 허머누틱스(Her.meneutics, 그녀의 해석학)에 기고하고 있으며, loturner.com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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